우리 정부가 동영상 공유 서비스 유튜브에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라고 요구하자 구글은 아예 우리나라에서 동영상 업로드를 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버렸다. 2009년 4월의 일이었다. 물론 사용자 설정에서 국적을 다른 나라로 바꾸면 자유롭게 동영상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 수 있지만 시대착오적 규제에 대한 반발이었던 셈이다.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차단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구글은 그렇게 하지 않고 우회 경로를 열어뒀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편법이었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구글을 규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가뜩이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차단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했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로 적용해 논란이 확산될 경우 국제 망신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은 “우리 법 체계를 지극히 지능적으로 이용한 편법이자 탈법”이라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결국 유튜브를 인터넷 실명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방통위가 내놓은 변명은 “지난해는 국내에서 유튜브에 접속할 때 주소가 kr.youtube.com이었는데 현재는 www.youtube.com으로 바뀌어서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버는 해외에 있고 제공하는 서비스도 같은데 단순히 접속 주소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실명제 대상이 됐다가 안 됐다가 하는 셈이다. 국내 역차별 논란도 제기됐다.

   
블리자드소프트가 게임 셧다운 제도에 반발, 자정 이후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1 접속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하자 여성가족부는 뒤늦게 당황해서 스타크래프트1은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물러섰다. 유튜브에 인터넷 실명제를 강요하다가 체면을 구겼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시대착오적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망신살이 뻗친 경우다.
 

비슷한 일이 게임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20일부터 만 16살 미만 청소년들은 저녁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게 된다. 심야 게임 셧다운 제도가 20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셧다운 제도는 이른바 신데렐라법으로 불리는 제도로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으나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위헌 소송이 진행 중이다.

게임 셧다운 제도를 발의했던 여성가족부는 당초 모든 게임을 규제하겠다고 밝혔으나 시행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는 규제 대상에서 2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위처럼 네트워크 기능이 없는 콘솔 게임은 아예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온라인 게임 가운데서도 스타크래프트1은 적용 대상이 아니고 스타크래프트2는 적용 대상이다.

정작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중독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명은 셧다운 제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네트워크 게임이 아니라 패키지 게임이라는 이유에서다. CD나 DVD를 구입해서 개인용 컴퓨터에 설치해서 쓰는 패키지 게임은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스팀이나 오리진 같은 게임은 네트워크 기능을 지원하지만 패키지 게임이라는 이유로 셧다운 제도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원칙과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를 제작·판매하는 블리자드소프트는 우리 정부가 게임 셧다운 제도 도입을 주문하자 아예 자정 이후에 16세 미만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접속하는 모든 IP를 차단하겠다고 밝혀 여성가족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스타크래프트1은 발매 12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있는 게임이다. 여성가족부는 뒤늦게 스타크래프트1 등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원칙과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KT 사장 출신의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은 블리자드소프트가 스타크래프트 접속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맞서자 논평을 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법개정 전부터 외국에 서버를 둔 게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가 있는데 여성가족부는 우선 시행하고 보자고 나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보호에 대한 열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셧다운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게임 셧다운 제도가 누더기가 된 것은 인터넷 실명제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애초에 규제할 수 없는 걸 규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 한정해서 접속을 차단하려면 실명 확인을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야 한다. 그러나 11년 전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1은 이런 기능이 없다. 네트워크 게임이지만 CD로 판매됐던 게임이라 뒤늦게 실명 확인 기능을 추가할 방법이 없고 해외 업체라 규제 수단도 마땅치 않다.

여성가족부의 변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는 16살 미만인 청소년의 보급률이 낮다는 이유로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규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모든 게임에 실명 확인 기능을 강제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접속 차단이나 강제적 수단을 적용할 수도 없다. “스타크래프트 경우 이용자들이 20대 이상의 청년과 중·장년층이 많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가족부 주최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온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의 발언은 게임 중독을 보는 여성가족부의 편협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권 소장은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전두엽의 발달이 늦어져 모든 일에 반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짐승과 비슷한 상태로 변한다”면서 “지금 교실에는 게임때문에 얼굴은 사람인데 뇌 상태가 짐승같은 아이들이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게임 셧다운 제도는 중독성이 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가려내지 못하며 일방적으로 게임접속 시간을 제한해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아침 6시에 게임을 시작해서 밤 12시에 끝내는 아이와 밤 12시에 시작해서 12시30분에 끝내는 아이가 있는데 누가 더 게임에 중독된 것이냐”면서 “게임 셧다운 제도는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셧다운 제도를 우회할 방법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거나 해외 서버를 경유하는 방법도 크게 어렵지 않다. 단순히 자정 이후 접속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게임 중독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과 문화권을 침해하는 비판도 많다. 청소년들이 게임 셧다운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은 게임으로 몰려들 가능성도 있다.

당초 입법 취지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여성가족부의 비현실적인 규제 일변도 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가족부는 노래 가사에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법원은 지난 8월 ‘술에 취해 널 그리지 않게’ 등의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유해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 제동을 걸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유예기간이 끝난 2년 뒤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수십만개의 게임을 규제할 방법이 있을까. 시대착오적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정보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규제의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규제 수단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여성가족부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서명과 투표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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