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사극에서 ‘왕’이 가지는 위치는 단순한 인물을 넘어선다. ‘태종’, ‘숙종’ 등의 시호로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왕조시대의 왕은 국가 그 자체였기 때문에 개인적 층위에서의 고민보다는 국가나 정치 자체가 갖고 있는 갈등 상황이 왕을 ‘매개’로 이뤄지는 서사가 대부분이었다. 즉 ‘왜’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했다는 말. 권력 자체와 그를 얻기 위한 다툼이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장점도 있었으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에 집중한 나머지 그를 위한 부적절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측면도 간과할 순 없다.

권위 버리고 소통 택한 고뇌하는 이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도’는 그와 조금 다르다. 극중 등장인물 이름 설명에도 나오듯, <뿌리깊은 나무>에서 아버지 태종과 그의 정적 정기준(가리온, 윤제문)은 세종을 ‘이도’로 통칭한다. 왕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사용한다는 것은 보다 많은 의미를 함유한다. <뿌리깊은 나무>의 작가진인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전작인 <선덕여왕>에서도 선덕여왕이 아닌 ‘만덕’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는데, 이는 그 캐릭터를 ‘왕’이라는 계급이 아닌 ‘개인’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효과를 거둔다.

개인으로 변한 왕의 경우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더욱 쉽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도’의 고민은 무엇인가. 마방진처럼 여러 가지 변수의 ‘하나의 합’으로 수렴시킬 수 있는 방책을 고민하는 것. 젊은 시절의 이도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방진에 심취했다. 그 안에서 기어코 ‘모든 변수’를 활용한 해법을 찾았고, 그것을 현재의 통치에 응용하고 있다. 왕의 권위가 채 여물지 않았던 시절, 성리학 이념과 강력한 신권이 왕을 옭아매던 조선 초기,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인 것이 아닌,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했고, 죽음으로 이뤄진 권위는 그런 소통을 불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이방원과 이도의 차이점은 “나의 군대를 해한 죄인”과 그럼에도 살려야할 “나의 백성”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백성이 수령을 고발하는 ‘주민소환제’를 두고 신하들과 토론하는 장면이나, “나이가 어리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면 백성의 소리를 어디서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일갈하는 세종의 모습에서 오버랩되는 것은 권위를 버리고 소통을 택한, 그렇기 때문에 공격받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조선왕조 4대 임금 ‘세종’이 아닌 고뇌하는 인간 ‘이도’가 보이는 모습은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라는 틀에서 ‘세종 이도’를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세종 이도는 한글을 반포하기 전에 성삼문(현우), 박팽년(김기범)에게 감수를 부탁한다. 그리고 그릇된 것일 경우 반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방원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과는 느리게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좌초될 수도 있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국가 정책은 한 ‘개인’(설사 왕이라 하더라도)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되는 문제 아닌가.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느리더라도  옳은 길 가는 리더십

왕이든 대통령이든, 혼자 힘으로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을 옹립시키기 위한 권위가 마치 양날의 검처럼 홀로 만들 것이다. 경연시간에 신료들의 말잔치를 듣고 ‘우라질’이라고 쓰고 되뇌이듯, 음운을 밝히기 위해 천민을 맞대하듯, 소통과 그를 통한 성과는 낮은 자리에 임할 때 가능한 것이다. 정조의 개혁은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동의와 이입을 얻었다. 그것은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큰 상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세종 이도의 어둠의 세력과의 대립은 우리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듯,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극중에서는 그 성과를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할 것이다. 우리는 좌절된 개혁이 아닌 성공하는 이야기를 보고 있다. 많은 일들을 앞둔 2011년 하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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