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겨레를 상대로 3억원의 민형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PD수첩 사태에 이어 제2의 언론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종훈 본부장은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소장을 통해 한겨레 9월 15일자 <김종훈 ‘쌀개방 추가협상’ 미국에 약속했었다> 기사가 “사실과 다른 보도”라며 “본인의 명예와 더불어 정부, 외교부의 자긍심이 훼손당했다”며 소송사유를 밝혔다.

해당기사는 위키리크스를 인용해 “김종훈 본부장이 미국 쪽에 쌀 관세화 유예 종료(쌀시장 전면 개방) 이후 미국과 별도로 쌀시장 개방 확대를 협상할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이 공개됐다”고 보도하며 “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대가로 사실상 미국에 쌀 관세 특혜와 추가 개방을 약속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교통상부는 이 기사에 “김종훈 본부장이 쌀 개방을 약속한 내용이 위키리크스에 없음에도 한겨레가 잘못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반면 한겨레는 김종훈 본부장과 포머로이 미 하원의원의 대화내용으로 미루어 사실상 쌀 개방을 약속한 것으로 해석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자료사진.
 

박순빈 한겨레 논설위원은 “위키리크스에는 김종훈 본부장과 포머로이 미 하원의원이 대화한 내용이 있고, 여기서 포머로이는 한미FTA 미국 비준을 위해 3대 조건을 제시한다”며 “쇠고기와 자동차, 쌀 개방문제였는데 당시 쇠고기와 자동차 관련 부분은 김종훈 본부장과 포머로이 의원의 대화 내용대로 이루어지고 쌀과 관련된 논의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를 근거로 우리의 해석과 가치판단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사설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를 작성한 정은주 기자도 “위키리크스에는 포머로이가 한미FTA 비준을 위해 3가지 선결조건을 제시하는데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이 하나하나 대답한다”며 “쌀과 관련, 현재로서는 쌀을 (의제로)다룰 수 없으나 2014년 세계무역기구(WTO) 쌀 쿼터 협정이 종료되면, 한국정부가 쌀 문제를 재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이후 외교통상부는 기사와 관련사설에 대해 한겨레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고, 언론중재위원회는 한겨레에 정정보도 직권조정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겨레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다. 박순빈 한겨레 논설위원은 “외교통상부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고, 김종훈 본부장이 미 하원의원과 주한 미 대사를 만나 나눈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외교통상부와 한겨레는 절차에 따라 민사소송에 돌입했고 이와는 별개로 김종훈 본부장이 7일 한겨레에 대한 민형사 소송을 건 것이다. 한겨레는 “언론보도에 대해 형사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언론 보도를 두고 형사소송까지 제기된 주요 사례가 ‘PD수첩 광우병 보도’였음에 비쳐보면 정부가 한미FTA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한겨레에 대한 ‘손 봐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외교통상부 김영준 통상기획홍보관은 “언론중재위는 위키리크스 원문에 없는 내용을 한겨레가 맞는 내용처럼 보도 했다고 결정했으나 한겨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김종훈 본부장의 민형사상 소송은 이와는 별개로 개인이 제기한 것으로,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재판에서 진행될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순빈 논설위원은 “공정보도의 취지와 형사법상 명예훼손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외교통상부가 이를 연결시키고 있다”며 “언론중재위에 직권조정 결정이 나왔다는 것 자체로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박찬수 한겨레 편집국장은 “법적인 문제와 별개로 현 정부가 한미FTA에 불리한 보도들에 대해 소송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 하다”며 “이러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취재기자의 활동을 제한하고 언론의 FTA비판보도를 제약하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이 소송제기가 김종훈 본부장 개인의 생각인지, 정부 차원에서 조율된 것인지 답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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