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 TV를 켰는데 멀쩡하게 보던 지상파 TV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고?

정부는 현재 방송중인 아날로그 TV방송을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에 종료하고 디지털화된 TV방송만을 서비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현재는 동일한 프로그램을 아날로그 방송과 디지털 방송으로 동시에 송출하고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 TV만으로도 방송 시청이 가능하지만 2012년 12월 31일 새벽부터는 디지털 수신 기기 없이는 지상파 TV 방송을 볼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을 뿐더러 정부의 홍보나 지원 정책이 미흡해 수백만 가구가 지상파TV를 볼 수 없는 '대재앙'이 현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4일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2011 가을 디지털 방송 컨퍼런스'(주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협회 미래방송연구회)는 디지털 전환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방송계의 우려와 불만을 여실히 드러냈다.

   
 
 

우선, 디지털 전환 정책으로 인한 잠재적 피해자, 즉 디지털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안테나나 혹은 공동주택 수신설비를 갖추지 않을 경우 2013년부터 지상파 TV 방송을 볼 수 없는 가구는 약 252만 세대로 추정하고 있다.

2010년 11월 통계청이 조사한 유료방송이 아닌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는 전체의 13.3%로 221만 가구로 집계됐는데 이를 세대로 환산하면 252만 세대다.

특히 252만 세대 중 많은 수가 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등 디지털 전환 취약 계층으로 추정되는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보편적 시청권'을 뺏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는 소득 하위 50%에 대해 디지털 방송 수신 기기의 비용으로 4만 5천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같은 수준으로는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유료방송을 같이보고 있는 지상파 직접 수신가구는 약 73만 세대인데, 정부은 유료방송을 보면서 지상파 방송을 병행해 보고 있는 가구에 대해서는 지원을 하지 않는다.  

컨퍼런스 토론회에 참여한 신진규 DTV코리아 교육사업팀장은 "유료방송 병행 취약계층이 아날로그TV로 직접수신하고 있다면 디지털컨버터 8만원, 안테나 개보수 15만원 등 약 20만원내외의 비용을 들여 전환해야 한다"며 유료방송 병행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료방송에 가입해 지상파 TV 방송을 보고 있는 91.1%의 사람들도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TV를 보유한 케이블 방송 가입자도 디지털 상품에 가입하지 않고는는 아날로그 방송만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케이블 가입자의 70%가 저가형 아날로그 상품에 가입돼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전환 방송 정책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국내 전체 시청 가구로 따지면 약 60%가 디지털 방송 시대에 준비가 부족한 셈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 정부의 지원 예산도 보기 민망할 수준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2년 디지털 방송 전환 예산으로 1046억원을 책정했는데 지난 7월 디지털 방송 전환을 마무리한 일본은 4년 동안 12조원을 쏟아부었고, 지난 2009년 전환을 마친 미국의 경우도 34억 달러, 3조7천억원을 썼다.

최천규 DTV 코리아 전략기획실장은 "시골에서 연속극 보면서 웃고 울고 즐기는 우리 부모님들이 도시에 사는 아들한테 유료방송을 달아주라고 해야 하겠느냐"라며 정부에 쓴소리를 냈다.

   
 
 

특히 디지털 방송 전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국민 홍보를 통한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한데도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혜란 정책위원은 "정부의 정책은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니 대비를 알아서 하라는 형식"미라며 "열심히 설명해도 한달 전이나 하루 전에 한꺼번에 전환하는 현상이 나타날까 걱정이다. 보다 풍성한 홍보와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정책위원은 이어 "시청자 입장에서 원해서 하는 전환도 아니고, 100% 지원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실제 스웨덴의 경우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몇달 앞두고 방송 전환 대상자 가구 약 40%가 한꺼번에 수상기와 안테나를 사는 등 국가적 문제가 되자 결국 정부가 수상기 30만대를 무상으로 뿌린 전례가 있을 정도다.

자발적인 디지털 방송 전환을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했을 시 고화질, 고음성의 방송이라는 것 말고도 또다른 '메리트'를 줘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진규 팀장은 또다른 '메리트'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면 지상파 방송 5개 채널 이외도 다른 채널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부가 디지털 방송 전환을 하면서 추진하는 채널 재배치 방안과 주파수 회수 정책은 방송계의 반발이 거센 또다른 골칫거리다.

방송계는 아날로그 방송 종료시 채널을 변경하게 되면 수신자 혼란을 일으키고 송신기 채널 변경 작업에 시간이 걸린다며 최소 10개월의 유예기간을 줘야 하고 채널재배치에 따른 비용도 현실적인 손실 보상이 필요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700MHz 대역의 주파수를 회수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파수 장사'에 나서고 있다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강력 반발하는 상황이다.

정부 입장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신승한 방송통신위원회 홍보과장은 "채널 재배치에 따른 비용으로 191억원을 손실 보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박병열 KBS 기술기획부장은 KBS에서만 채널재배치 비용이 약 365억원이 예상된다며 정부의 예산 부족을 지적했다.

박병열 KBS 기술기획부장은 토론회 마지막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하는 것이냐, 아니면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는 것이냐, 한번 묻고 싶다. 디지털 전환은 비용은 들지만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일이다. 최소한 수신환경을 개선시키고 자발적 전환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청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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