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천리길 일기’를 연재합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되는 국내 최초의 종합인권상담소로서, 박 이사는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천리길 일기’는 그가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9. 10월 17일 원주 상지대

대구에서 돼지국밥으로 유명하다는 ‘청도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출발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주변 산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너무 예쁘다. 천리길이 아니라 단풍구경이나 다니면 좋겠다. 이번 가을에도 가족들이든 친구들이든 단풍구경 가기는 다 틀렸다. 그럼 내년에는 가능할까? 모르긴 몰라도 쉽지는 않을 게다.

원주 상지대에 오후 2시 조금 넘겨서 도착했다. 이미 대학원과 4층 교수협의회 회의실에서는 상지대 투쟁을 이끌고 있는 교수협의회 교수, 총학생회, 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지대 곳곳에 걸린 구재단 복귀에 반대하는 현수막들과 본관과 대학원관 앞마당에 설치된 총학생회 농성 텐트가 학교 전체 분위기는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분규가 있는 곳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학교 정문에서부터 학교 전체가 그런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고. 특히 이사회 정관 개정을 상지대 구성원들의 힘으로 막자는 구호가 현안 문임을 보여준다.

'비리사학'을 옹호하는 법원과 정부

   
상지대학교에 걸린 현수막. ©박래군
 
상지대는 20년 가까이 분규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사학이다. 아니, 분규가 정리되고,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는데, 최근에 법원의 판결과 교과부 산하의 사학분쟁조정위(이하 사분위) 결정으로 인해서 지난해부터 다시 분규가 시작되고 있는 대학이다. 이 대학의 소유자를 자처하는 김문기는 1993년 부정입학과 공금횡령으로 구속된 경력이 있는 3선 의원 출신이다. 강원도 원주의 재력가인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상지대는 김문기 이사장의 족벌체제로 운영됐고, 심지어는 학내에서 폭력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곳이었다. 거기에 맞서 교수와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 끝에 그는 구속되고, 사고 법인에 대한 교육부의 임시이사회가 들어섰다.

김찬국, 김성훈 등의 민주총장을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 모두의 단합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민대학으로 거듭났다. 비리사학에서 모범이 되는 대학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약 10여 년 동안의 대학 민주화 운동은 성과를 내 2002년 법원으로부터 정이사 선임 승인 판결을 받아냈고, 2003년에 정이사들을 선임하고 오랜 임시이사회 체제를 끝내고 상지대는 분규대학의 오명을 씻는 듯했다.

하지만, 김문기 측은 이런 학교 법인 이사회의 결정이 무효라며 소송 제기했고, 2006년 서울고등법원, 2007년 대법원에서 김문기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인이 정상화됐다면, 종전 이사회(구재단)에 경영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2010년 8월 사분위는 정이사를 종전 이사 4명, 상지대 구성원 추천 이사 2명, 교과부 추천 이사 2명, 임시이사 1명으로 확정했다. 상지대 구성원들은 2010년 농성과 상경집회 등으로 결사적으로 항의했지만 사분위의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방안이지만, 결국 김문기 전 이사장 측이 학교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결정이었다.

사학을 개인 소유물로 인정한 이런 결정은 비리를 척결하고 시민대학을 세워온 그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역사를 되돌리는 결정이었다. 어떤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사학의 설립자 또는 법인 이사장의 경영권을 인정한다는 이 결정대로라면 학교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의 개인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고, 바로 이런 것으로 인해서 사학과 사회복지시설에서 온갖 부정과 인권유린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유재산 신성불가침성을 법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이다.

사학이나 사회복지시설이 개인의 소유라면 왜 세금을 퍼부어서 지원을 하느냐는 말에 법원 또는 정부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비리사학비리를 척결하고 학원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했던 대학들에 비리사학들이 다시 들어서는 결정을 사분위는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어서 올해는 10개도 넘는 대학에 비리재단이 복귀하는 상황을 맞아 분규가 재연되고 있는 형편이다.

   
상지대 총학생회 농성 텐트 모습. 박래군은 "지난 10월 17일로 구재단 복귀 768일째"라고 밝혔다.©박래군
 
그렇다면 사분위 결정 이후 상지대는 어떤 상황일까? 이사회 정관 개정을 상지대 구성원들은 왜 반대할까? 사분위 결정 뒤에 상지대 이사회는 법인 사무처를 김문기의 측근으로 개편했다. 그리고 학교의 예결산을 승인하지 않고 지연시켰고, 사회활동을 문제 삼아 교수 재임용을 막았고, 중장기 발전계획을 전면 수정토록 압박하고, 민주총장제를 부인하는 등의 태도를 보였다. 상지대에 확립된 민주적인 학교운영체제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2008년에 학내 분규에 학생회 간부를 매수, 협박하여 학생회장이 도피생활을 했다. 그는 실제로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그해 7월 15일 양심선언을 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해 재단을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30명을 고소․고발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댓글 다는 일을 누가 시켰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요즘에 김문기의 하수인들이 학내에 난입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교직원 김근주씨)

이사회 정관 개정은 교수 재임용 요건을 강화해 구재단 복귀 저지 투쟁에 앞장서는 교수들을 제거하겠다는 것, 보직교수들을 구재단 측 인사로 개편하기 위한 요건을 만드는 것, 개방이사제를 도입해 이사진을 측근들로 채우려는 것이어서 상지대 구성원들은 이를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배은영 의료경영과 교수는 “학교의 정상적인 거버넌스를 파괴하고 비민주적인 학교경영을 하려는 의도다. 불과 1년도 안 되어서 차근차근히 학교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비판했다.

박강민 총학생회장, 이승현 부총학생회장은 “사분위가 학생들의 정치의식을 높여주고 있다. 재단은 학생복지 확충 등의 문제는 관심도 없다. 3주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깨려고 한다. 이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짓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들은 지난해에 학생과 교수, 직원 등 3주체가 협의 끝에 등록금 9% 인상안에 합의했다고 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등록금을 인하하자고 할 때 학교 구성원들이 모여서 합의하여 오히려 등록금을 인상하자고 합의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상지대의 민주주의의 힘이라고 말했다. 총학생회장은 애교심을 유난히 강조했다. 자신들이 만들어온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재단적 지배’ 현상에 대해

   
김명연 교수협 공동대표 연구실 모습. 박래군은 "김 교수는 커피와 허브차를 냈다. 맞은 편은 총학생회 간부들이다. 김 교수는 '재단적 지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돈을 출연해서 재단을 만들고 이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문제를 어떻게 볼까 고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박래군
 
간담회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한 여학생이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총학생회 간부라는 장 아무개 학생은 나를 만나보고 싶어서 간담회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지난봄에 <민족21>이란 잡지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사인도 해 달라 하고, 사진도 찍자 한다. 얼떨결에 거기에 응하면서도 어색한 기색은 지울 수 없었다.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를 밭고 있는 법학과의 김명연 교수의 연구실로 우리 일행과 싸인 공세를 펼친 여학생,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총학생회 간부와 함께 차를 나누며 환담했다. 김 교수는 맛난 커피를 내려주고, 허브차를 내준다.

김 교수는 사학문제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전국 사학비리를 모아서 국회에서 박람회를 열고 싶어 했다. 긴급토론회의 주제는 학교법인의 공공성의 확보에 관한 것이 초점이다. 지금처럼 법원의 판례가 쌓여가고, 사분위가 노골적으로 학교법인을 설립한 이에게 소유권, 경영권을 인정하고 있다면 학교법인은 사익을 위한 것이지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 그가 말하고 싶은 일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나와 그의 의견은 같았다. 내 생각으로 우리 사회의 폭력과 차별의 근본 원인은 잘못된 소유구조에 있다. 재산권은 이미 인권의 목록에서 제거됐지만, 국가가 보호해야 할 재산권이 있다면 그것은 가난한 이들의 방 한 칸, 땅 한 평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 국가는 재벌을 비롯해서 부자들만의 재산권을 보호하는데 여념이 없다. 재개발 현장에서, 노동현장에서 수없이 목격하는 일이다. 법원조차 지배세력의 입장을 옹호하는데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그래서 ‘계급사법’이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김명연 교수는 ‘재단적 지배’란 말을 사용했다. 재단법인들이 사회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현상을 연구하고 싶단다. 재벌이나 권력층이 재단에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하고, 그를 통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사학 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들도 이런 현상의 하나다. 형식적으로 공익을 위하는 것 같은 법인들이 실제로는 사익을 위해 인권유린과 비리를 항상적으로 저지르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때라는 말에 적극 공감했다.

날이 어두워오고 있으므로 빨리 길을 떠나야 하는데, 김명연 교수가 저녁을 사겠단다. 그것도 몸보신할 수 있는 것으로. 그래서 그가 안내한 곳은 옻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우리 일행과 김 교수 5명이 옻닭 2마리를 시켜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뜯어먹고, 거기에 딸려 나온 죽까지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이미 어둠이 덮어버린 오후 7시 김 교수와 헤어져 강원도 인제로 달렸다. 운전은 내가 했다. 오후 9시 넘어서 도착한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에 위치한 ‘한국DMZ생명평화동산’의 이사장이 거처하는 서화재는 꽤나 품격 있는 한옥집이었다. 전방지역인지라 날도 무척 차가웠다. 지금까지 천릿길을 다니면서 가장 럭셔리한 방에서, 뜨끈뜨끈하게 방을 덮여놓으니 잠이란 놈이 너무 쉽게 몰려온다. 오늘 하루도 많이 달려왔다. 내일은 분단의 현장으로 간다. 철책 앞에서 나는 무엇을 찾을까? 거기에서 무슨 인권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인권센터후원 홈페이지 http://hrfund.or.kr/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①] 10월 9일 제주도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1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②]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3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③] 10월 11일 광주 망월동, 인화학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4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④] 10월 12일, 소록도 전북고속 천막농성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5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경남 산청 합동 묘역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9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⑥] 원폭피해자협회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3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⑦] 강정보, 달성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17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⑧] 부산 한진중공업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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