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천리길 일기’를 연재합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되는 국내 최초의 종합인권상담소로서, 박 이사는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천리길 일기’는 그가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7. 2011년 10월 15일 강정보, 달성보

어제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탓인지, 양압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잠을 잔 탓인지 몸 상태가 영 찌뿌둥하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날은 약간 흐렸다. 대구은행 본점 앞에서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정수근 생태보존국장을 만난 건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서울서 정주연 씨가 대구역에 내려와 합류해서 오늘은 7명이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오늘의 여정은 낙동강이다. 4대강 사업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창녕의 개비릿길을 걷게 된다. 개발주의가 불러오는 재앙과 자연 그대로의 숲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인권과 생태의 조화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물이 썩어가는 강정보, 달성보

   
▲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수하는 곳의 풍경. 박래군은 "멀리 강정보이 거대한 구조물이 보인다. 오른편이 자연스러운 강 형태를 지닌 금호강의 모습이고, 왼편이 인위적으로 강의 모습을 다듬은 낙동강의 모습이다. 모래를 준설했음에도 다시 강 왼편으로 모래톱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래군
 
첫 번째 간 곳은 대구 달성구에 있는 강정보였다. 보라고는 할 수 없는 9백 미터의 댐 공사 현장에서 “행복 4江, 낙동강아, 깨어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낙동강을 4대강 사업으로 깨어나게 한다는 발상부터가 문제다. 강을 그래도 두면 왜 안 되는가. 강이 그대로 구불구불 물길 따라 흐르는 걸 보지 못하고, 강을 한강처럼 직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최근 곳곳에서 4대강 사업의 성공을 축하하고, 홍보하는 일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강정보에 들렀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 준공식을 앞두고 홍보 차원에서 동원된 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강정보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강정보의 물은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썩어 있었다. 보 안 쪽의 물은 대구시민들의 식수로 공급된다고 하는데, 대구시민들이 이곳에 와서 본다면, 과연 4대강 사업이 내세운 수질이 개선되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정수근 국장은 4대강 사업 이후에 이곳 정수장의 탁도가 2배 이상 나빠진 게 자료로 확인됐다고 하는데, 흐르지 못하고 갇힌 강물이 썩는 것은 당연하다. 보 안쪽에는 물고기가 배를 위로 하고 죽어 자빠져 있고, 보 바깥쪽에는 누런 부유물이 거품을 일면서 떨어져 내렸다.

금호강과 낙동강을 합치겠다고 인위적으로 물길을 냈다가 수면의 차이로 강바닥이 급하게 침식되니 다시 그 물길을 메우고, 모래 준설을 했다가 모래가 쌓이니 다시 걷어내고, 낙동강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달성보도 마찬가지였다. 수중에서 모래를 준설했다고 하더니 다시 모래 준설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강정보와 달성보 현장을 보면서 “미친 짓이야”, “미친 놈들”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강을 죽이면서 강을 살린다고 억지를 부리는 저들의 사고구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강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게 자전거 도로를 내겠다고 하니 이런 미친 짓이 어디 있겠는가.

점심을 화원동산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는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쳐지는 광경이 보였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모래 준설을 했다가 다시 준설을 하고 있는 인간들의 미친 짓이 마음을 편지 못하게 했다. 지천인 금호강이 한 급 높은 낙동강과 합치는 곳이라서 두물머리라고 불리지 않는 게 아니냐, 남한강과 북한강처럼 급이 같은 강이 합쳐서 한강이 되는 곳은 두물머리라고 불리는 것과는 다르지 않느냐는 농담도 했다. 화원동산도 개발의 열풍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개비릿길을 그대로 둬라

   
▲ "낙동강 살리기 19공구 현장"인 창녕군 남지수변 억새 전망대 모습. 박래군은 "강가의 자연스레 형성되었던 억새밭을 갈아엎고, 자전거 길을 비롯한 스포츠공원을 만드는 공사현장이다. 거기에 다시 인위적으로 억새를 심겠다고 한다. 참 미친 짓이고, 미친 짓에 세금을 많이도 퍼붓는다"고 밝혔다. ⓒ박래군
 
창녕군 남지면의 양아지에서 출발해서 2.5킬로미터의 개비릿길을 걸어 들어갔다. 강가에 벼랑길이라는 뜻의 개비릿길을 짧은 코스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식생의 숲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삭줄이 엉킨 한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을 걷다보니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로 옆에는 낙동강이 흐르는데, 여기는 울창한 숲이다.

햇빛마저 들지 않을 정도로 대나무 숲은 어두컴컴했고, 감나무 이파리는 어느 화가도 흉내낼 수 없는 인상적인 색감으로 물들어서 길에 떨어져 뒹굴었다. 신선한 숲의 향기가 코로 들어오고 오염된 공기에 찌든 폐부를 정화시켜 준다. 이대로 얼마나 좋은가.

대구환경운동연합의 회원들이나 우리 일행은 금세 너무도 행복한 정들로 바뀌어 있었고, 아이들처럼 나뭇잎을 줍고, 사진 찍고 난리들이다. 이 숲에서, 그리고 강가의 이 길 위에서 이처럼 행복할 수 있는데, 여기에 자전거 길을 만들겠단다. 장보러 가던 소로길이었던 이 길을 이대로 보존하면 안 되나. 언젠가 다시 왔을 때 이 길이 시멘트로 덮인 자전거 길이라면, 이 길에서 자전거 타는 게 오늘 우리가 이 길을 걸을 때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전국의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에게 천편일률적인 자전거 길을 반대한다고, 자연을 훼손하는 자전거 길을 반대한다고 성명이라도 내라고 하고 싶다.

자연 그대로의 개비릿길 맞은 편은 곳곳에 4대강 사업으로 인위적으로 둔치를 만들어놓고 심지어는 공원을 만들겠다고 심어놓은 나무들이 말라 죽은 모습들이 건너다 보인다. 다시 지천이 남강이 낙동강과 합수하는 지점에 모래 준설작업이 한참인 맞은편으로 나왔다. 해는 서녘에 걸렸고, 새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창녕군 남지억새전망대 사업은 진행 중이었다. 강변의 억새밭을 모두 드러내고, 거기에 스포츠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핵심은 자전거 길이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인위적으로 억새를 심어서 구경하게 한다고 하니, 이런 미친 짓이 어디 있는가. 자연 그대로의 억새밭이 아닌 갈아엎고 거기에 돈을 처들여 인공의 억새밭은 만들고 거기를 건강을 위한 스포츠공원으로 삼는다는 것이니, 돈지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상은 했지만, 4대강 사업 현장에서 강은 죽어가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난 뒤에는 다시 보를 허물어야 그나마 강물의 수질도 개선되고, 강의 자연스런 흐름을 되살릴 것이다. 자연의 복원력에 기대어 다시 강이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까. 그리고 농민들의 욕망과 맞아떨어진 농지 리모델링 사업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래 준설한 것을 멀쩡한 논에 두껍게 덮어놓고는 지목을 변경해준다고 하니 농민들이야 좋겠지만, 오랜 세월 만들어진 논은 실종된다. 이런 사람들의 욕망이 자연과 자연친화적인 농업까지 망치고 있다.

이런 게 욕망의 개발의 근저에는 혹시 인권의 철학이 작동하지는 않을까? 자연을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근대인권론이 만들어낸 자연파괴를 돌아보아야 한다. 동물의 권리만이 아니라 자연의 권리로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만 같다. 자연 파괴로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익보다 이런 파괴들이 쌓여 대재앙으로 이어지는 그런 것들을 목도하는 우리가 4대강 사업과 같은 대대적인 자연 파괴 작업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 문제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 자연 속에 인간이 인간의 몫만큼만 누리면서 살아가는 가는 세상을 그려본다. 인권의 철학도 생태의 철학과 만나 재구성되어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깊이 갖게 한다.

밀양의 너른마당

개비릿길을 떠나 밀양으로 달리는데 벌써 길은 어두웠다. 밀양 삼문동에 위치한 ‘너른마당’은 이계삼을 비롯해서 백 명 정도 되는 이 동네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2층짜리 공간을 만들었다. 2층에는 회의나 행사를 할 수 있는 너른 방과 북카페가 있고, 1층에는 식당과 함께 아이들의 공부방이 있고, 생협도 있고, 되살림 가게도 있다. 이런 정도이 공간이 서울에 있다면, 이 정도만 되도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도 빨리 이 정도의 공간이라도 만들어 인권센터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른마당에 함께 하는 이들의 이웃사촌끼리의 격의없는 대화와 나눔이 참으로 좋았다. 더욱이 어탕정식으로 먹은 저녁도 좋았고, 너른마당에 돌아와 자연산 은어와 함께 마신 막걸리도 너무 좋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에 우리도 덩달아서 행복한 것 같았다. 집에 전화를 해서 마나님과 아이들과 통화했다. 집 떠나온 지 벌써 1주일이다.

그런 탓일까? 이계삼 선생네 집에 와서는 방과 거실을 마다고 마당에 이선일이 텐트를 치고, 최현모와 같이 잔다. 집주인도 신기하다고 내다보고. 이렇게 천리길 1주일이 지나간다. 16일(일)에는 양산 솥발산공원과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으로 간다. 솥발산공원에는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등 한진 열사들과 영남지역의 노동열사들의 묘들이 있다.

인권센터후원 홈페이지 http://hrfund.or.kr/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①] 10월 9일 제주도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1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②]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3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③] 10월 11일 광주 망월동, 인화학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4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④] 10월 12일, 소록도 전북고속 천막농성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5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경남 산청 합동 묘역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9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⑥] 원폭피해자협회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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