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삼성X파일’ 이상한 판결-언론의 이상한 침묵
‘삼성X파일’ 이상한 판결-언론의 이상한 침묵
[기자수첩] ‘떡값검사’ 폭로한 노회찬 유죄 판결 부당한 이유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부장 양현주)는 28일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녹취록에 등장한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노회찬 전 국회의원에 대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노 전 의원은 즉각 재상고 의사를 밝혔지만, 이 판결이 확정되면 노 전 의원은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판결의 핵심은 도청 녹취록을 인용한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 위법인지 여부다. 최근 대법원은 지난 2005년 당시 노회찬 의원이 도청 파일의 내용이라며 검찰이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고 밝힌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것은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법은 이번 파기환송심을 통해 ‘이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게재한 것이 위법인지’를 따졌고, 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불법 도청 녹취록을 인용한 보도자료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행위는 면책특권이 적용되지만 해당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기자가 아닌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한 행위는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노회찬 전 의원(오른쪽에서 두번째)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mediatoday.co.kr
 
이번 판결은 노회찬 전 의원의 총선 출마 등 진보 정치인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주목되는 면이 있지만, 향후 이 같은 사건에 대한 법원의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논란의 지점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행위와 인터넷 의원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리는 행위를 다르게 보는 법원의 시각이다.

현재 법원을 비롯해 정부 기관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해당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일상적으로 올리고 있다. 또 기업들은 홈페이지 이외에도 다양한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을 통해 사내 소식을 알리는 시대다. 또 지난 6․2 지방선거, 10․26 재보궐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스마트폰 가입자 2000만 명을 넘어 섰고 실시간 소통이 활발한 시대에 보도자료 배포와 인터넷 배포를 구분해 유-무죄를 달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다.

또 당시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것은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검사들의 실명이 적시된 중대한 내용이었다. 녹취록에는 지난 1997년 9월 9일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학수 비서실장이 호텔 일식집에서 대선 자금 및 검찰 ‘떡값’을 의논한 내용이 담겨 있다. 노회찬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떡값 검사’ 명단을 폭로하고 보도자료와 인터넷을 통해 알린 것은 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의미였다.

노회찬 전 의원이 이 재판부 법정에서 “검찰, 언론사 모두 이 사건에 연루됐다”며 “이런 일을 알더라도 국회 법사위에서 법무부 차관까지 연루된 X파일에 입 다물고 있는 것이 국회의원의 할 일인지, 사실 여부를 따져 묻는 게 할 일인지” 물은 것도 이 사안의 중대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2011년 국회를 비롯해 언론도 이 사건의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29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경향, 국민, 동아, 서울,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에서는 중앙일보, 서울신문은 단신 기사를 실었고, 나머지 신문은 단신조차 싣지 않았다. 이같은 언론의 침묵 때문에 2005년 당시에 노회찬 의원 스스로가 이 문제를 더욱 알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언론은 노회찬 전 의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KwonYoungGhil)에 “떡값을 준 사람, 떡값을 받은 사람, 오고가는 떡값 속에 이뤄진 추악한 유착비리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면서 “오로지 그것을 보도한 기자와, 그것을 국민에게 알린 국회의원만이 법의 처벌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권영길 의원은 “사정당국이 눈을 감고, 언론이 외면하는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권한이 ‘면책특권’이다. 노회찬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을 했을 따름”이라며 “오늘 사법부는 노회찬과 정의, 국민의 상식을 모두 외면했다. 또한 고법의 이번 판결은 시대변화에 눈감은 대한민국 법원의 초라한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호 MBC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leesanghoC)에 “삼성 수뢰의혹 당사자인 검찰이 기소한 이상한 재판, 이상한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이번 판결은 2011년 사법부, 검찰 그리고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