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대표는 서울에서 지고 지방에서 이겼으니 무승부란다. 대통령은 젊은 세대의 뜻을 존중하겠다는데 대표는 20·30·40대 표심을 조롱한 셈이다.…지난해 6.2 지방선거와 지난 4.27분당은 옐로(경고)카드였다. 두 번 경고를 받고도 변하지 않으니 이번에 사실상 레드(퇴장) 카드가 나온 셈이다.”

중앙일보는 10월 28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내주고도 부족한가>라는 사설을 실었다. 서울시장 선거를 바라보는 보수언론의 문제의식이 드러난 사설이다.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로 ‘레드(퇴장)카드’를 받았단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네거티브’로 재미를 보려 했던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운동에서도 지고, 결과에서도 지고, 선거 이후 대처에서도 ‘패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평일에 치러진 서울의 보궐 선거에서 투표율 48.6%라는 수치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한국일보 10월 27일자 1면.

투표 의향이 있고 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 대부분이 투표장에 나갔다는 얘기다. 서울에서 재보선이 열리면 40% 투표율 돌파는 쉽지 않다. 지난해 7·28 재보선 당시 서울 은평을 투표율 40.5%가 그나마 높은 투표율이었다.

이번에는 한 지역구가 아닌 서울시 전체 투표율이다. 평일에 열린 이번 선거의 48.6% 투표율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는 지난해 4월 9일 18대 총선 당시 서울지역 투표율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당시는 휴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시 투표율은 45.8%였다.

휴일이 아닌 평일에 열리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서울 시민들이 생업을 제쳐놓고 투표장에 나갔다는 얘기다. 거기에 민심이 담겨 있다. 결과는 범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후보가 53.4%,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46.2%로 나타났다. 7.2%포인트 차이였다.

지난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0.6%포인트 차 신승을 거둔 것과 비교할 때 한나라당은 ‘완패’한 셈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서울 25개 구 가운데 21개 구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했다.

이번 선거가 총선과 같이 열렸다면 서울지역 48개 지역구 가운데 한나라당은 7개 지역구 정도에서 당선자를 낼 수 있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패했다. 인정하건 인정하기 싫건 그것이 팩트다. 서울 양천구청장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승리했다는 점에 자위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10·26에 담긴 민심의 뜻을 외면하는 처사다.

   
@CBS노컷뉴스

   
@CBS노컷뉴스

여야가 사활을 걸고 붙은, 여야 대권주자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였던, 서울은 물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선거는 바로 서울시장 선거다. 1998년 이후 한나라당이 한 번도 지지 않았던 바로 그 서울시장 선거였다. 한나라당은 13년 만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했다.

국민은 10·26 재보선 결과를 보고 한나라당이 반성과 자성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기자들에게 전한 반응은 “이겼다고도 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공식 논평은 더 심했다. 김기현 대변인은 “서울시장 선거를 제외한 나머지 선거에서 전국에 걸쳐 모두 완승함으로써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로운 희망의 등불을 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완승’을 했단다. ‘희망의 등불’을 보았단다.

한나라당 공식 반응은 민심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는 반응이다. 한나라당은 정부는 물론 의회권력을 장악한 정당이다. 민주당 등 야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의석을 지닌 ‘공룡 정당’이다.

힘을 너무 많이 가져서일까. 국민이 선거를 통해 엄중한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별다른 반응이 없다. 민심이라는 기후, 환경의 변화에 맞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왜곡하거나 뭉개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CBS노컷뉴스

한나라당은 지도부 책임론도 보이지 않는다. 개별 의원 차원에서는 언론을 향해 답답한 심정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냥 그뿐이다. 이쯤 되면 한나라당이 정말 이번선거에서 승리한 것 아닌가 착각하게 만든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자리를 지키려나 보다. 다른 한나라당 지도부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려나 보다. 선택은 한나라당이 하는 것이다. 홍준표 대표가 자진 사퇴하고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쇄신과 변화를 약속해도 등 돌린 민심이 되돌아올지 의문인데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10월 28일자 35면.

정말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영영 민심의 선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지 그냥 뭉개는 모습이다. 민심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는 40대 표심은 한나라당에 경고를 넘어 재앙을 안겨줬다. 방송 3사가 조사한 40대 표심은 박원순 66.8%, 나경원 32.9%로 조사됐다. 40대가 일방적으로 여권에 등을 돌렸다는 얘기다.

‘레드카드’를 받아도 그게 레드카드인지 뭔지 인식도 못하는 정당,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이 영원히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정당,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뭉개는 정당,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이 딱 그런 모습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는 중앙일보 10월 28일자 35면 <갈라파고스 거북이와 한나라당>이라는 칼럼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갈라파고스는 스페인어로 거북이 섬이라는 뜻이란다. 그만큼 많은 수의 거북이가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 비해 오늘날에는 거북이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일부 종은 멸종되기까지 했다. 내년이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총선과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 한나라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생존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