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챙겨 먹고, 문 밖을 나섭니다. 어둠 가득한 골목길을 종종 걸음으로 지나갑니다. 마을버스 첫차 시간에 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헐레벌떡 버스에 뛰어 올라 앉고 나니 창밖에 ‘서울시장 보궐선거’ 안내 포스터가 보입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파옵니다.  선거에 참여하고 싶은데, 우리 아들이 꼭 선거에 참여하라고 했는데, 마음은 앞서지만,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입니다. 식당 아침손님을 받으려면 일찍 준비해야 합니다. 투표소 열리는 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늦으면 식당 사장님께 눈치가 보입니다.

오후 8시까지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저녁 손님 받고 마무리 정리하고 집에 들어가면 한밤중입니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누우면 금방 잠이 듭니다. 몸은 피곤해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 우리 아들, 우리 딸 공부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번듯한 옷 한 벌 못 사줘도 남들 다 신는다는 신발 하나 못 사줘도 '엄마, 힘들지' 하며 웃어주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기운을 냅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면 다시 새벽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사연은 서울에 사는 어느 평범한 시민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났습니다.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율은 48.6%로 나타났습니다.

금천구는 44.3%, 중랑구는 44.4%로 나타나 평균을 밑돌았고, 서초구는 53.1% 강남구는 49.7%로 평균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서초구와 비교해보면 금천구와 중랑구는 거의 10% 포인트 정도 투표율이 낮습니다.

   
@CBS노컷뉴스
 
사람들은 투표율을 놓고도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강남 3구 투표율이 높다, 금천구 중랑구 투표율은 왜 이렇게 낮은가, 강남 사람들의 적극적인 투표의지를 배워야 한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 중랑구 금천구 주민들은 정말 강남구 서초구 주민들보다 투표참여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정치에 무관심해서 그럴까요.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랑구나 금천구는 강남구나 서초구보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비율이 높습니다. 하지만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는 사람도 우리 아이에게 ‘행복한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때 ‘눈칫밥’을 먹지 않길 바라고, 가진 것 없는 부모 밑에서도 건강하게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힘이 돼 주는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을 꿈꾸기 마련입니다.

금천구 중랑구 주민들은 특별히 강남구 서초구 주민들보다 정치의식이 결여돼 있어서가 아니라 선거에 참여하는 게 그들만큼 수월하지 않아서는 아닐까요. 아파트 1층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출근하는 누군가와 새벽녘 일어나 일터로 나가야 하는 또 다른 누군가는 선거에 임하는 환경과 상황이 다를 겁니다.

가진 것 없고, 배경 없다고,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좋은 정치인’인지 판단할 눈은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재보궐 선거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휴일에 치러지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는 그나마 부담이 덜하지만 평일에 열리는 재보선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에게, 시간을 내기 정말 어려운 이들에게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재보선을 없애자고요?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일터에 양해를 구하고 투표에 참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리 있는 얘기일 수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고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에게 맡겨두지 말고 사회가 ‘시스템’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재보선 지역주민의 경우 출퇴근시간 조정, 유급 투표시간 보장, 선거당일 잔업 자제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방안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재보선은 정말 유권자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 선거일까요. 어쩌면 선거에 참여하기 수월한 이들을 위한 선거는 아닐까요.

금천구 중랑구 주민들의 투표참여율이 낮다고 지적하기에 앞서 그들은 왜 투표율이 낮을까,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금천구나 중랑구나 강남구 서초구 할 것 없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재보선이 '그들만의 선거'가 되지 않도록 이제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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