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MBC를 사랑했던 것이다. (MBC뉴스의 몰락은) 이미 예상했던 것이고,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클로징멘트’로 이명박 정부 초기 민주주의 후퇴를 비판하곤 했던 신경민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MBC 뉴스에 대해 말을 자제해왔던 신 전 앵커는 MBC의 최근 뉴스 행태를 두고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 편파보도로 수면위에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신 전 앵커는 이달초 정년퇴임식을 갖고 30여 년 간의 기자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조용히 MBC를 떠났다.

신 전 앵커는 20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재의 MBC 뉴스 뿐 아니라 MBC 전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MBC는 원래부터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추구하고자 하는 집단이 아니었고, 외부에 의해 주어진 자유를 누리다 외부의 강력한 세력에 의해 그런 자유를 빼앗겼을 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그동안 시민들이 MBC에 걸었던 기대는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드러냈다고 그는 역설했다.

신 전 앵커는 이번 MBC의 선거보도와 MB 사저 이전 보도에 대해 “80년대 중반의 MBC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뉴스를 하다보면 권력 감시에 대한 감각 마비현상이 온다. 당시엔 군부독재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적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고, 비판은 철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었다”고 비판했다.

   
신경민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
이치열 기자 truth710@
 
신 전 앵커는 현재 뉴스제작 방식에 대해 “뉴스 편집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며 “이미 엄기영 사장 때부터 몇차례 인사이동을 통해 편집감각이 굳어지고 마비된 상태가 왔고, (이미 MBC의 권력비판 정신은) 한참 전에 끝났다. 그런데 요새 선거의 편파보도가 두드러지니 새로 보는 것일 뿐이다. MBC 뉴스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냉담한 평가를 내렸다.

신 전 앵커는 “지금 MBC 뉴스를 보면,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지가 나타나는데, 이렇게 뉴스를 제작해서는 안된다”며 “각 후보별로 제기된 의혹이 규명될 만한 것인지, 단순한 제보에 불과한 것인지를 가린 뒤 신뢰성이 있는 지적이라면 여야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단지 홍준표 대표가 제보를 갖고 묻는 수준의 내용을 갖고 과연 리포트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립성이니 객관성이니 하는 말로 지금의 뉴스를 자평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런 뉴스배치 등은 편집이라기 보다 일종의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MB 사저 이전 보도가 청와대 해명만 나열했다는 비판과 관련해 신 전 앵커는 “이는 말할 가치도 없다”며 “최소한의 기자 감각으로 봤을 때도 이는 너무나 분명한 문제이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도국내의 위 아래 어디서도 안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개탄했다.

그는 MBC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크게 보면 방송체제의 문제와, 좁게 보면 보도국 내부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면서도 “무엇보다 이런 현상은 항상 되풀이돼왔다는 점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편이 뜨게 되면, 이제 말로만 외쳐댔던 ‘공영방송’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사실상 ‘공영방송 종언의 시대’가 오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보도국 내 기자들의 투지와 곤조(근성)도 사라졌다는 내부비판에 대해 신 전 앵커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 많은 기자들이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며 “기자들이 자기 기사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뉴스 전체의 문제점이나 다른 이들의 뉴스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같다. 사장이 바뀐 뒤 보도국 내부의 건강성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현실이 됐다”고 개탄했다.

또한 이번 편파보도를 통해 그는 그동안 MBC가 노조에 장악된 좌파 빨갱이 집단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많은 국민에게 알려준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신 전 앵커는 MBC 내부에 대해 “수년간의 인사와 징계 등에 의해 조직원들이 패배주의에 빠져있다”며 “신망을 받을 사람은 전부 흩어졌다. 그러니 조직 내엔 패배주의와 권력에 의한 순치에 팽배해진 것이다. 돌이키기도 어렵고, 기대할 수도 없는 단계에 와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MBC를 비롯한 방송사들이 그동안 타율적으로 주어진 언론자유를 즐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눈녹듯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전 앵커는 지난 1981년 MBC에 입사한 뒤 국제부장, 워싱턴특파원, 보도국장을 거쳐 <뉴스데스크> 앵커를 마지막으로 30년 기자생활을 마쳤다.

다음은 지난 20일 저녁 신 전 앵커와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MBC 선거보도와 MB 사저 보도의 편파성에 대해 비판이 많다.
“지금 MBC 뉴스를 보면서 80년대 중반의 MBC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뉴스를 제작 편집하는 후배들 가운데엔 이것이 처세이며, 맞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80년대 중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 뉴스를 하다보면 권력 감시에 대한 감각 마비현상이 온다. 당시엔 군부독재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적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고, 비판은 철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었다. 그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에 그렇게 기자생활했던 많은 이들이 승진하고, 특파원 가고 출세했다. 잘 나갔다. 반면, MBC의 미래 등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 하는 사람으로 치부됐다. 지금의 MBC는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인 것 같다.”

-현재 MBC 뉴스가 그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뉴스의 편집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미 엄기영 사장 때부터 몇차례 인사이동을 통해 편집감각이 굳어지고 마비된 상태가 왔었다. 몇차례 인사를 통해 누가 뭘 어떻게 한다는 역할은 이미 정해졌고, 이는 내부에 주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지금의 편집감각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MBC의 권력비판 정신은) 한참 전에 끝났는데, 요새 선거의 편파보도가 두드러지니 새로 보는 것일 뿐 MBC 뉴스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MBC의 선거 편파보도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우려가 있긴 하다.
“지금 MBC 뉴스를 보면,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지가 나타나는데, 이런 식으로 뉴스를 제작해서는 안된다. 각 후보별로 제기된 의혹이 규명될 만한 것인지, 단순한 제보에 불과한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뉴스의 가치에 따라 제작 편집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신뢰성이 있는 지적이라면 여야를 따질 필요가 없다. 홍준표 대표가 제보를 갖고 묻는 수준의 내용을 갖고 과연 리포트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 확실한 내용으로 뉴스 제작을 해야 한다. 중립성이니 객관성이니 하는 말로 지금의 뉴스를 자평하려는 것은 잘못돼있다. 이런 뉴스배치 등은 편집이라기 보다 일종의 기술이다.”

-MB 사저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청와대 해명만 나열했다는 비판이 거센데.
“이는 말할 가치도 없다. 너무나 뻔한 것이다. 최소한 기자의 감각으로 봤을 때 너무나 분명한 문제이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의혹의 실체를 규명할 생각은 않고, 청와대 해명에 급급한 보도가 나갔을때)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도국내의 위 아래 어디서도 안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기자의 ABC에 해당되는 것이다. 논급할 가치도 없다.”

-MBC가 왜 이렇게 됐다고 보는가
“크게 보면 방송체제의 문제와, 좁게 보면 보도국 내부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항상 되풀이돼왔다는 점을 봐야 한다. 새로운 일이 아니다. 방문진 이사를 정권이 선발하고, 이들이 다시 사장을 정하는 방송체제가 계속 살아있는 한 계속 반복될 수 있다. 또한 종편이 뜨게 되면, 이제 말로만 외쳐댔던 ‘공영방송’은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공영방송 종언의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최소한 립서비스 차원의 ‘공영’도 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보도국 주요 간부들에 의한 요인이 크다는 것인가.
“지금 편집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5공 당시 막내 기자로 뛰면서 5공의 폐해를 몸으로 느꼈던 이들이다. 대체로 80년 대에 입사한 이들이다. 그들 역시 서슬퍼런 5공이었지만 국민에게 얼마나 저버림을 받았는지, 권력은 한순간에 눈녹듯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자들의 투지나 곤조(근성)도 사라졌다는 내부비판도 있다.
“대책이 없는 것 같다. 많은 기자들이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9시뉴스에 나가는 20여 개 뉴스 꼭지 가운데 자신의 뉴스가 나가냐 안나가느냐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뉴스 전체의 문제점이나 다른 이들의 뉴스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같다. 뉴스 제작과정에서 서로 다투고 논쟁하고 활기있게 했던 때가 과거 잠깐 있었다. 사장이 바뀐 뒤 보도국 내부의 건강성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현실이 됐다.”

-MBC 기자들, PD들은 노조에 장악된 좌파집단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나.
“MBC가 빨갱이, 노조에서 장악된 집단이라는 그런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 편파뉴스를 통해 증명됐음을 많은 시청자에게 보여줬다. 지난 10년 간 노빠, 빨갱이라는 비난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목도하게 됐다. 그러한 주장은 허구적인 프로파간다인 반면 그동안 많은 국민이 MBC에 너무나 과도한 기대를 했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MBC 뉴스를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기자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더이상 뭐라고 얘기할 게 없다.”

-MBC 뉴스의 추락과 몰락이 우리 언론계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준다고 보는가.
“MBC의 시스템을 공영방송이라고 해왔는데, 말로만 ‘공영방송’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사실상 MBC는 공영방송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말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모두가 착각했던 것이다. 이런 방송을 관영 내지 국영이라고 해야지 이게 무슨 공영인가. 그동안 MBC의 공영방송과 언론자유는 시민들이 이뤄낸 민주화에 의해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었고, 이를 우리가 누렸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나 PD협회, 기자협회 등이 생기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그러다 외부에 강력한 세력이 생기니 그런 민주와 자유가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MBC에 민주, 자유의 근육질이 있던 게 아니다. 그저 상대적이었을 뿐이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MBC가 오히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는 생각이다. 외부의 강력한 세력이 조직 내부를 하나하나 흔들어대니 그나마 양질의 인사들은 전부 골방에 갇혔다. 좋은 기자 PD들이 많은 MBC지만 수년간 골방에 묻히니 이젠 찾아보기도 힘들게 됐다.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전부 손을 본 것이다.”

-그래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자답고 PD답고 하는 사람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나가야한다. 알아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수년간의 인사와 징계 등에 의해 조직원들이 패배주의에 빠져있다. 신망을 받을 사람은 전부 흩어졌다. 그러니 조직 내엔 패배주의와 권력에 의한 순치가 팽배해있는 것이다. 돌이키기도 어렵고, 기대할 수도 없는 단계에 와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MBC를 포함해 대한민국 방송은 우리나라의 분열 속에서 휘둘리고 있다. 내곡동 보도나, 선거국면의 보도를 볼 때 우리는 지배자의 뜻대로 하는 방송이자 그런 체질이라는 것을 만방에 보여줬다. 이런 문제의 근본을 뜯어고치려면 사장을 뽑는 방식에서 정권이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KBS 이사회와 MBC 방문진을 이대로 두면 결국 100년이 지나도 제2의 김인규와 김재철이 올 수밖에 없다. 기자들도 이젠 구체적인 안을 갖고 국민에 요구해야 한다. 또한 타율적으로 주어진 언론자유를 즐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눈녹듯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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