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미 국방부 중앙통제실을 방문해 미군 지휘부로부터 한반도 안보정세를 브리핑받은 것을 두고 주권국가로써 부끄러운 일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우리의 안보를 노골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겠다고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특히 펜타곤의 미군 지휘부가 이례적으로 타국가원수를 상대로 안보상황 브리핑을 한 배경을 두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대규모 미군 군수물자 수출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면서 더욱 대통령의 행보에 신중함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은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 안보상황에 대한 얘기를 들으러 대통령이 미국 국방부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고 우려했다.

김 편집장은 “군사동맹을 위해서라는 이유라지만 미국 국방부 수뇌부가 브리핑까지 하게 된 이유가 중요하다”며 “최근 MB의 방미에 대해 가장 많은 기대를 하고 있던 곳이 미 국방부였다. 미군에게 한반도에 관한 3대 현안이 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한일군사협정, 무기판매 군수협력 확대 등”이라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 방미 일행이 12일(현지시각) 미 워싱턴 DC 펜타곤에서 리언 페네타 국방장관 등과 회담하고 있다. ⓒ청와대
 
김 편집장은 “미국 국방부는 이 세 가지를 이번 이 대통령의 방미에서 풀고 싶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무엇보다 “얼마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인민무력부장을 동행해 군사동맹을 강하게 결속해왔고, 우리 역시 미국에 군사적 동맹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한반도의 남북한이 점점 더 강대국 의존형 국가가 돼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14일자 사설에서 이 대통령의 행보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 대통령이 그제(현지시각) 미 국방부를 방문해 미군 지휘부로부터 한반도 안보상황을 브리핑받은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청와대는 미국한테 대단한 대접을 받은 듯이 설명하지만 주권국가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성토했다.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또 가장 잘 알아야 하는 나라는 바로 우리이며, 대통령이 우리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한테서 받는 브리핑에 최고의 정보가 집중되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체제라는 것이다.

한겨레는 “우리 대통령이 이를 토대로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안보정세를 브리핑해줄 수는 있으나 거꾸로 우리 대통령이, 그것도 미국 백악관도 아닌 국방부를 찾아가 안보정세를 브리핑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며 “만약 우리 대통령이 현 체제에서 한반도 안보상황을 파악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면 그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번 미 국방부 브리핑을 두고 한겨레는 “이 대통령 쪽에선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한다는 이미지 효과를 고려한 듯하지만 짧은 생각”이라며 “오히려 우리 힘으로 안보를 책임지기 어려우니 미국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우려가 더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방문하는 동맹국 정상들 가운데 누구도 미 국방부에서 자국 안보상황을 브리핑받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

한겨레는 “이번 일은 주권국가 대통령이 생각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이라며 “미국에 대한 의존심리가 워낙 깊어서 상식적인 판단 기준마저 흔들리는 것 아닌가 걱정”이라고 개탄했다.

   
이명박 대통령 방미일행과 미 국방장관 등 미군 관계자와 회담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이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미국의 역할 확대와 중국 견제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매우 편향적이며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터에 노골적으로 미국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런 발언이 우리 국익을 해친다”며 “대통령은 미국에 가면 한-미 동맹을 다지고 중국에 가면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튼튼하게 유지하되 주변 여러 나라와도 두루 협력하는 게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신문은 “그러나 이 대통령처럼 말하고 다닌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라며 “대통령의 신중한 발언, 신중한 행보가 요구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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