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퇴폐 풍조 심화", “北에 성매매ㆍ불륜 만연..性문란 행위 확산”, “북한에 스트립쇼 하는 간부 전용주점이 있다? 없다?” - 이런 제목의 기사가 9일 오후부터 인터넷과 종이신문 등에 일제히 실렸다. ‘대북 소식통’이 밝힌 북한의 성 문란 실태는 대단히 충격적인데 이 자료는 국가정보원이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은 9일 통일부 기자단에 이 자료를 보내고 기자들은 국정원 제공이라고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자료를 접수해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통일부 기자단을 통해 확인됐다.

국정원은 지난 7월 ‘북한 당국이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군량미를 걷고 있다’는 자료를 언론에 제공해 보도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언론은 국정원이 자료를 제공한 사실은 보도치 않아 국정원과 언론의 합동작전이 관례화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국정원이 북한 성 실태에 대한 자료를 언론에 넘긴 것은 북한 노동당 창당 기념일인 10월 10일을 하루 앞둔 시점으로 그 의도는 북한 흠집 내기로 추정된다.

   
동아일보 10월10일자 14면.
 
국정원 지난 7월에도 '이름 뺀' 북한 정보 제공

남북은 정전상태로 정전협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공격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남북간에 여러 통로로 접촉이 이뤄지면서 정상회담 추진설까지 나도는 상황에서 국정에 관한 가장 비밀스런 일을 하는 국정원이 언론을 선전기구로 삼아 북한의 성문화를 꼬집는 자료를 내는 것은 떳떳해 보이지 않는다. 국정원이 해야 하고 모두가 수긍할만한 그런 작업도 많을 터인데 하필이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 관련 자료를 남의 이름으로 내보내는 것이 국민의 혈세를 쓰는 큰 기관이 할 일인지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국정원 작전세력으로 전락한 언론도 문제

게다가 국정원의 작전 수단으로 전락한 언론은 언론의 정도에 비춰볼 때 매우 심각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언론이 정부 기관이 제공하는 자료를 기사화 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언론의 입장에서 정부기관이 어떤 식으로 자료를 전달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 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가동된다는 점과,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투명한 방식이어야 한다. 그것은 공식 기자회견, 보도 자료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는 품격을 지키는 형식을 취해야 하고 언론은 정부의 제공 자료에 대해 나름대로의 검증을 거친 뒤 기사화하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10월10일자 10면.
 
국정원은 그러나 이번에 북한의 성 문란 실태에 대한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파악했는지를 밝히기는 커녕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라는 것도 기사 속에 밝히지 않는 조건을 단 것이다. 이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 국정원은 책임을 지지 않게 되고 언론만이 몽땅 책임을 지는 경우로 연결된다. 남북이 대치상태로 북한 내부 실태에 대한 확인이나 검증이 거의 불가능해서, 설령 문제가 생긴다 해도 북측이 남측 언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거의 없는 현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언론이 북한 관련이 아닌 다른 분야의 보도에서도 원칙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국정원이 이번에 언론사에 전달한 자료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아직 검증할 방법은 없다. 남측 언론은 수년전부터 ‘북한 소식통’ 또는 ‘북한 현지 주민’을 인용한 북측에 대한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소규모 대북 방송 또는 대북단체 등이 생산한 이런 기사를 언제부터인가 중앙일간지, 공중파 TV 등도 앞 다퉈 인용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키 어려운 ‘카더라’ 수준의 기사들은 취재의 기본 원칙을 지켰는지 불투명하지만 내로라하는 대중매체들이 보도함으로써 ‘기정사실’로 둔갑하거나 격상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국정원도 ‘북한 소식통’ 등의 아리송한 소식통을 앞세워 언론의 보도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 이번에 확인되었다.

진위 확인할 수 없는 보도, 앞다투어 재생산 하는 공중파

국정원의 품격 훼손과 함께, 언론이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이런 사례는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 특히 자심해지고 있다. 군사정권에서 횡행했던 북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는 권언유착 결과물의 하나다. 날조 또는 허위 사실로 채워진 이들 ‘기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짓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 어느 언론도 정정 보도 와 같은 언론의 기본 책무를 이행치 않는다. 금년 들어 널리 알려진 대북 관련 ‘기사’가운데 나중에 허위로 밝혀진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CBS노컷뉴스
 
- `대북전단' 보수단체 간부의 모친이 지난 3월 10일 살해되자 일부 언론은 보수 단체 등의 주장에 따라 북한이나 친북 단체의 테러일 가능성을 주장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같은 달 24일 검거된 범인은 ‘조선족 아닌 내국인으로 테러 용의점이 없다는 경찰 수사결과가 최종 발표되었다. 테러 가능성을 주장했던 언론은 어느 곳도 정정기사, 사과 기사를 싣지 않았다.

- 통일부는 지난 2월 중동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북한에서도 집단시위 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에 대해 확인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2월 24일 여러 매체들이 보도한 ‘북한 집단 시위설’에 대해 “확인된 사항이 없다”면서 “화폐개혁 이후 민생과 관련한 소규모 항의 등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집단시위 형태로 볼만한 움직임이 있다는 정황은 포착된 게 없다”고 확인했다(통일뉴스 2011년 2월24일).

- 김정은 대장이 쌍안경을 거꾸로 들고 있다는 ‘기사’가 지난 2월 남측 대부분의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뒤늦게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국의 쌍안경 전문 업체인 'Just-Binoculars'의 짐 타라보치아 대표는 지난 2월 22일 "김정은의 쌍안경'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며 그가 사용하는 쌍안경은 '역 포로 프리즘(reverse porro prism)' 기능, 즉, 거꾸로 된 외형에 프리즘을 내장한 형태로 일반적인 쌍안경과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다.

-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평양에서 총살된 것으로 남측 언론이 지난 해 3월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박남기(77)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대북 정보서비스회사가 지난 2월 주장했다(조선일보, 노컷뉴스 2011년 2월1일).

언론이 제 4부라고 하는 것은 언론의 독자적인 영역 때문이다. 언론은 정치와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언론이 만약 정부와 한 통속이 되거나 정부의 나팔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언론이 아니다. 언론의 독자적인 영역을 수호하기 위해서 정부의 공식 발표라 해도 그것을 검증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적용된다. 정부 발표는 공신력이 있다 해도 그에 대한 보도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에서 언론은 벗어나지 못한다. 국정원의 자료 제공도 찜찜한 모습이지만 국정원을 밝히지 않은 채 보도한 언론의 행태는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으로 21세기 언론이 가서는 안 될 막장 언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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