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출시 1년 반, 세계 미디어 산업은 조용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주요 언론사들이 잇따라 아이패드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이용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수익 창출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종이 신문의 종말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에서 기회를 찾는 언론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30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해외 미디어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미주리대 언론 대학원이 아이패드 사용자 56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을 묻는 질문에 사파리 웹 브라우저(21%)와 메일(20%)에 이어 뉴욕타임즈가 13%, USA투데이가 10%, AP뉴스가 8%, 월스트리트저널이 7% 등 뉴스 앱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종이신문 1면 분위기를 그대로 아이패드에 구현했다. 유료 가입자만 내용을 볼 수 있지만 하루 이용권을 1.99달러에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별개로 WSJ라이브라는 동영상 앱도 공개했는데 편집장 앨런 머레이에 따르면 “아이패드 덕분에 30분짜리 동영상 콘텐츠 시장이 생겨났다”. 광고 판매 실적도 좋다고 한다.

USA투데이는 당초 앱 발표 이후 90일 뒤 유료화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다운로드 회수가 50만건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유료화 계획을 철회하고 광고를 받기로 했다. 컬러풀한 구성과 일목요연하게 기사를 볼 수 있는 섹션 페이지, 휙휙 넘어가는 유저 인터페이스가 특징이다. 크로스워드 퍼즐 등 엔터테인먼트 요소도 확대했다.

뉴욕타임즈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뉴스 앱이라는 평가가 많다. 올해 3월 지면 유료화와 함께 아이패드 앱도 유료화돼 무료 사용자는 톱 섹션과 동영상 기사만 볼 수 있다. 구독료는 월 15~35달러다. 지난해 4월 출시 이후 230만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으며 유료화 이후 대부분 콘텐츠가 닫혀 있는데도 광고가 완판된다고 한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뉴욕포스트는 아이패드의 사파리 앱으로 접근할 경우 기사를 차단하고 유료 앱을 구매하도록 유도해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여전히 유료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앱은 1.99달러에 한 달 무료. 그 이후에는 월 6.99달러를 내야 해 꽤나 비싼 편이다. 아직까지는 유료 구독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루퍼트 머독의 아이패드 전용 신문, 더데일리 초기화면.
 

루퍼트 머독의 아이패드 전용 신문 더데일리는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3천만달러를 투자하고 전문 인력 100명, 매주 운영비만 50만달러(환율 1179원 기준 5억8950만원)가 든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가장 잘 만든 디지털 잡지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일주일 구독료가 99센트, 연간 39.99달러. 100만명 이상 구독자를 확보해야 겨우 수익이 나는 구조다.

10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한다면 연간 매출이 4천만달러가 된다. 그러나 애플에 30%의 수수료를 주고 나면 2800만달러가 남는다. 연간 운영비가 2600만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약간 흑자가 나는 수준이다. 여기에 광고를 붙이면 흑자 운영이 어렵지 않을 거라는 게 머독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실제 구독자는 이런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정욱 라이코스 대표는 이 보고서에서 “현란한 유저 인터페이스와 아이패드의 파워를 등에 업고 있어도 독자들이 매일 찾는 질 높은 기사와 사진, 동영상을 제공하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정통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기사보다는 사진 위주의 편집, 짧은 기사, 현란한 제목과 가십성 연예 스포츠 기사가 많다”고 덧붙였다.

더데일리가 타블로이드판 스타일인 건 뉴욕포스트 출신의 편집장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 대표는 “물론 아주 얄팍한 기사만 있는 것은 아니고 큼지막한 사진을 쓴 커버 스토리와 함께 아이패드 전용 미디어에 걸맞는 이색적인 콘텐츠도 있지만 넘쳐나는 수준 높은 무료 신문앱 속에서 유료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또 다른 문제는 앱의 안정성과 속도”라면서 “더데일리를 더데일리 웨이트(wait)라고 비꼬는 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더데일리는 첫 발표 이후 미국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져 그다지 큰 화제가 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영국에서 도청 사태가 터진 뒤에는 마케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사들의 실험도 주목된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넷플릭스와 훌루가 아이패드 앱을 출시하면서 유선방송 가입자들의 이탈이 잇따르는 등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영국의 BBC가 내놓은 앱은 월 6.99유로에 1500시간의 BBC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미국의 ABC는 인기 드라마를 무료로 보여주는 대신 10∼15분마다 광고를 봐야하는 앱을 내놓기도 했다.

타임워너케이블은 케이블 가입 고객들만 쓸 수 있는 앱을 내놨는데 이 앱을 설치하면 아이패드가 그대로 실시간 TV가 된다. 한 달만에 36만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일부 채널 사업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HBO의 TV에브리훼어(everywhere) 등 N스크린 전략도 흥미로운 실험이다.

잡지 쪽에서는 4.99달러에 판매한 와이어드 앱이 첫 달 10만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난해 11월에는 2만3천건 정도로 떨어졌다. 용량이 너무 큰 데다 정기구독 기능이 없어 재구매율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포춘이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피플 등도 아이패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정기구독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디지털 잡지 운영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 잡지는 아이패드 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리눅스 기반의 웹OS 태블릿 버전도 내고 있다. 월요일에는 종이 잡지를 마감하고 화요일에는 안드로이드와 웹OS 버전, 수요일에는 아이패드 버전을 내놓는 식이다. 특정 포맷에 우선 순위를 두는 걸 막기 위해서다.

최근 아마존 킨들 파이어 출시 이후 본격적인 태블릿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임 대표는 “아이패드의 새 운영체제 iOS5가 출시되고 신문과 잡지를 좀 더 편리하게 구독할 수 있는 뉴스스탠드 기능이 추가되면 아이패드를 통한 뉴스 소비가 더욱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면서 “아이패드라는 파괴적 기술이 얼마나 빨리 미디어 산업계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