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가 개봉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처음 영화기획 당시 이런 ‘불편’한 내용을 누가 찾겠냐며 제작사 측의 걱정이 컸다고 전해지는데요, 영화제작사 측은 드디어 한시름 놓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실제 사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며 연일 입소문을 내고 있으니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몇 백만의 관객은 문제없을 듯합니다. 월요일 심야시간임에도, 기자가 찾은 영화관은 <도가니>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놀라운 흥행 기세뿐 아니라 이제는 ‘세상을 바꾸는 힘’도 보여주려 합니다.

사람들은 12명의 장애아동들이 갇힌 공간에서 교직원들로부터 수년 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실을 마주하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과 성폭행 가해자가 버젓이 복직해 일하고 있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분노를 정점에 이르게 했습니다.

   
▲ 극중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서유진(정유미 분)이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눈물을 보이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까지 나서서 ‘사학복지사업법’을 개정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학복지사업법’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 당시 야당(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법입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련 법규를 정비해서라도 (복지법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장애인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밝혔다고 하니 ‘제대로 된’ 영화 한 편의 힘을 실감케 합니다.

그런데 <도가니>가 참 기특하긴 하지만, ‘만약 <도가니>가 없었다면’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가 그간 외면해 왔을 뿐, 광주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의 ‘진실’은 변함이 없었고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벌써 수년째 진행돼 왔습니다. MBC 의 보도와 공지영 작가의 소설이 있었고 광주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의 눈물겨운 투쟁도 계속 있어 왔습니다.

   
▲ 영화 <도가니>로 인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광주인화학교'. 하지만 이들을 향한 피해자들의 외침은 늘 있어왔다. 사진은 지난해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기자회견 현장.
 
영화 <도가니>의 말미에는 청각장애인들이 법원 앞에서 ‘무진자애학원’을 규탄하는 농성 장면이 있습니다. 경찰은 이를 불법시위라며 시위 중인 장애인들에게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섭니다. ‘진실’을 알고 있던 관객들은 경찰의 진압을 보고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했을 것입니다. 그 ‘먹먹함’의 이면에는 광주인화학교 사건 실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미리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스며있을 것입니다.

<도가니>에서 볼 수 있듯, 청각장애·지적장애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진실’을 전하는 방법은 함께 모여서 ‘억울함’을 외치는 방법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숱한 외침을 이제껏 외면해왔던 것은 아닐런지요. 지금 그렇게 분노하는 ‘진실’이 당시엔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외로이 스러져 갔습니다.
 

   
▲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무진자애학원'의 성폭력 범죄를 고발한 미술교사 강인호(공유 분)가 법원이 가해자들에게 내린 '솜방망이' 처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진압당하고 있다.
 
그래서 <도가니>를 통해 마주하게 된 우리사회의 ‘불편한 진실’은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의 분노가 얼마나 늦었는지도 함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힘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아닌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들이라 대수롭지 않게 보이겠지만, ‘광주인화학교’와 같이 억울하고 안타까운 진실이 그 안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서 발생하는 일에 언제까지고 뒤늦은 ‘분노’로 대처해서는 안 됩니다. 매번 <도가니>같은 영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는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바로잡는 것 뿐 아니라 제2의 <도가니>가 제작되지 않도록 ‘현재’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항상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가니>가 우리에게 던진 진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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