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재직 당시 겪은 5·18 항쟁 등  ‘전라의 기억’ 담아

전남매일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인 뒤 전남일보 편집국장,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낸 소설가 문순태가 낸 에세이집이다.

소설가 한승원과 함께 ‘전라도 작가’를 자처해온 저자는 “기억창고에 가득 찬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이번 책을 엮었다. 시와 소설에 빠져 살면서 지역의 문예인들과 맺은 인연도 창고에서 나왔다. 특히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등산만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작가가 무등산을 소재로 쓴 시 가운데 이성부의 <무등산>을 가장 좋아한다는 대목이나, 한달치 월급을 주고 얻은 의제 허백련의 작품을 이성부가 느닷없이 들이닥쳐 들고 가 버렸다는 일화는 광주고 동기인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언론인 출신인 만큼 지역 언론인들과의 인연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전라도닷컴 편집장 황풍년이다. 1988년 전남일보 창간 멤버로 만난 황풍년을 저자는 “담박하고 웅숭깊은 젊은이면서도 성격이 꼬장꼬장해서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다”로 기억한다. 23년이 지난 지금, 그 청년은 “줏대가 세어 죽어도 비뚤어진 세상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못”해 “오늘날의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결코 외면하지 않는” 지역 언론인으로 자리잡았다.

전남 담양이 고향이지만, 6·25 직후 광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저자의 인생에서 80년 5월의 광주를 빼놓을 수 없다. 전남매일 편집국 부국장으로 있으면서 “계엄사(계엄사령부)의 신문발행 강요를 거부하고 잠시 서울에 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직된 저자는 후배 사진기자인 신복진을 통해 광주를 추억했다.

당시 전남일보 사진부장이었던 신복진은 5월18일, 금남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동구청 옥상에서 완전무장한 공수부대가 화염방사기를 메고 금남로를 행진하는 모습, 학생들의 옷을 벗기고 군화발로 짓밟으며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후려치는 모습, 피를 흘려가며 끌려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찍었다. 당시는 취재진들이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의 모습이나 시신 발굴 등 시민군들의 활동상황을 촬영하기 위해 접근할라치면 ‘경찰 프락치’로 오인을 받기 십상이었다.

저자는 “시민들이나 시민군은 그동안 군부독재의 시녀노릇을 해온 언론을 철저히 불신했다”며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이토록 치욕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는 언론인의 고충을 ‘신복진’이라는 사진기자를 통해 대신 전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찍은 신복진의 ‘5·18’ 사진은 신문지와 비닐에 싸인 채 항아리에서 8년을 묵다 전남일보 창간호 지면을 통해 세상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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