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의 선거 여론조사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동아일보가 지난 9월 22일자 사설로 밝힌 내용이다. 사설 제목은 <언론사 여론조사, 대상자 검증 부실 문제 있다>로 뽑혔다. 동아일보는 왜 뜬금없이 ‘선거 여론조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을까.  

“어제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을 한 박원순 변호사에 대해 서울 시민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동아일보는 최근 선거 여론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선거 여론조사’의 문제점은 수치의 경향성을 참고자료로 인식하는 게 아닌 수치 자체를 신봉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이 특정한 수치를 발표하고 지금 판세가 이렇다고 전하면 국민들은 수치에 담긴 판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이는 선거 여론조사가 바닥 민심을 제대로 담지 않을 경우 ‘여론조사 정치’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일보 9월 27일자 1면.
 
언론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여론의 흐름을 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조작’은 하수 중 하수이다. 금방 들통 날 그런 행동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조사방법과 조사대상의 조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쪽에 가까운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물론 합법적인 방법이다.

동아일보가 9월 27일자 1면에 <박원순-나경원 오차범위 접전>이라는 머리기사를 실었다. 얼굴 사진과 함께 수치를 그래픽으로 전했다. 나경원 44.0% 대 박원순 45.6%, 나경원 49.9% 대 박영선 38.9%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전한 내용대로라면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박원순 변호사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쟁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박영선 의원에게는 10% 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는 일단 그렇다.

의문이 들었다. 동아일보는 어떤 조사방법을 선택했을까, 누구를 대상으로 했을까. 동아일보는 지난 25~26일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직접 전화조사 방식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700명을 대상으로 했기에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 ±3.7%포인트다.

동아일보는 전화 직접조사 방식, 즉 여론조사원이 집전화를 걸어서 상대방의 정치적 견해를 묻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했을까. 동아일보 지면에는 그것이 나와 있지 않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 표본이 누구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수치가 나오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해 한나라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불리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직접 전화조사 방식을 사용해서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법을 사용할 때 나타난다. 이는 연합뉴스가 12개 여론조사기관 모임인 ‘한국정치조사협회’와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도 드러난 바 있다.

휴대전화 이용자를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를 했을 때는 박원순 49.6%, 나경원 30.8%의 지지율을 보였다. 휴대전화 이용자를 대상으로 자동응답 조사를 했을 때는 박원순 51.5%, 나경원 33.1%를 보였다. 휴대전화 조사 때는 박원순 후보가 20% 포인트에 가까운 우위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집 전화 여론조사를 했을 때는 직접 전화면접 조사의 경우 박원순 42.6%, 나경원 35.2%로 나타났다. 자동응답전화를 이용했을 때는 박원순 47.3%, 나경원 36.6%로 차이가 조금 더 났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최근 집전화 직접조사를 할 때도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만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RDD(임의전화번호걸기) 방식을 채택하는 추세다.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로 보다 폭넓은 여론을 살펴보려면 RDD 방식이 유용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집전화 직접조사로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할 경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도 고려된 선택이다. 연합뉴스와 한국정치조사협회도 참고를 위해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만 따로 집계한 결과를 내놓기는 했다.

결과는 박원순 41.1%, 나경원 40.5%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여론조사 주체가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크게는 20% 안팎의 격차를 보이는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적게는 오차범위 내 접전의 결과를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왼쪽), 박원순 변호사.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집전화 직접조사를 통한 KT 전화번호부 등재 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응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동아일보는 어떤 방법을 선택했을까. 왜 기사에는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 설명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KRC 쪽으로 연락을 해봤다. KRC 관계자는 “RDD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면서 “KRC 조사가 항상 이번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조사주체의 의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가 <박원순-나경원 오차범위 접전>이라고 제목을 뽑았던 그 여론조사는 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집전화 직접조사를 통한 KT 전화번호부 등재 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였던 것이다. 요즘 대세가 되고 있는 RDD 방법을 왜 선택하지 않았을까.

언론의 ‘선거 여론조사’ 보도에 속지 않으려면 조사방법은 무엇인지, 조사대상은 누구인지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 조사주체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특정 정당 쪽에 유리한 결과를 합법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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