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의 인기가 심상찮다. 22일 개봉한 ‘도가니’는 누적관객 9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1위로 올라섰다. 지난 8월 초반 개봉해 6백만 관객을 돌파한 ‘최종병기 활’의 흥행세가 주춤해지고 곽경택 감독의 ‘통증’ 등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 예상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 눈에 띄는 경쟁작이 없는 점도 ‘도가니’ 흥행의 원인이지만 언론은 영화가 가진 ‘진실의 힘’에 주목했다.

2000~2004년까지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졌던 교장과 교직원에 의한 장애인 학생 성폭행 사건이 권력에 의해 묻히다시피 한 사건은 2005년 11월 < PD수첩 >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공지영 작가는 이 사건을 취재해 ‘도가니’라는 제목의 소설로 2009년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했다. 그 후 배우 공유는 군 생활 당시 중대장의 추천으로 이 소설을 보고 ‘이게 실화라니’라는 분노와 함께 27장짜리 영화제안서를 출판사에 내는 등 영화화에 공을 들였고 주연까지 맡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언론은 ‘원작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믿어지지 않는 잔혹한 진실’에 대한 ‘관객의 분노’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며 영화의 흥행에 주목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이 포털에 연재 될 때도 ‘믿어지지 않는 사건’에 대한 독자의 분노가 일었으나 ‘영상이 가진 힘’이 그 분노를 더 크게 발화시켰다는 것이 언론의 분석이다.

또 스타 배우 공유가 많은 언론을 통해 ‘참혹한 사건이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도 주효했다. 많은 관객은 영화의 묵직한 메시지에 놀라고 이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흥행 성공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

하지만 일부 언론은 ‘보기 불편하다’ ‘아역 배우의 성폭력 장면에 문제가 있다’라는 논리로 영화를 바라보기도 했다. 한국 영화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잔인한 장면이 실제 아역 배우들의 연기로 표현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아역배우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영화 ‘도가니’는 개봉 전 부터 ‘아동 성폭력’ 장면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실제로 소설을 영화로 옮긴 황동혁 감독의 인터뷰 대부분이 ‘아동 성폭력’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느냐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였다. 감독은 수차례 “부모 입회하에 장면을 촬영했으며 민감하게 보이는 장면 등은 편집의 결과일 뿐 실제 촬영장의 모습은 달랐다”고 해명한 바 있다.

동아일보는 26일자 기사를 통해 “(도가니)가 어린이 성폭력 장면 등을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해 그 주제의식과 달리 아역배우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또 영화사가 “부모 입회하에 장면을 촬영했다”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이것으론 “아동보호에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이라며  “(전문가들은) 영화적으로 필요해서 이 같은 묘사를 넣었다고 해도 아역배우의 심리 상태 등에 대해 사후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을 이어갔다.

   
동아일보 9월26일자 13면.
 
또 미국의 시스템을 예로 들며 “아역배우는 6시간 이상 촬영을 하지 않고, 스태프에게 아이를 대하는 법을 교육하는 것 등이 매뉴얼로 정해진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관계자의 말을 빌어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아동에 대한 학대나 성폭력을 자세히 묘사한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우리 영화가 유독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가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인터넷 언론 OSEN도 26일자 기사를 통해 ‘도가니’의 ‘불필요한 자극적 재현’이 문제라며  “어린 배우들을 상대로 한 묘사는 불필요할 정도로 수위가 높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의 이러한 지적은 ‘도가니’의 아동 성폭력 장면이 마주하기 힘들만큼 불편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보기에도 힘들만큼 잔혹한 장면을 실제로 연기한 성장기의 아역배우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화면으로 보기에도 불편한 진실, 실제로는...

언론의 지적은 타당하다. ‘도가니’에는 마주하기 어려운 장면이 나오며 그를 연기한 아역배우들은 ‘장하다’는 말로만 보상받기 어려운 힘든 과정을 거쳤음이 분명하다. 아역배우의 후유증은 사후에도 섬세하게 관리되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언론이 지적하는 이 ‘불편’이 마음 한 켠으로 ‘불편’해 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영화가 담은 현실보다 실제의 현실이 더욱 참혹했기 때문이다. 공지영 작가는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한 후 취재에 나섰는데 ‘너무 끔찍해서’ 취재 사실의 절반만을 소설에 옮겼다”라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영화 '도가니' 포스터.
 
영화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은 언론을 통해 “영화는 소설에 묘사된 수위의 절반 정도를 담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너무 약하게 한다면 사실을 왜곡하는 것 같아 걱정도 됐지만 영화로 다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아 모두 다루지 못하고 단순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이 마주보기 불편하다고 지적한 장면의 몇 배로 실제 일어난 일이 끔찍했다는 증언인 셈이다. 

한겨레는 25일자 기사 <당신도 이 현실에 눈감고 싶은가>를 통해 "‘도가니’가 끔찍하다고 말하기 전에 '도가니'에 담긴 ‘대체된’ 현실이 실제 벌어진 일의 절반조차 담아내기 어렵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축소된 현실이 스크린에 비춰지는 게 ‘너무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편하다, 는 말은 때로 이렇게 무책임하고 잔인하다”고 ‘불편’이 진실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광주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은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2008년 7월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중 일부는 학교 교직원으로 복직했고, 진상을 외부에 폭로한 직원은 해임됐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치유와 보상 등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학교는 여전히 수십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으며 재단법인 ‘우석’은 최근 교명을 바꾸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다.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는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며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성폭력 대책위는 25일 다음 아고라에 청원방을 만들어 광주 인화학교 사태를 재수사할 것을 요청했다. 5만 명을 목표로 시작된 서명에 이틀 만에 2만여 명이 서명했다. 하지만 한번 난 판결을 되돌릴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재수사는 불가능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언론이 불편하다고 지적한 장면의 몇 배로 참혹한 일이 일어났지만 2005년 당시 언론은 사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PD수첩 >처럼 용기 있는 언론도 있었지만 다수의 언론의 과거 기사에서 ‘광주인화학교’ 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법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가해자들을 세상에 다시 내보낸 것도 언론의 이러한 ‘직무유기’ 가 하나의 원인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묻힐 뻔 했던 사건은 공지영 작가의 용기와 배우 공유의 ‘혜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당시의 언론은 그 사건이 ‘불편’해서 외면했었던 건 아닐까? 언론은 영화에 빚진 자신의 직무 유기를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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