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사실이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한미FTA 협상 미 외교문서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미FTA 협상 당시 김현종 전 한미FTA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대사에게 청와대 회의 내용까지 낱낱이 보고하고, 핵심사안에 대해 미국 측에 유익한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힘썼다고 한다.

한미FTA 한국 측 수석대표였던 김종훈 현 통상교섭본부장은 2006년 협상 당시 개성공단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훈령마저 무시했으며, 심지어 2007년에는 대통령도 모르게 한미FTA 대가로 미국 측에 쌀 개방에 대한 추가협상을 약속했다 한다.

온 국민이 거부했던 미국산 쇠고기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방문 대가로 수입재개 되었다 한다. 이 충격적인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 대사관이 지난 4년간 본국으로 보낸 1만2000여 외교문서 중 공개된 것은 보안등급이 낮은 1800여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1만여 건 이상의 기밀에는 더욱 엄청난 굴종외교의 실체가 존재할 것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19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그래도 정말 쌀만은 지켰을 줄 알았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쌀개방 추가협상 밀약이 폭로된 후, 충격에 휩싸인 농민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농민들은 차라리 등에 칼을 꽂으라 한다. 한미FTA 체결 직후, 농업을 다 내주었다 울부짖는 농민들에게 이 나라 통상관료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쌀만은 지켰다”고 강조했던가. 결국 그 ‘쌀’마저도 지킨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을 뿐인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김종훈 본부장은 한미FTA 미 의회 통과를 전제로 쌀 뿐 아니라 쇠고기와 자동차에 대한 추가이익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고, 이는 2008년 4월 쇠고기, 2010년 12월 자동차 재협상으로 현실화 되었다. 이는 곧 쌀에 대해서도 같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깊은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추후 쌀 관세화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미국은 한미FTA와 김종훈 본부장의 추가협상 약속을 내세워 대폭적인 관세 인하를 요구해올 것이다. 결국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은 미국산 쌀이 대거 밀려들어오게 될 것이며, 쇠고기, 자동차에 이어 쌀까지 미국 쪽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 자명하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전문에서는 한미FTA뿐 아니라, 대북문제, 이라크 파병 문제 등 민감한 핵심 현안들에 대해 미국대사관이 어떻게 개입해 왔는지, 우리 고위공직자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미국측에 흘려가며 굴욕적으로 대응해 왔는지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또한 외부와 차단된 비밀 회담의 내용까지 파악하여 본국으로 송신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미 대사관은 공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첩보기관으로서의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 외교부는 “위키리크스가 다량의 문서를 유출·공개한 것은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면서 “불법으로 공개된 문서에는 일체 대응하지 않는 것이 기본 입장”임을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입장 표명조차 없다. 이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이며, 국민들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라는 것을 정부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미FTA 추진이 급한 것이 아니라 청문회와 국정조사가 먼저이다. 국가공무원법과 형법에서 금지한 중대 범죄인 국가공무원들의 기밀유출, 외교 공관인 미국대사관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첩보활동 수준의 정보 수집, 대국민 사기극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의 뒷거래 등 드러난 의혹들에 대해 명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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