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국세청이 방송인 강호동씨가 탈세의혹이 있다고 판단하고 세무조사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후 다수의 언론은 강호동씨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국민의 지지로 얻은 신뢰와 사랑을 배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국세청이 범법 여부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의 판단 여부가 있기 전까지 강호동씨를 범죄자로 몰기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수의 언론에 의해 묵살되었다. 강호동씨는 국세청과 검찰의 판단이 있기 전에 범법자로 ‘여론재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강호동씨가 지난 9일 ‘잠정은퇴’라는 초강수를 던지면서 언론의 논조는 180도 달라졌다. 언론은 강호동씨가 방송활동을 중단하면 한국의 예능이 ‘마비’된다며 그를 만류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대중이 연예인들에게만 유독 공인의 자세를 강조한다며 강호동씨를 비난한 일부 네티즌을 질타하는 듯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CBS노컷뉴스
 
또 14일 국세청이 강호동씨를 검찰에 고발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히자 언론은 더욱 머쓱해졌다. 국세청이 강호동씨의 추징세액이 연간 5억 원을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찰 고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자 언론은 순식간에 <강호동 검찰 고발 대상 아닌데 은퇴 어쩌나> 식의 기사를 내보냈다.

주병진 위로하던 강호동 2달 후 여론재판 대상으로

무작정 ‘쓰고보자’ 식의 기사를 날리다가 일이 터진 후엔 나몰라라 하는 언론의 수법은 매우 전형적이다. 성폭행 혐의로 십수년간 방송활동을 중단했던 방송인 주병진씨는 지난 7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성폭행범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온 후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있었다”라며 “무죄 판결이 나오면 나에 대한 대중의 판단도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성폭행 의혹)에 대해 쓰던 언론은 무죄 판결에 대해 외면했다” 는 말로 ‘책임지지 않는 언론’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범죄 가능성만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된 후 여론몰이에 의해 생업에서 퇴출당하는 등의 고통을 겪은 후 무죄판결이 나와도 언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날 방송에서 주병진씨의 사연에 함께 마음아파하던 강호동씨가 2개월 후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강호동과 김금래, 누가 더 나쁜가

14일 이명박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개각이라 보여지는 8.30 개각에 대한 청문회가 있었다. 이날 후보자들은 비리백화점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의 삶의 궤적으로 혀를 차게 했다. 그 중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후보자의 비리 항목은 명의신탁,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등  4-5가지에 이른다.

그는 정범구 민주당 의원이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취득세와 등록세 등 약 3000여만원을 탈루한 의혹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취·등록세는 지자체에 내는 것으로, (구입한 아파트에 대해) 지자체가 정한 시가표준액은 각각 7600만원선과 1억6000만원선이었다”며 “실거래가로 신고했다면 주변 지역 다른 매매거래와의 형평성 탓에 지자체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9월15일자 경향신문 1면.
 
다수의 언론은 김금래 후보자의 비리가 ‘백화점’ 수준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으나 강호동씨에 대한 비판 기사의 양과는 현저히 차이나며 정작 그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 들어 공직자 임명 기준이 느슨해지고 심지어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은 기본이라 하더라도 언론과 네티즌의 분노의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강호동씨는 9일 ‘잠정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티비를 통해 시청자분들께 웃음과 행복을 드려야하는 내가 지금같은 상황에 어찌 뻔뻔하게 티비에 나와 얼굴을 내밀고 웃고 떠들 수 있겠는가” 라는 말로 은퇴의 변을 밝혔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14일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강호동은 세금 탈루에 대한 자숙의 의미로 은퇴까지 선언했는데, 공직자로서 책임있는 처신을 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범법자가 국민의 세금을 움직이는 공직자가 되는 것은 ‘범법자’ 연예인이 TV에 나오는것 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대중의 분노가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15일 트위터를 통해 “키보드가 온통 정의감으로 쓰나미를 이루는 이들이여. 정작 연예인이 저지른 잘못보다 몇 배나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활개를 치면서 살아가는 고위층들이 많습니다. 그분들께도 그대들의 정의와 열정과 애국심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실 수는 없나요.”라는 말로 대중의 분노의 방향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연예인 몇명 보내면 세상은 좋아지나?

대중의 분노는 TV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예인에게로 향하지만 ‘과연 연예인 단죄가 정의구현인가’에 대한 판단은 쉽게 내릴 수 없다. 언론과 네티즌은 손쉽게 연예인에 관련한 군 입대 비리 문제나 음주운전 문제 등의 사건이 터질 때 여론재판을 통해 그를 생업에 종사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과연 몇명의 연예인을 파렴치한으로 만든 후 세상은 더 나아졌을까. 권력형 비리는 줄어들었을까. 언론이 손쉽게 단죄할 수 있는 연예인에 대해 비판의 날을 벼를 때 그 뒤에선 권력의 비리가 춤을 춘다는 생각은 과연 허황된 것일까.

언론은 더 이상 ‘연예인 단죄’가 정의구현인 듯한 여론 재판을 유도하는 보도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대중도 새로운 판단을 할 때가 됐다. ‘세상이 정말 연예인 몇 명 정도 ‘보내버린다고’ 정의롭게 바뀌는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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