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갱신 9월 14일 오후 8시] 현재 KBS 보도본부장과 메인뉴스 앵커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 이명박 대통령 후보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관련 정보를 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임원은 수시로 국내 소식을 전했고 이 앵커는 방송 전에 취재 정보를 전한 것으로 보여 KBS 기자 윤리 강령 위반 논란이 제기될 전망이다.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최근 공개한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cable)을 14일 분석한 결과,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현재 고대영 KBS 보도본부장(당시 해설위원), 민경욱 <뉴스9> 앵커(당시 뉴스편집부 기자)가 주한미국대사관측과 만나 이명박 대통령 후보 등과 관련한 내용을 밝혔고, 대사관측은 이를 정리해 미 정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에 따르면, 고 본부장은 2007년 9월19일자 전문<고위급 KBS 기자는 피할 수 없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보고 있다>(SENIOR KBS CORRESPONDENTS SEE GNP'S VICTORY)에서 대선 성패를 전망했고, 민 앵커는 2007년 12월17일자 전문<이명박 실용주의, 수줍음>(LEE MYUNG-BAK PRAGMATIC, SHY)에서 당시 12월20일 방송 예정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취재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미국측은 주한미국대사관 전문 작성자 조셉 윤(Joseph Y. Yun)과 Poloff로만 소개된 미국측 관계자와 버시바우 당시 미국 대사 이름이 나온다.

"고대영 기자, 종종 대사관과 대면하는 연락선(frequent Embassy contact)"

   
▲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http://www.wikileaks.ch
 
고대영 본부장 관련 전문에는 '이명박이 승리하는 세 가지 이유', '이명박: 박근혜 없이는 힘이 없는가', '신정아 스캔들, 진보의 종말'이라는 소주제와 함께 2007년 대선 정국에 대한 고 본부장이 미국측에 밝힌 정세 분석이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고대영 기자는 종종 대사관과 대면하는 연락선(frequent Embassy contact)이다. 다양한 주제에 관한 이 사람의 통찰력은 정확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나올 정도로, 고 본부장은 미국측과 수시로 접촉해 국내 정보를 전한 것으로 돼 있다.

고대영 본부장은 전문에서 "이명박의 자질이나 수행 능력(퍼포먼스) 때문이 아니라 세 가지 거대한 한국사회의 흐름 때문"에 "이명박은 12월에 승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 세 가지는 덜 민족주의적이고, 북한에 대한 증가하는 의혹, 경제 성장에 대한 많아진 요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07년 여름에 터진)신정아 스캔들은 통합민주신당에 상당한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며 "최근 이 스캔들을 대중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와 관계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최 측근에 의해 배신당한 바보 대통령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대선이 채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진보 정당이 피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박근혜의 전폭적 지지 없이 보수 정당 대통령으로 나라 이끌 힘 없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007년 12월19일 밤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겸손한 자세,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 국민의 뜻에 따라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특히, 고 본부장은 "이명박은 박근혜와 박근혜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전폭적인 지지 없이는 보수 정당의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없다 (powerless)"고 밝혀, 이 대통령 후보가 2007년 당시 보수층으로부터 실질적인 지지 기반이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7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고 본부장 관련 전문이 정세 분석에 치중했다면, 민경욱 앵커 관련 전문은 13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관련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있었다. '포항 뿌리', '현대', '실용주의', '수줍음 타는 남자', '인적 관리', '스캔들', '핵심 비전의 부족', '종교' 소제목 아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출생부터 현재까지 방송 예정인 다큐의 구체적인 내용이 미리 미국측에 전달됐다.

전문에 따르면, 민 앵커는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을 담을 다큐를 제작하는 세 팀이 있는데, 우승 후보자의 다큐만이 방송될 것"이라고 미국측 Poloff에게 방송 계획을 밝혔다. 당시 민 기자는 '이명박 다큐'를 제작하는 팀에 소속돼 포항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이명박 후보 지인을 만나는 등 약 1달간 관련 취재를 해왔다.

민경욱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다큐팀 있고 우승자 다큐만 방송", 미국에 미리 방송 계획 전해

민 앵커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본인의 호감을 미국측에 상세히 전달하기도 했다. 민 앵커는 "이명박은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큰 탐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또 "이명박은 경제적 전문성이 제한됐지만 뛰어난 결단력 덕분에 한국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한 김대중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 미국측에 전하기도 했다. 

민 앵커는 당시 이 대통령 후보를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shy guy)이라고 설명하며 취재 과정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민 앵커는 "자신이 지난 2006년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을 만났을 때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다른 정치인과 달리 이명박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기자간담회 전후로 기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씨의 측근들이 이명박에 대해 수줍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그러한 행동들이 설명됐다"고 말했다.

특히, 민 앵커는 "그가 만난 이명박을 잘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매우 깨끗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 앵커는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탈세-위장전입 논란에 대해 "이명박은 이런 과거의 과오에 대해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미국측은 전문 마지막에 "민경욱은 그가 이 다큐에 대한 조사를 하는 한달 동안 이명박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완전히 설득 당했다"며 "그러므로 이 KBS 다큐는 이명박이 아주 좋아할 만한 것"이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KBS 윤리강령 "취재 정보는 프로그램에만 사용…공영방송 KBS 윤리, 더욱 엄격"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모습. ⓒ KBS
 
이같은 전문은 위키리크스에 나타난 국내 언론의 현실을 투영하는 것으로, 언론 윤리를 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유력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상세한 신상 정보를 외국에 전달하는 것이 용인될 사안인지, 방송 전에 취재 및 방송 내용을 외부인에게 상세히 알려주는 것이 적절한지 엄중히 따질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9월1일 제정된 KBS 윤리강령 1조 2항에 따르면, "KBS인은 본인 또는 취재원·출연자의 개인적인 목적에 영합하는 취재·제작 활동을 하지 않으며, 취재·제작 중에 취득한 정보는 프로그램을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나와 있다. 또 윤리강령은 "KBS인은 공영방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취재·보도·제작의 전 과정에서 여타 언론인보다 더욱 엄격한 직업 윤리와 도덕적 청렴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BS측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대화를 한 것이어서 두 분 모두 윤리 강령을 어긴 것이 아니다”라며 “위키리크스에 나온 것은 신문 기사에 나온 ‘카더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본인들 입장에서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KBS "'카더라 수준' 벗어나지 못한 위키리크스, 당사자들은 황당한 상황"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14일 통화에서 고대영 본부장의 경우 “(미국측 관계자를)자주 만난 게 아니라 한 번 만났다”며 “잠시 만나서 대선 관련 일반적 분위기를 얘기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배 실장은 “고 본부장은 신정아, 박근혜 관련 얘기는 한적 없고 대선 관련해서도 자세하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배 실장은 민 앵커의 경우 “처가쪽 인척 관계가 있는 미국인을 만난 사적인 자리에서 한국 대선이 어떻게 되는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얘기를 한 것”이라며 “취재 정보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적인 정보를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영 본부장과 민경욱 앵커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관련 질문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배 실장은 “아시다시피 한 분은 보도 총책임자이고 한 분은 9시뉴스 앵커”라며 “공식적으로 홍보실장을 창구로 하고 책임 있는 답변을 하는 것으로 하고 두 분은 (인터뷰를)사양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전문 가운데 주한미국대사관이 보낸 전문은 1980 건이다. 대사관측은 2006년 431건, 2007년 380건, 2008년에 367건, 2009년에 690건, 2010년 102건을 미국에 보냈다. 이번에 공개된 전문에는 "청와대 연락선(Blue House contacts)”, “국회 연락선(our National Assembly contacts", “정기 연락선(regular contacts)” 등 미국측의 한국 내 '비밀연락선'이 각종 기관․기구 곳곳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대영 본부장은 지난 1984년 KBS 사회부 기자로 입사해, 모스크바 특파원-보도국장을 거쳐 올해 초부터 보도본부장을 맡고 있다. 올해 4월 KBS 기자협회는 고 본부장의 공정방송 약속 미이행 등을 이유로 협회원 제명 찬반투표에 돌입했고, 이후 고 본부장은 자진 탈퇴한 바 있다.

민경욱 앵커는 지난 1991년 KBS 입사해 지난 2004년부터 3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 <열린 토론>과 1TV <생방송 심야토론>을 진행했고, 올해 1월1일부터 메인 뉴스 <뉴스9>를 진행하고 있다. 민 앵커는 지난 2009년 7월27일 제20회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인터넷 방송에서 이 대통령과 단독으로 대담을 진행한 바 있다.

다음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서다.

http://wikileaks.org/cable/2007/09/07SEOUL2876.html (KBS 고대영 보도본부장)

http://wikileaks.org/cable/2007/12/07SEOUL3550.html (KBS 민경욱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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