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의 소신일까. 아니면 실수일까.

추석연휴 첫날인 9월 10일자 서울신문 사설을 접한 기자들과 독자들은 얼마나 민망했을까.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언론의 방어막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그래도 언론이지 않은가. 언론이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존재이유 아닌가.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 ‘쉴드친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5월 25일자 37면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이라는 연재 칼럼에서 ‘쉴드치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설명했다.

“'쉴드치다'는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방어하고 보호하려는 맹목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여기에서 영어로 방패(Shield)를 뜻하는 쉴드란 게임 등에 등장하는 '방어막'이나 '방어마법'을 의미한다.”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하고 감싸는 팬들의 행위를 지적할 때 ‘쉴드친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 대상이 언론이라면 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서울신문은 9월 10일자 지면에 <이 대통령 ‘올 것이 왔다’는 지적 여권 직시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서울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신드롬’에 대해 “올 것이 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욕구가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백번 맞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신문 9월 10일자 사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올 것이 왔다’는 지적을 여권이 직시하라는데 대통령이 바로 여권의 최고 권력 아닌가. 그런데 서울신문의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이 ‘남의 얘기’처럼 하는 그 주장을 “백번 맞는 말”이라고 쉴드치는 모습이다.

서울신문은 “특히 집권세력의 한 축인 한나라당은 그 책임이 실로 막중하다. 이 점에서는 또 다른 축인 청와대와 정부 역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대통령의 지적은 당·정·청 삼각축으로 이뤄진 여권 전체가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럴듯한 주장 같지만 핵심을 빗겨가고 있다. 한나라당 책임이 막중하다면서 청와대와 정부 역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서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인 이명박 대통령 책임론은 쏙 빠져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장에 국민들이 열광하는 ‘안철수 현상’,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로 남의 얘기처럼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서울신문은 “안철수 신드롬은 여권에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모두가 공생·공멸의 각오로 임하면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이 이번 사설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은 대목이다.

서울신문은 “백번 맞는 말”이라고 평가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안철수 발언’에 대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어떤 쓴소리를 전했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조선일보는 <안철수 바람은 MB정치가 불러온 것>이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과 안 교수가 응징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지난해부터 선거란 선거에서 모조리 패배하고 급기야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는 안철수 바람까지 불러온 가장 큰 배경이 이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란 걸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9월 10일자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올 것이 왔다’고 남의 얘기처럼 할 때가 아니라 자신부터 자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남탓 인식’에 대해 이렇게 쓴소리를 전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대통령의 "올 것이 왔다"는 말을 들으며 5·16 쿠데타 소식을 듣고 당시의 윤보선 대통령이 했다는 같은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민주당 신·구파가 나랏일보다 정쟁에만 골몰하다 군인들의 쿠데타를 불러왔는데도 그런 사태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인 구파의 영수(領袖)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해서 논란이 됐던 사건이다. 대통령은 요즘 한나라당이 겪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는 입장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CBS노컷뉴스
 
조선일보만의 시각일까. 그렇다면 중앙일보 9월 10일자 <대통령은 안철수 바람과 무관한가>라는 사설을 살펴보자.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안철수 현상 발언에 대해 “안철수 바람은 시대적 흐름이지만, 대통령과 무관한 정치권의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면서 “안철수 바람은 대통령이 자신과 무관한 듯 말해선 안 되는 민심의 경고”라고 비판했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보수언론들도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에 쓴소리를 전하고 있겠는가. 이번 사안은 이명박 대통령을 쉴드 쳐줄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정말로 궁금하다. 서울신문의 소신인가. 아니면 실수인가.

   
중앙일보 9월 10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오랜 역사를 지닌 신문이다. 서울신문에서 일하는 기자 한명 한명을 보면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독자들이 접하는 서울신문 지면은 어떤가. 정말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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