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지난 8월 24일자 신문에 연재중인 ‘자본주의 4.0 시리즈’ 중 하나로 우리 사회 최대 화두인 ‘양극화 논쟁’을 비판적 관점으로 다룬 기획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조선은 이 기획에서 “양극화 현상에 대한 진단에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성장 대 분배, 감세 대 증세, 규제 완화 대 철폐, 선택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 등 그 해법을 둘러싼 대립은 우리 사회의 갈등 요인으로 부상했다”며 이 같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빈곤층 증가, 대·중소기업 격차 확대,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 양산 등 성장과 사회통합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며 성공한 사람들의 더 큰 성공을 견인하고, 낙오한 사람들을 재기시켜 성공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자본주의 4.0’ 시스템”이라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사회적 현상으로서 양극화와 ‘서로 대립하는 담론’이라는 의미로서 양극화를 혼재해 쓰고 있어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굳이 공감 못할 논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개표조차 못하고 무산된 지난 8월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단적으로 그렇다. “정책적 의미는 거의 없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투표였고 애초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기획된 투표”(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라는 비판까지 있었음에도, 찬반 양측은 전면이냐 단계냐, 포퓰리즘이냐 아니냐, 강남이냐 강북이냐 등 이쪽저쪽 갈기갈기 찢겨 그야말로 물러섬 없는 혈전을 벌였다.

   
조선일보 8월 24일자 '자본주의 4.0' 시리즈 기획.
 
물론 그 전쟁의 한복판엔, ‘양극화 패러다임’을 걱정하는 조선 또한 있었다. 조선은 전면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를 옹호하는 진영을 향해 ‘공짜 복지’, ‘무한정 증세’라는 마타도어까지 서슴지 않았다. 분명 모순이다. 자신들이 ‘우리 사회의 갈등 요인’이면서 그 갈등의 해법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꼴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이 반대편이라 할 수 있는 진보·개혁진영 쪽은 어떨까? 마타도어까지는 아니어도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부추긴 적이 없었을까?

김윤철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이와 관련 “최근 복지 논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갈라치기’ ‘딱지 붙이기’가 난무한다는 점인데 이는 진보·개혁진영 역시 마찬가지”라며 “‘강남 부자’ ‘땅불리스 돈불리제’ 운운하면서 마치 다른 인종 보듯이 비꼬는 게 대표적이다. 그들이 왜 그런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와 소통을 하지 않고 ‘적대감’만 표출한다면, 보편주의 복지 노선의 진정성은 국민들로부터 크게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의 역사가 그렇다. 스웨덴이 현재의 복지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는 지난한 시간과 함께 수없이 많은 ‘계급 타협’, ‘좌우파 합의’ 과정이 있었다. 보편주의 복지 정책을 뿌리내린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집권’을 위해 노동자 외에 중소 상공인, 소자본가, 중산층 등 다른 계층과의 연대도 적극적으로 넓혀나갔다. “보편주의 복지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말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윤홍식 교수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저소득층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돌아간다면, 누가 세금을 많이 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보편주의 복지는 부자가 가진 것을 뺏어서 국민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낸 것을 돌려받는다는 개념이다. 그 핵심은 우리가 세금으로 낸 것, 즉 보편적 증세를 통해 보편적으로 돌려받는 구조에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무한증세’ 등을 퍼뜨리며 부자들의 공포감을 부추기는 보수진영이나 보편주의 복지를 옹호한다면서 ‘부자 때리기’에 주력하는 진보·개혁진영 일각은, 모두 진정 복지국가를 원하는지 의심스러운 대상들일 수밖에 없다. 보편주의 복지를 하면 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협박하는 선전·선동이나, 정치체제, 산업체제, 노동시장 등 근본적 시스템 변화 없이 몇몇 무상복지 정책만 실시하면 금방 복지국가가 올 것처럼 현혹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윤홍식 교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몇개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면서 “사회적으로 계급이나 계층 간의 타협이 필요하고, 다양한 집단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정치구조도 확보되어야 한다. 한국사회를 규정 짓는 대부분의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향신문 8월 24일자 인터넷판 뉴스.
 
소득과 자산 수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하는 선별주의 복지와 보편주의 복지는 그 간극이 크며 치열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겨우 복지시스템의 걸음마를 뗐고, ‘논쟁다운 복지논쟁’을 해본 일이 없는 우리나라 현실로서는 매우 ‘사치’스러운 일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복지가 시대적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각론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보수와 진보·개혁 사이에 점점 더 많은 정책적 접점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에서조차 무상보육 정책이 제시되고, “선별적 복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단적인 예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8월 30일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의 80% 수준 상향 ▲저소득 영세사업장 근로자 4대보험 지원 ▲경영성과급·휴가 차별 시정 등 그간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개혁 쪽에서 제시해온 비정규직 대책을 많은 부분 수용한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가 ‘자본주의 4.0 시리즈’를 통해 언급하는 각각의 현안에 대한 해법을 보면, 청년 고용의무할당제, 근로장려세제 확대, 비정규직 4대보험 가입 확대, 납품단가연동제, 중소기업 납품단가 협상권 보장 등 진보·개혁 쪽의 대안과 공통점이 너무나 많다.

다만 조선은 이 시리즈에서 명확한 재원조달 방안과 소요 비용을 적시하지 않아 많은 의문을 자아냈는데, 비정규직 4대보험 가입 확대 등 일부 비용만 따져 봐도 조선이 과연 무상급식을 공짜복지·포퓰리즘이라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혼란스러워지는 측면이 있다. 최소 수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은 쉽게 쉽게 던지면서, 약 4000억원이 들어가는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에는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태도는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진행된 소위 ‘복지논쟁’은 서로 적지 않은 공통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비이성적·적대적 분위기로 흐른 경향이 있었다. 그 정점이었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부작용은 여야나 보수·진보나 모두 공감하는 바, 이제는 복지 확대를 위해선 어떤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 필요한지, 재원 마련의 실질적 방안은 무엇인지, 세대간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 진짜 논쟁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중앙일보 8월 31일자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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