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장시간 소환 조사를 받았다. 곽 교육감이 지난달 28일 후보단일화에 합의해준 박명기 교수(구속)에게 선의로 2억 원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주요 언론은 곽 교육감이 검찰에 소환되는 날까지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사이에 있었던 갖가지 의혹과 피의사실,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앞다퉈 보도했다. 급기야 교육시민단체 등은 “피의사실 공표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지만, 언론의 경쟁적인 피의사실 및 미확인 보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진실규명이 가장 중요하지만, 수사 중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검찰 또는 당사자 가운데 한쪽(박명기 교수측)의 주장이 부풀려 보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반해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에 관한 보도에서 일부 피의사실 공표는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검찰, 언론 및 교육감 관계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다. ⓒ연합뉴스
 
▷곽 교육감 변호인 “피의사실 공표로 여론재판”=곽 교육감이 지난 5일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칠준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그동안 수많은 질의를 받았지만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원칙으로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검찰은 수차례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여론재판을 주도했다”고 비판했다.

▷피의사실 공표·미확인 보도 실태=이번 사건에 있어 핵심 쟁점은 2억 원의 대가성 여부다. 지난 2~4월 곽 교육감이 2억 원을 줬다고 밝혔지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돈을 주기로 사전에 약속했는지, 이 사실을 곽 교육감이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자 기사에서 후보단일화 발표 직전 곽 교육감측과 박 교수측이 두 차례 회동(지난해 5월 17~18일)을 통해 돈을 주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곽 교육감 선거운동을 했던 인사들은 당시(5월 18일 밤 11시30분) 박 교수가 돈 얘기를 꺼내 공식적인 협상이 결렬됐고, 다음날 점심 무렵 박 교수가 조건 없는 단일화 합의 및 후보직 사퇴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곽 교육감측 재정담당 이 아무개 씨와 박 교수측의 선대본부장 양 아무개 씨가 개인적인 자리를 통해 대화 또는 합의를 했던 것일 뿐이며, 곽 교육감은 이 사실을 선거후 4개월이 지난 뒤에 알았다는 것이 곽 교육감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조선은 양측의 주장이 이렇게 엇갈림에도 일방의 주장을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또한 31일자부터는 2억 원의 출처가 도마에 올랐다. 부인 계좌에서 빠져나간 3000만 원 이외에 ‘1억7000만 원이 선거잔금일 가능성이 있다’(중앙)거나 ‘출처불분명 일부자금이 포착됐다’(서울신문)는 것이다.

‘제3의 인물이나 단체가 전달했거나 판공비·사업비 리베이트로 마련한 것 아닌지 검찰이 조사 중’(조선)이라고 쓰기도 했다. 1일엔 중앙일보도 ‘후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전형적인 추측성 보도이며, 대부분 “검찰은~보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이는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거나 추측 또는 예단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검찰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14조)에도 반하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6일자 기사에서 “곽 교육감의 부인 정 아무개 씨는 ‘2억 중 1억은 집안 돈이며, 1억 원은 곽 교육감이 직접 아는 이에게 빌려온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이상한 녹취록 보도=곽 교육감이 검찰에 출두하는 지난 5일자 조선일보가 보도한 녹취록 의 상당수는 과연 녹취록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곽 교육감측 인사(김성오 씨, 김상근 목사)가 일부 등장하지만 조선일보가 소개한 녹취록의 절반가량은 박명기 교수가 단일화 협상 당시 주장했던 내용을 일방적으로 말한 대목과 박 교수 측근인 양 씨가 곽 교육감측과 합의했다는 주장으로 돼 있다. 합의 당사자(곽 교육감 재정담당 이 아무개 씨)나 곽 교육감이 등장하지 않는 반쪽짜리 녹취록인 것이다. 이들 녹취록은 결국 박 교수 측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녹취록’이라는 ‘명패’는 곽 교육감측과 박 교수측과의 ‘대화’를 담고 있는 듯 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조선이 보도한 녹취록에 박 교수 측근이라고 소개된 ‘박정진’이라는 인물의 실재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8월초 서울시내 모처, 9월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 커피숍과 맨하탄호텔에서 한 각각의 대화 녹취록에 박정진의 대화상대로 나오는 김성오 씨는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 녹취록 보도에 나오는 박정진이라는 인물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나와 대화한 것으로 돼있는 사람은 박정진이 아니라 다른 인물인 김 아무개 씨인데 왜 가명이라는 표시도 안하고 다른 이름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이어 “박정진이 조선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인지, 가명을 쓴 것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또한 “‘맨하탄호텔’이라는 곳은 렉싱턴호텔의 옛날 이름이며, 그 때 만난 곳도   ‘와바’라는 전혀 다른 맥주집이었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피의사실 공표는 말아야” vs “불가피”=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나 언론의 미확인 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KBS의 한 중견기자는 5일 밤 “사실관계와 진실규명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검찰 쪽에서 흘리는 얘기가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보도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매체 뿐 아니라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검찰에서 나오는 기사는 엇비슷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제대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익명의 장막에 숨어 흘리는 정보나 일방의 주장이 여과 없이 보도될 경우 혼란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현직 교육감이 단일화 후보에게 2억 원이라는 거액을 ‘선의’로 줬다는 것 자체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되는 사건이며, 이를 추적 보도하는 언론 입장에서 일부 피의사실 보도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MBC의 한 기자는 “(이런 대형 사건에 대한) 일부 피의사실 공표는 법조기자의 숙명이고, 불가피한 면이 있다”며 “특히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단지 검찰에서만 이뤄지는 것만이 아니라 일부 참고인이 슬쩍 흘리고 이를 ‘~가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재생산이 이뤄진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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