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 서 있는 나의 초라한 모습과 부엌에서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며 나오시는…말을 끝맺지 못하시고 다른 사람이 볼세라 재빨리 행주치마로 눈물을 닦으시는, 몇 달 전보다 퍽이나 많이 늙어 보이는 어머니….”

고향 대구에서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전태일, 그는 훗날 이소선 여사와 상봉하던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울한 가정사’를 지닌 전태일과 그의 어머니. 그들이 이날 어느 음식점 주방 앞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한국 노동운동사에 전태일과 이소선이라는 이름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소선은 전태일의 어머니다. 아니 전태일을 이소선의 아들로 소개하는 게 합당할 수도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씨앗을 틔운,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1970년 11월 13일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 이상으로 한국 노동운동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바로 이소선 여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3일 향년 81세로 별세한 그날, 수많은 발걸음이 그의 곁을 찾았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그의 곁을 지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는 물론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주인공 배우 홍경인씨도 조문에 참여했다.

   
고 이소선 여사.
이치열 기자 truth710@

“엄마, 내가 죽어서 캄캄한 세상에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야 해요.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전태일 열사가 남긴 유언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을,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 전태일 열사가 온몸을 불살라 세상을 떠난 후 올해까지 41년간 이소선은 노동자들의 지치고 힘겨운 어깨를 감싸주는, 눈물과 한이 맺힌 노동현장에 달려가 그들을 위로해주는 노동자들의 어머니였다.

이소선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연대를 위한 3차 ‘희망버스’에 타려고 준비하던 중 의식불명에 빠졌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노동연대’의 뜻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 뜻을 기리고자 6일 오전 11시 서울대 장례식장 앞에서 ‘고 이소선 어머님의 희망버스’가 부산 한진 중공업으로 떠났다.

이소선은 언론을 향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던 당시의 일이다. 변상욱 CBS 대기자는 <모든 노동자의 이름 전태일, 그 어머니 이소선>이라는 ‘기자수첩’을 통해 “태일이 떠나고 40년 됐는데 이런 정권 이런 대통령 처음 본다. 언론들도 마찬가지야. 받아 적는 게 언론이냐, 검찰이 날뛰고 언론은 덩달아 춤만 추고, 이게 언론이냐”라고 호통을 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검찰 언론플레이의 부속품이 돼서 받아쓰기를 자처하는 언론, 그 모습은 달라졌을까.

이소선이 한국 노동운동에 끼친, 민중운동에 끼친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의 삶을 조명하는 일은 한국 언론이 관심을 둬야 할 사안이었다. 경향신문은 9월 5일자 <우리가 이소선 여사에게 진 빚>이라는 사설에서 “아들 전태일이 우리 시대의 ‘열사’이자 ‘동지’였다면 이 여사는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인간해방운동의 ‘어머니’였다”면서 “칠흑같이 캄캄하던 노동자의 하늘에 아들이 뚫어놓은 조그만 구멍을 피멍이 들도록 부딪치며 넓혀놓았다. 밑바닥 인생도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온몸으로 실천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도 이날 <가난한 시대의 어머니 이소선>이라는 사설에서 “고인이 꿈꾸었던,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이제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 됐다. 그 싸움은 오늘도 경기 평택의 쌍용자동차에서,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에서,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 그리고 제주의 강정마을에서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를 제외하면 이소선 여사의 별세는 언론의 주된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노동자에게 언론은 힘겨울 때 손을 잡아줄 친구가 돼야 하지만, ‘노동’에 대한 언론의 색안경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노동현장의 실태를 알리는 기사 한줄 한줄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언론과 기자들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소선 여사도 ‘부끄러운 언론’의 모습을 개탄했다. 이소선의 삶을 담은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의 저자인 소설가 오도엽은 1970년 10월 7일 평화시장 참상을 전한 경향신문 기사를 언급하면서 이소선 여사의 얘기를 전했다.

“태일이가 가장 기뻐했을 때가 그 때 같다. 태일이가 (평화시장 문제로) 정말 좌절하고 있을 때 경향신문의 그 기사를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요즘 기자들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