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이 탤런트 추자현씨에게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추 씨가 중국에서 찍은 화보때문이다. 중국의 잡지에서 ‘섹시 컨셉’으로 찍은 몇몇의 사진 중 한복을 벗은 듯한 컨셉의 사진을 두고 다수의 언론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이 화보를 두고 탤런트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 화보 파문과 비교하기도 했다. ‘국가위상의 추락’ 이며 ‘민족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것이다.

일부 네티즌의 몇몇 댓글을 모아 ‘논란’으로 만드는 언론의 습관이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국가 위상 추락’이나 ‘민족정서’라는 부분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추 씨의 화보는 언론의 보도대로 '세미누드'의 수준이 아니다. 한국의 패션 잡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이런 화보가 과연 국가의 위상 추락이나 민족 정서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일까?

   
중국 남성잡지 난런좡에 실린 탤런트 추자현의 화보.
 
언론이 줄곧 지적하고 있는 ‘민족정서’의 밑바닥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주말 인터넷은 한국 걸그룹 클레오 출신의 한현정 씨와 중국인 남성의 ‘사기 결혼’ 공방으로 시끄러웠다. 중국 남성 무씨는 현지 언론을 통해 한 씨가 신분을 속이고 자신과 결혼 후 자신의 50억 대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는 주장을 펼쳤고 한 씨는 곧바로 한국의 전 소속사를 통해 결혼을 주장하는 중국인 남성의 주장은 허위이며 자신이 오히려 스토킹과 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심지어 한 씨가 중국 공안에 제재당해 한국 입국을 못하고 있으며 현지 대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국의 네티즌은 뜨겁게 반응했다. "한국 여성이 중국 남성에게 농락 당했다" 라는 밑도 끝도 없는 감정적인 주장에 네티즌은 동요했다.

하지만 며칠 뒤 상황은 급반전됐다. 한 씨는 “중국인 남성과의 결혼이 사실이며 부부싸움 와중에 언론에 기사가 나가 당황했다. 한 중 네티즌의 감정싸움에 깜짝 놀랐다” 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양측의 공방을 원색적으로 중계하던 언론은 “속았다”라는 검연쩍은 반응을 보였다. 언론보도에 활활 불길을 태우던 네티즌도 겸연쩍은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추 씨의 화보를 두고 언론이 벌인 ‘논란’과 한 씨의 결혼 사기극에 대한 언론 보도 사이엔 ‘민족 정서’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존재한다. 언론은 주요하게 ‘한국의 여성이 중국에서 피해를 입었다’,‘한국의 여성이 중국에서 나라 망신을 시켰다’ 라는 등의 모호한 논리로 감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 속에 추 씨의 사진 촬영을 담당했던 한국인 사진작가가 온라인 중국 전문 정보지인 ‘온바오닷컴’을 통해 입을 열었다. 김동욱 씨스튜디오 대표는 “중국 최고의 매체에 사진을 싣고 싶어 제안을 했고 중국 잡지 측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인 배우 추자현 씨를 추천했다 ”며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배우 추자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한 끝에 한복 사진을 촬영했다”며 “한복은 죽어있는 과거완료형의 것이 아니라 현대 패션으로 다시 살려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여론이 좋지 않아 밝히지는 못하지만 추 씨가 입은 한복도 한국의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우선 추 씨의 사진이 한국 사진작가에 의해 촬영된 것은 언론이 간과한 사실이다. 언론은 추 씨가 ‘노출 수위가 높은’ 중국 잡지 ‘난런좡’에서 ‘세미 한복 누드’를 선보였다는 베껴쓰기 수준의 보도만을 내보냈을 뿐 화보 촬영의 실제적인 부분은 외면한 셈이다.

사진작가 김 씨는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난런좡은 중국판 플레이보이가 아닌 영국의 남성잡지 FHM의 중국판으로 수준 높은 화보로 명성이 높다. 한국작가와 한국 배우로서도 최초의 작업”이라며 “그동안 실려왔던 중국 여배우들의 화보와 비교해서도 추 씨의 노출이 결코 심한 수준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 씨는 한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 “안타깝다. 화보를 객관적으로 봐야한다”며 “한복의 격을 떨어뜨릴 정도의 저속한 노출인가. 추측성 기사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보도로 인한 편견이 없었으면 한다. 한국인으로서 추 씨와 연대감을 가지고 작업했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화보가 FHM 영국판에 나왔다면 평가가 어땠을까?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김 씨의 지적대로 추 씨의 이 화보가 중국의 잡지가 아닌 영국 잡지에 실렸더라도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오히려 언론은 “추 씨가 고혹적인 자태로 세계에 한국의 미를 드높였다”라는 기사를 내지 않았을까?

언론이 기사로 ‘민족 정서’를 자극하면 네티즌은 그에 열렬히 화답한다. 발화성이 강한 ‘내셔널리즘’은 이런 연예 가십성 기사에서도 위력을 드러낸다. 한국의 네티즌은 오랜만에 같은 의견으로 뭉쳤다. ‘추자현 나라망신’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은 한복화보를 찍은 추 씨가 왜 한국의 위상을 추락시켰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무작정 쓰고보기 식의 기사가 문제인 이유는 담고 있는 내용의 적절성에 비해 파급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포털은 이미 추 씨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도배가 되었다. 중국에서 열심히 활동 중인 추 씨는 영문도 모른채 나라 망신을 시킨 연예인이 되었다. 이를 언론은 어떻게 이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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