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둘러싼 의혹은 진보언론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불과 2년 전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진보성향 언론이 보인 논조는 논란의 대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비겁했다. ‘진실’을 찾기에 주저했고, 여론에 편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가져온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는 ‘여론재판’이다. 범죄 유무를 법관이 판단하기도 전에 여론몰이을 통해 ‘유죄’로 몰아갔다.

언론의 융단폭격에 가까운 ‘날선 보도’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심신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

“검찰과 언론이 한 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대통령을 아예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기사는 보수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진보언론도 당시 ‘여론재판’의 일원이었다.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노빠언론’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지는 않았는지 남들이 돌을 던진다고 그 속에 숨어 함께 돌을 던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비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려 언론 본연의 냉정한 시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이 ‘여론재판’ 형태로 흐른다면 더욱 위험하다. 진보언론은 ‘여론재판’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검찰발 받아쓰기 경쟁에 함께 재미를 붙였다.

   
경향신문 8월31일자 1면.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여론은 언론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진보성향 언론들은 여론재판에 참여했던 과거는 잊은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참으로 민망한, 아니 참담한 모습 아닌가.

이번에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문제가 터져 나왔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후보 단일화를 위한 대가성 돈을 줬는지, 결국 후보직을 매수했는지가 논란의 본질이다.

곽노현 서울교육감 문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와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명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직을 매수했다면 그 책임은 엄중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을 줬다고 말하면서 논란은 더욱 번졌다.

언론, 특히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융단폭격이 이뤄졌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물론 단일화에 관여했던 진보진영 전체에 불똥이 튀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하고 서울시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한 바로 그날 ‘곽노현 의혹’ 사건이 터졌다.

냄새가 모락모락 나는 사건이지만, 중요한 것은 팩트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정말 후보직을 매수했는지, 후보단일화 대가로 금품을 건넸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일단 당사자는 부인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8월 28일 기자회견에서 “후보 단일화는 민주 진보진영의 중재와 박 교수의 결단에 의한 것으로 대가와 관련한 어떠한 얘기도 없었다”고 밝혔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후보직 매수라는 범죄를 저질렀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검증 결과에 따라 처벌이 필요하다면 처벌을 받고, 억울함이 있다면 그것을 해소해줘야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언론은 다시 ‘못된 버릇’을 재연하고 있다. 검찰발 받아쓰기, 바로 ‘여론재판’이다.

주목할 대목은 진보언론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 단일화는 민주 진보진영의 중재와 박 교수의 결단에 의한 것으로 대가와 관련한 어떠한 얘기도 없었다”고 밝힌 바로 다음날(8월 29일자)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곽노현 "박 교수에 2억 줬다" 사퇴 검토>라는 내용이었다. 경향신문은 '사퇴검토'라는 기사제목을 뽑았지만, 출처는 모호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본인의 주장도 아니었고, 측근 주장을 멘트로 처리한 것도 아니었다. '곽 교육감은 이르면 29일 중 사퇴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사퇴하지 않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선의로 2억원을 줬다는 주장은 일반인의 정서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직을 매수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닐까.

경향신문은 8월 31일자 1면에도 <곽노현-박명기 측 선거 후 e메일로 비용 보전 협의>라는 기사에서 "검찰이 입수한 e메일에는 박 교수의 선거비용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다시 '전해졌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가 나왔다. 출처도 검찰 주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8월 31일자 사설에서 “선거 전 후보매수 행위가 없었다 해도 단일화의 대가 말고는 돈의 성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돈을 전달한 행태 또한 떳떳하지 않은 돈 거래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어떤 이유로도 '선의의 돈'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판관을 자처하고 있지만,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탄탄한지는 의문이다. 경향신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겨레도 8월 29일자 <2억원이 어떻게 '선의에 입각한 돈'일 수 있는가>라는 사설에서 "곽 교육감도 사법당국의 판단에 따라야겠지만 사법적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지는 신중하게 고민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사퇴를 종용하는 내용이다.

   
한겨레 8월 30일자 3면.
 
한겨레는 8월 30일자 3면에 <진보진영도 "부적절" 비판…곽 교육감 나홀로 결백 주장>이라고 보도했다. 진보진영의 반대 속에 곽노현 교육감 홀로 버티는 것처럼 보도했다. 한겨레는 <곽노현 교육감, 권위와 도덕성 이미 잃었다>는 30일자 사설에서 "박 교수의 처지가 아무리 어려웠다고 해도 후보 단일화를 한 특수관계자에게 거금을 준 것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용인되지 않는다"면서 "곽 교육감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교협,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대표적인 교육시민 단체들은 8월 30일 기자회견에서 "대가성에 대한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에 진퇴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사퇴 문제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겨레 보도는 앞서간 주장인 셈이다. .

경향신문과 한겨레 입장에서는 이번 사안을 신중하게 접근할 경우 진보성향 교육감을 감싸려 한다는 비판을 우려한 나머지 더욱 발 빠르게 입장을 정했는지도 모른다. 2억원을 준 행위에 대한 비판 역시 경청할 대목이 있다.

하지만 사퇴 종용이 섣부른 판단이라는 시각도 있다. 논란의 한 축인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의 주장에 대한 검증 작업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박명기 교수의 주장이 곧 사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박명기 교수의 주장에 대한 검증과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사퇴문제에 판단을 내렸다면 보다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한겨레와 경향신문 모두 그렇게 하지 않았다.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서둘러서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지만, 진보진영에서도 그런 '신속한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당장 사퇴를 해야 할 사안인지, 판단의 근거가 아직은 모호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언론이 조기사퇴에 힘을 싣고자 한다면 '국민정서법'에 기대, 여론재판을 주도할 게 아니라 그런 판단을 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여론에 설명하고 공감을 얻는 게 순서이다. 박명기 교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검찰 주장에도 의문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과정 없이 사퇴를 종용한다면 이는 여론재판의 폐해를 답습하는 일일 수도 있다. 검찰이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흘리고 보수언론이 받아쓰고 여론이 동요하면 진보언론이 ‘확인사살’ 하는 장면, 2009년 봄에도 경험했고 이번에도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 아닌가. 

진보언론이 여론재판 공식을 완성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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