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인권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돼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인권 운동가 박래군씨의 대담으로 진행되는 이 인터뷰 시리즈는 모두 20회로 예정돼 있으며 향후 단행본으로 묶어서 출간될 계획입니다.

이 시리즈의 기사들은 예외적으로 CCL(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적용해 자유로운 복제와 인용을 허용합니다.

① 두리반 투쟁 승리한 소설가 유채림씨
②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기획부장 이창근씨
③ 양심적 병역 거부자 현민씨
④ 게이 영화를 만드는 게이 감독 이혁상씨 
⑤ 롯데손해보험빌딩 청소노동자 박근덕씨

쌍용자동차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동희오토에서 유성기업으로, 한진중공업으로 수많은 공장에서 여전히 쌍용차의 비극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77일의 처절한 점거 투쟁 끝에 정리해고 대상 974명 가운데 468명이 무급휴직으로 남고 506명이 회사를 떠나는 참담한 합의를 끌어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15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숨졌다.

쌍용차 노동조합 기획실장 이창근씨는 이들의 죽음을 명백한 타살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개별 자본과 싸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서 “이 척박한 싸움에서 구호나 선언으로 이길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희망의 버스’ 기획팀장을 맡아 한진중공업의 김진숙씨를 지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씨는 “‘희망의 버스’는 에너지다, 이 에너지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폭발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래군 : “요즘 어떻게 지내나”
이창근 : “‘희망의 버스’ 때문에 경찰 조사 받으러 부산까지 다녀왔다. 서울로 이송이 안 된다고 하더라. 희망의 버스에 올인하고 있는 건 쌍용차 투쟁을 중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쌍용차 투쟁과 한진중공업 투쟁이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고자와 가족들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2년 전 공장을 떠난 2600여명의 삶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다들 얼마나 힘들지 짐작만 할 뿐이다. 함께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34명인데 다른 동지들이 조합비를 내줘서 99만원씩 받으면서 버티고 있다. 미래가 안 보이는 정신적 고통은 물론이고 투쟁과 복직, 생계 문제 등으로 3중, 4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박래군 : “쌍용차 투쟁이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아직 무급 휴직자들 복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77일의 투쟁을 평가 또는 반성해 볼 때도 되지 않았나.”
이창근 : “한상균 지부장을 비롯해 집행부 상당수가 아직 구속돼 있어서 평가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그걸 전제로 이야기한다면 쌍용차 투쟁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모든 역량이 결집된 투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쌍용차 투쟁을 평가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에 쌍용차 2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건 이제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싸웠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를 때리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나서서 우리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강하게 때리면 나도 맞게 된다.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의 버스 연대를 보면서 너무 소프트한 거 아니냐는 비판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쌍용차나 한진중공업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래군 : “사회적인 해법은 뭐라고 보나.”
이창근 : “지난 4월까지는 성질이 많이 났다. 지금도 많이 나 있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 의원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 분들에게 화가 난 건 아닌데, 토론회 나와서 증언을 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언제까지 증언만 할 거냐. 보기는 한 거냐. 그러다가 좀 있으면 다른 데서 또 토론회를 한다고 한다. 오라고 하니까 가긴 가야지. 그런데 토론회에서 어떤 의원이 그러더라.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그때 마이크를 들어서 던지고 싶었다. 정말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묻는 건가. 백날 토론회만 하면 뭐하나. 정말 고민을 한다면 돈을 넣어야 한다. 사람을 넣어야 한다. 사람들이 죽어나가지 않을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기업에서 단순히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사람을 마구 자른다. 고민은 없으면서 죽고 나면 조문하러 온다. 보좌관들 시켜서 전화만 한다. 공공성에 대한 고민, 국가의 역할, 사회 안전망에 대한 고민이 너무 부족하다. 대학도 못 나오고 공장에서 볼트만 조였던 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공부 많이 한 분들이 왜 이런 고민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기획실장. ⓒ이치열 기자.
 

박래군 : “실직 상태가 2년 이상 계속되면서 정신적 고통도 크지 않나.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가 쌍용차 해고자들과 가족들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창근 : “아내가 파업 끝나고 찾아왔는데 얼굴이 엉망이 돼 있더라.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아내가 나를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게 했다. 없는 살림에 670만원이나 들었는데 나중에 아내에게 당신이 나를 살렸다고 했다. 그때 심리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미쳤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정혜신 박사에게도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고 들었다. 이 사람들 심리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그때 우리는 맨날 싸우기만 했다. 감정이 격해 있어서 기자들이 왔는데 기자들을 앞에 두고서도 서로 싸웠다. 정혜신 박사 말고 다른 팀이 들어와서 심리치료를 했는데 그때는 잘 안 됐다. 그러다가 임○○ 동지가 죽고 나서 아이들만 남겨졌을 때 정혜신 박사가 다시 찾아왔다. 아이들을 한번 봐야겠다고.”

박래군 : “임○○씨는 지난 4월 심근 경색으로 돌연사했다. 임씨의 아내는 지난해 아파트 베란다에 뛰어내려서 죽었다. 임씨가 죽고 한 달 뒤 같은 아파트에서 자살한 조합원이 또 있다고 들었다.”
이창근 : “이거 자살이 전염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 사람은 같은 공장에 다녔지만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한 사람은 무급 휴직 상태였고 다른 한 사람은 희망 퇴직한 상태였다. 임○○ 동지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영구차를 돌려서 그 아파트에 들렀다 갔는데 그때 강○○ 동지가 그걸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켜봤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견딜 수가 없더라. 내가 아파트를 들렀다 가자고 했는데 그런 소리만 안 했어도 안 죽지 않았을까. 강○○ 동지는 쌍용차 작업복을 입고 죽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조끼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노조 간부라는 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운동인가.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너무 슬프다.”

박래군 : “아들은 어떻게 지내나. 아빠가 전경 버스에 실려 간 걸 보고 충격을 받아 아직도 버스를 잘 못 탄다고 들었다.”
이창근 : “아직도 분노를 보일 때가 있다. 놀이치료를 받고 있는데 경찰을 혼내 주고 태워 죽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자기 엄마에게는 엄마, 경찰 부츠에 압정을 넣으면 어떨까, 그럼 아파서 도망가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긴 한데 고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다른 동지들과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이후 2년이 지났지만 468명의 무급휴직자들은 아직 공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 ⓒ이치열 기자 .
 

박래군 : “요즘은 우리 사회가 마치 1848년 프랑스 혁명을 앞둔 시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사회는 근대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서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갈망이 없다. 성취의 경험도 부족하다. 요즘은 정말 산업혁명의 무제한 착취가 보장됐던 그런 시기를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따지고 들어가면 불평등의 원인은 결국 소유 구조의 문제 아닌가. 빈익빈 부익부가 강화되고 있다. 복지 포퓰리즘 논쟁이 한창이지만 초기 자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이 발전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단계인데 결국 노동자의 정치적 힘이 중요하지 않겠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노조 조직률 10%로 뭘 하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창근 : “진보정당 한다는 사람들도 밉다. 과실도 안 익었는데 이걸 따 먹으려는 놈들이 있다. 종자로 쓸 과일까지 다 따 버리면 어떻게 하나. 세치 혀로 먹고 사는 놈들. 이건 뭐 다들 박사야. 자기들이 다 하겠다고 설친다.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 국가의 기능은 마비됐지. 재벌은 자기들 마음대로 설치고 있지. 그러면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하고. 그건 인정하고 굴복하는 거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방기한 거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복지 포퓰리즘? 국민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장난치는 거다. 비겁하다. 어려운 말을 쓴다는 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거다. 자기들끼리만 뭘 하려고.”

박래군 : “당신들도 힘들 텐데, 한진중공업 김진숙씨에게 그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뭔가. 지난달에는 평택 쌍용차 공장에서 부산 한진중공업까지 도보 행진도 했다고 들었다.”
이창근 : “지금으로서는 한진중공업 투쟁에 동참하는 게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개별 자본과 싸우는 걸로는 근본적인 해법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던 동지들과 갈등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다. 공장 곳곳에 욕설이 적혀 있는 걸 치우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그 사람들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미 어용 노조가 들어섰는데 이런 식으로는 복직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고 본다.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복직 프로젝트도 새로운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해고자를 받아주는 대신 뭘 줄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집회 때 나와서 발언하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점유율이 이미 80%가 넘지 않나. 정부 차원에서 쌍용차에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관공서 납품 차량이나 경찰·군용 차량 등 지원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박래군 : “김진숙씨의 투쟁은 어떻게 생각하나. 승산이 있다고 보나.”
이창근 : “쌍용차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마치 제도권으로 옮겨가는 순간 수습 국면이 되고 타결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청문회도 하고 다 해결됐으니 크레인에서 내려오라는 압박이 시작된다. 노조도 합의를 하고 물러났는데 뭐가 문제냐. 이건 김진숙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다. 쌍용차도 그랬다. 합의해줄 테니 공장 점거 풀고 나오라고 그랬다. 그런데 파업 전까지 5명이 죽고 합의 끝나고 나서 2년 동안 10명이 더 죽었다. 앞으로 얼마가 더 죽을지 모른다. 이대로 가면 김진숙도 죽는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기획실장. ⓒ이치열 기자.
 

박래군 : “‘희망의 버스’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움직임이다. 전통적인 노동운동과는 전혀 다르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고 진보진영에서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는데.”
이창근 : “언론에서는 몇 명이 버스 타고 내려갔는지만 신경을 쓴다. 2차보다 3차가 숫자가 늘었나 줄었나를 본다. 나는 ‘희망의 버스’는 에너지라고 본다. 확 끓었다가 식기도 하고 다시 불이 붙을 수도 있고.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겨우 1만5천명 모였어? 에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건 통제 받지 않은 불특정 다수 대중의 움직임이다. 쪽수에 연연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김진숙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8년 전 김주익 열사가 왜 그 85호 크레인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것 아닌가.”

박래군 : “조직적으로 싸울 수 없으니 개인이 나서는 거 아니겠나.”
이창근 : “그런 생각을 했다. 운동을 하자는 거냐. 평론을 하자는 거냐. 나는 회의도 걸으면서 뛰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퍼질러 앉아서 담배 피우면서 불평만 하면 세상이 바뀌나. 구호는 세상을 바꾸자고 하면서 생각은 너무 나이브하다. 희망의 버스가 이명박을 향하고 있다? 착각이다. 진보신당을 돕는다? 무지몽매한 주장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희망의 버스가 치고 나가는 거다. 각자의 절박함이 있는 거다. 언젠가 이런 절박함이 폭발할 거라고 본다. 희망의 버스는 이미 김진숙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키질을 계속하면 쭉정이는 날아가지 않나. 희망의 버스가 그런 거라고 본다. 쭉정이가 날아가고 나면 콩과 돌만 남는다. 그때는 손으로 골라낼 수 있겠지. 자연스럽게 문제와 해법이 드러날 거라고 본다. 지금은 기다릴 때다. 벌써 서둘러 뭘 하려고 하면 안 된다. 김규항씨가 말하는 것처럼 이명박과 싸우기 전에 우리 안의 이명박과 싸워야 할 텐데. 희망의 버스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희망의 버스를 돕고 있다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박래군 : “개별 자본과 싸우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바꾸는 투쟁이 필요하다, 희망의 버스가 그런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나.”
이창근 : “쌍용차 투쟁에 대한 반성도 많지만 나는 좀 더 과격하게 싸웠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 희망의 버스는 다르다. 과격한 투쟁의 반성으로 희망의 버스에 기대를 거는 건 아니다. 투쟁의 외연을 확장하자는 거다. 개별 자본과 싸움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척박한 싸움에서 선언이나 구호로 승리할 수는 없다. 자본과의 악연을 어떻게 풀 건가. 세상을 바꾸는 움직임과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 지지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희망의 버스는 광범위하게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과정이다. 에너지가 충분히 결집되면 언젠가 폭발할 거라고 본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이치열 기자.
 

 

박래군은...
오랫 동안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로 활동해 왔던 박래군씨는 최근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용산 참사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병원과 명동성당에서 10개월 가까이 갇혀 지내다 유가족들의 보상 대책이 협의된 뒤 자진해서 경찰에 체포됐다. 대추리 투쟁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한진중공업 희망의 버스 등 투쟁의 현장에 늘 그가 있었다. 군부독재 해체를 외치며 분신 자살한 박래전 열사의 형이기도 하다.

인권센터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10만명은 되지 않을까. 10만명이 1만원씩만 내면 10억원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박래군씨는 인권센터를 만드는 일에 지금까지 운동 인생을 모두 걸겠다고 선언했다. 인권센터는 인권교육과 상담을 받을 수 있고, 토론회와 문화행사가 열리는 인권운동의 허브가 될 전망이다. 인권센터는 세계 인권의 날인 오는 12월 10일 출범을 목표로 모금을 하고 있다. 9월 1일부터 100일의 기적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인권센터 후원 페이지 바로 가기. (http://hrfund.or.kr/)

 

 

 

 

 

 

 

인권센터의 주춧돌을 놓아주세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