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세력에게 미디어랩(방송광고 판매대행사)법이 사활적 중요성을 지닌다. 미디어랩법은 한국적 방송환경에서 방송의 공공성, 총체적 언론자유, 풀뿌리 민주주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하다. 전국의 신문과 방송사 71곳의 언론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고, 9개 지역민방사, 12개 지역 신문사 등이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직접영업을 규제할 미디어렙법 제정 촉구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역민방 9개사는 25일 밤 동시에 방영한 ‘위기의 지역방송, 해법은 무엇인가?’ 주제의 70분짜리 긴급 좌담회를 통해 ‘방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는 올 해 말 개국 예정인 종합편성채널이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서기 전에 미디어렙 관련법이 하루 빨리 제정돼야 하고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또한 미디어렙을 통해 위탁 판매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방송이 현 정부 들어 정부의 언론정책을 문제 삼으며 지상파에서 프로그램을 공동 제작해 내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개 지역 신문사도 지난 23~25일 사흘 연속 미디어렙 법안 및 언론노조 파업 소식을 다룬 기획기사를 공동으로 보도했다.

언론노조는 “조중동 방송에 광고 직거래라는 특혜를 주면 지역방송, 종교방송, 중소 ·지역신문은 존폐 위기에 빠지고 이는 언론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를 것이며 종편이 출범하면 무한 광고 경쟁에 불을 질러 미디어 생태계가 붕괴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8월 국회에서 미디어렙법을 처리해야 한다”면서 종편의 광고영업을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이라는 틀로 묶을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8년 11월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가 독점적으로 방송광고를 판매하는 방식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린 뒤 1년 안에 법을 정비하도록 했지만 종편의 방송광고 위탁 등에 대한 여야 간의 견해차로 아직까지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종편 광고도 미디어렙을 통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언론계의 큰 움직임과 한나라당의 서울시 주민 투표 패배 탓인가, 한나라당은 29일부터 미디어렙 법안 심의에 착수할 사전조치를 취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전재희, 이하 문방위)는 26일 허원제 한나라당 의원을 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법안소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등 야당에서 문방위 회의를 ‘보이콧’ 하면서까지 요구했던 한선교 법안소위원장 교체를 수용한 것이다. 그간 민주당 문방위원들은 미디어렙 법안 심사를 위한 법안소위 가동을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KBS 도청 의혹에 연루된 한 의원의 여당 문방위 간사직, 법안소위원장직 사퇴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왔었다.

미디어렙법은 거대 재벌, 족벌 방송의 방송시장 독과점을 방지하면서 다양한 전문 방송과 지역 방송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장치로 이는 방송 공공성 보장의 장치이면서 나아가 전체 언론 시장의 질서 유지, 풀뿌리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환경 감시 기능의 활성화에 그 목적이 있다. 미디어랩법이 만들어지지 않고 조중동 종편이 직접 광고 시장에 뛰어들어 활개를 치게 만들 경우 한정된 광고 시장 탓으로 군소 신문, 방송은 존폐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 언론은 거대 언론의 발호를 막고, 지방자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언론, 인권 신장에 노력하는 언론, 전문성을 지닌 언론 등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적 언론 시장 특성은 인구,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 속에서 소수 언론이 중앙과 지방 모두를 독과점하는 부적절한 상황이다. 여기에다가 조중동 종편이 광고 직접 영업 등을 통해 시장을 유린할 경우 족벌신문, 재벌 등이 한 통속이 된 공룡언론의 전횡으로 치달을 것이 확실하다.

신규 종편이 광고 시장에서 독자적인 영업활동을 하면서 설치게 되면 힘이 약한 언론부터 광고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하고 그것은 진정한 언론의 실종과 풀뿌리와 경제 민주주의 위협으로 귀결된다. 이런 참혹한 상황이 등장하는 것은 모두의 불행이다. 거기에는 정치권의 여야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오늘의 여당은 내일의 야당이 되는 것이 현실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족벌과 거대 자본이 야합한 공룡 언론은 반영구적으로 사회적 장악력을 세습화하게 되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 통일을 저지하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위험이 크다. 이런 비극을 방지하자는 최소한의 장치가 미디어렙법이다.

학교 급식 방식을 둘러싼 서울시 주민 투표가 한나라당의 완패로 끝나고, 언론노동자 총파업과 지역 언론 공동 투쟁이 전개되면서 미디어랩법 제정 촉구 불길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디어렙법과 교육 복지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질적 진화를 통한 국민의 행복 지수 증진이라는 공동 목표를 지니고 있다. 한나라당은 시대의 흐름이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국민의 행복증진이라는 점을 직시해 족벌, 재벌 언론만이 설치는 환경을 방지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민주당도 KBS 시청료 인상안이나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특별법 제정에 원칙 없이 동의하면서 진보개혁 세력과 담을 쌓는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데 이번에 미디어랩법 제정에 총력 대응해 시대를 정확히 읽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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