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TV. 쓰고 싶지 않은 말이다. ‘조중동’이란 말이 퍼져갈 때도 그 말을 즐겨 쓰지 않았다. 이를테면 칼럼 제목을 ‘방우영 김병관 홍석현’으로 썼듯이, 비판을 하되 언론노동자와 언론자본을 구분하고 싶었다. 물론, 그때도 자본의 성격 차이를 적시하긴 했다. 중앙일보가 남북관계에선 일부 전향적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작은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세 신문사의 ‘언론 귀족’들이 은퇴하면 그 자리를 내부의 새로운 언론인들이 채우리라 생각하며 비판 했지만, 곰비임비 ‘닮은꼴 기자’들이 재생산되고 있어서다. 더구나 정년을 한참 넘긴 그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붓을 휘두르는 반면에 나의 글은 일간지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고백하거니와 새삼 자본의 힘을 절감하는 이유는 어느새 옹근 20년이라는 감상도 한 몫을 했다. 1991년의 찌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다. 동아일보 김중배 편집국장은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자본을 경고하며 언론인들의 응전을 촉구했다. 언론 자본의 편집권 유린을 정치권력의 ‘정직’에 비해 ‘숨은 권력의 야만’으로 비판한 글을 기자협회보에 기고했던 나도 같은 날 사표를 던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이강택)은 지난 6월 2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조중동 종편 직접 광고 영업 금지를 전제로 한 미디어렙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KBS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 뒤 20년.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그 사이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 방송가도 변화의 모습은 사뭇 나타났다. 가령 언론노조 위원장이 문화방송 사장을, 한겨레 논설주간이 한국방송 사장을 맡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사무국장이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비판커뮤니케이션학의 ‘대부’인 언론학자가 방송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가. 2011년 현재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방송통신위원회의 살풍경을 보라.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민사회에서 ‘조중동’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아갔고 조직적인 안티조선운동이 벌어졌지만 바로 그 신문사들이 저마다 종합편성채널을 확보하고 방송 개국 준비에 한창인 게 현실이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 무엇보다 먼저 짚을 대목은 자본의 가공할 힘이다. 20년 내내 자본의 힘은 우리 사회에서 무장 커져왔다. 언론자본 또한 말할 나위 없이 그 자본의 하나다. 물론, 모든 것을 ‘자본 탓’으로 돌리기란 바람직하지 않고 사실과도 다르다. 그 20년 동안 언론운동에는 성과 못지않게 착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론운동 내부의 문제를 정면으로 논의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자본의 힘부터 우리 모두 절박하게 인식할 때다. 주체의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객관적 조건에 대한 공감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20년 전에는 전혀 가시권에 들어와 있지 않았던 방송을 저마다 거머쥘 수 있을 만큼 자본의 힘은 막강해졌다. 세 신문사의 자본도 종합편성채널을 확보했다. 세 신문사에서 언론자본의 권력은 어떤 도전도 받지 않는다. 세 신문사 노동조합은 노조라는 이름에 전혀 값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조중동TV의 개국에 그치지 않는다. 각각의 방송이 독자적으로 광고 영업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언론 현장에선 세 신문사의 종편이 직접 영업에 나서는 걸 막기 위해 법적 장치를 요구하며 파업까지 벌이고 있지만, 한나라당 부라퀴들이 장악한 국회는 변죽만 울리고 있다.

그래서다. 이참에 조중동TV의 구성원들에게 쓴다. 조중동TV가 광고를 직접 영업할 때 그 폐해는 다름 아닌 구성원들에게 먼저 오기 때문이다. 자본의 힘이 프로그램마다 스며들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이 상대적이나마 대기업의 횡포를 한때 고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직접 광고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이 방송사 내부로 들어오고 더구나 광고까지 직접 영업할 때, 광고주인 자본의 압력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에 조중동TV의 개국 요원들도 직접 영업에 대해 눈앞의 이해관계를 떠나 깊이 성찰해야 옳다.

만일 조중동TV가 끝내 직접 광고영업을 할 때, 기존의 방송사들도 광고 영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광고를 놓고 진흙탕싸움이 벌어지면 자본력이 약한 미디어들만이 아니라 종편 방송사들의 운명도 바람 앞 등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손석춘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장
 

조중동TV가 대한민국을 벅벅이 ‘자본의 왕국’으로 만드는 ‘종결자’가 된다면, 그것은 비단 그 방송사 구성원들만의 불명예에 그치지 않는다. 여든을 눈앞에 둔 김중배 선생은 최근 기자협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인터넷 시대에 직업적 언론인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새로운 사회를 여는 통찰자’가 되라고 충고했다.
지금 이 순간도 세 신문사에서 애면글면 일하고 있는 언론노동자들에 대한 믿음을 다 버리지 않았듯이, 나는 앞으로 종편에서 일할 언론노동자들에 대한 믿음도 다 접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다. 우리 모두 경계심을 잃지 말자는 충정으로 쓴다. 언론계는 물론 자칫 대한민국의 미래를 ‘자본의 왕국’으로 캄캄하게 만들 수 있는 그 방송사의 이름을. 조중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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