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주민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쉴 새 없이 문자가 들어옵니다. ‘비겁한 투표 방해 세금폭탄 불러옵니다. 8월24일(수) 꼬옥 투표합시다 투표참가운동본부’ 어디서, 어떻게 내 연락처를 구했는지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동시에 한 정치인이 벌인 이 엄청난 ‘쇼’에 우리 사회와 국민이 얼마나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 문자를 받자마자 든 생각은 참 잘 만든 구호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짧은 문구에는 우리 국민이라면 가장 싫어할 만한 두 가지 용어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바로 ‘투표 방해’와 ‘세금 폭탄’이라는 말입니다. 직선제 투표가 보편화된 1980년대 후반 이래, 투표는 우리 국민이 한꺼번에 뜻을 밝힐 거의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2000년 이전까지 야당과 시민단체가 투표 참가를 독려한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반면 여당은 은연중에 투표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를 조장했습니다. 간접적인 투표 방해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투표 방해라는 용어에서는 뭔가 반민주적인 꼼수의 냄새가 납니다.

또 ‘세금 폭탄’이라는 말은 중산층이나 상위 계층이 극도로 꺼리는 말입니다. 부동산세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했던 지난 정부의 경험은 상위 계층에게는 악몽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두 용어를 교묘하게 결합해 대중들의 환멸을 이끌어 내려는 구호입니다. 한 마디로 대단합니다. 이 사안에 대해 냉철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세금과 재정에 대한 걱정을 투표를 통해 꼭 표출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하긴 무상급식 주민투표 진행과정 전체가 잘 만든 한 편의 쇼였습니다. 서울시 교육감이 결정해야 할 문제를 시장이 떠안고 나선 것도, 초등학교 5·6학년 급식 문제를 포퓰리즘으로 포장한 것도 대단한 전술이었습니다. 당초의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단계적 실시 대 전면 실시의 대결 구도로 바꿔치기 한 것도 굉장했습니다. 전면 실시는 뭔가 급진적인 느낌이 강하고, 급진적인 것이라면 넌더리를 내는 것이 우리 국민들 정서입니다.

무대 연출만 화려했던 것이 아닙니다. 무대에 선 주역 오세훈 시장의 연기는 어땠습니까? 서울 시장 선거전에서 이미 공언한 바 있는 대통령 선거 불참 의사를 자기희생적인 결단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실패하고 나면 오 시장은 어차피 ‘식물 시장’이 되고 맙니다. 스스로가 주민 투표의 성격을 그렇게 시장 신임투표로 변질시켰습니다. 그래놓고 마지막 순간 다시 시장직을 주민투표에 연계합니다. 그것도 어디 그냥 올인 했습니까? 울고, 무릎 꿇으며 국민의 정서에 애끓는 호소를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판 돈 한 푼 없이 엄청나게 판을 키워놓았습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별 것 아닌 정책이 엄청난 정치 사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이 추진했던 정책의 공과는 파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오 시장 입장에서 그게 더 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서울이 결딴날 듯했던 수해나 도시를 마비시킨 폭설 같은 위기 시에 뭘 했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그가 무슨 대책을 강구했는지는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지자체 단체장 같은 행정가라면 그런 일로 평가받아야 마땅한데도 말입니다.

물론 그는 서울시를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그 일은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전임자이자 대통령이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굳혔던 청계천 복원 사업을 능가하겠다는 의지가 노골적으로 담겨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단순한 도시계획이나 건설에, 화려한 이미지를 덧칠해 ‘명품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걸 위해 썼거나 써야 할 돈은 엄청납니다. 한강운하 1조원,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1조원, 광화문 복원사업 4백78억원, 디자인플라자·동대문역사문화공원 4천2백억원, 남산르네상스 1천8백억원, 시청사 건립비용 4천억원, 디자인서울사업 2천4백억원 등입니다. 시민단체나 언론이 집계한 것만 얼추 살펴봐도 이렇습니다. 그 결과 서울시 재정도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시 산하기관이나 공사까지를 포함한 서울시 부채는 25조원으로 추정되고, 시 재정 평균잔액은 5년 전 3조원에서 현재 4천억원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결식아동을 없애자는 7백억원짜리 프로젝트에 이 난리굿을 칩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

   
@CBS노컷뉴스
 
설령 주민투표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오세훈 시장은 정치인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포퓰리즘과 맞서 싸운 보수 투사 이미지를 얻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원칙을 위해 다투던 희생양이라는 이미지는 남습니다. 겉치레에만 신경 쓰다 재정을 거덜 낸 행정가에 비해 그런 정치인의 이미지는 훨씬 낫습니다. 주민투표에 이긴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진다고 해도 정치가로서는 득이 많습니다. 이기면 이기고, 지고도 이기는 승부라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쯤 되면 이번 주민투표는 정치인 오세훈이 당연히 걸었어야 할 승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승부사로 변모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는 2000년 이회창 총재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했습니다. 원희룡 최고의원과 함께 개혁 공천의 상징 인물로 발탁됐습니다. 그 때까지 그는 인기 있는 방송인이자 변호사였습니다. 깨끗한 신인이라는 이미지가 정치인으로서 가진 자산의 전부였습니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 시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한나라당 선거통들은 오 후보의 유일한 경쟁력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꼽았습니다. 물론 더 이상 정치 신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2004년 총선 당시 이미지 정치의 한계를 느꼈던 모양입니다. 초선 당시 그는 당과 부딪치며 이른바 ‘오세훈법’이라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동시에 소장파를 이끌며 구시대 인물 퇴진론을 주도합니다. 그 후 공천 탈락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총선 불출마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죠.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치를 그만 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시점부터였습니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되면서 그의 카드는 적중했습니다. 한나라당이 41:0이라는 기록적 압승을 한 당시 지방선거에서, 당연히 그는 서울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이명박 식의 이미지 정치에 김영삼 전 대통령 식의 승부사 정치가 결합한 결과는 지금 어떻습니까? 정치인 오세훈 입장에서는 굉장합니다. 이른바 상징조작과 허풍을 통해 사소한 판을 엄청나게 키웠습니다. 게다가 이 판에서는 지는 것조차 이기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상황은 장고(長考) 끝에 둔 악수(惡手)와 비슷합니다.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이 조금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뭔가 잘못됐다는 걸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소영의 코에 최지우의 입을 갖다 붙인 것처럼 어색하다는 걸 눈치 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주민투표는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투표입니다. 결코 뜨거운 정치적 사안이 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 성격을 바꿔놓은 것은 정치인으로 해야 할 도박이었지만, 행정가로서 해야 할 직무는 아니었습니다. 서울시장이라면 마땅히 시민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더 나아지도록 할 것이냐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는 이번 승부수를 통해 정치인으로서 얼마간의 팬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전체 시민들로부터는 능력에 대한 의심만 사게 됐습니다.

둘째, 과잉복지에 대한 우려나 저항은 얼핏 보면, 유럽 주요 국가들이 재정 위기를 겪는 상황에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을 과잉 복지와 재정 파탄으로 비약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도 논리적으로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 유럽 국가들 가운데 과잉 복지 논란이 가장 심하게 벌어졌던 나라들은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입니다. 최근 이 나라들은 유럽 위기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경쟁력 원천을 분석하는 연구가 유행할 정도입니다. 반면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오로지 지나친 복지정책 때문에 현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사조가 유행하면서 과잉 복지 주장이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영국병’ 같은 용어를 만들어낸 대처 수상 시절의 영국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성장과 복지를 상충(trade-off) 관계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지가 안정적 성장의 기반이라고 보는 경제학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아직도 과잉 복지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어떤 지표를 들이대더라도 우리는 과다한 복지 정책으로 적합한 사례가 아닙니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에는 나라와 기업은 괜찮은데, 국민들 삶의 질은 후퇴하는 불균형마저 심화되고 있습니다. 한 국책연구소 분석 결과에 따르면,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이지만 삶의 질은 27입니다. 중하위 계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늘려야지, 이걸 막겠다고 나설 때가 아닙니다. 오 시장은 정치인으로서 괜찮은 카드를 꺼내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나 행정가로서 그는 우리나라에 적합하지도 않을 뿐더러 지나치게 오래된 카드를 뽑아들었습니다.

셋째,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용어도 적합하지 못합니다. 미국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이 말은 ‘보통 사람들의 필요(needs)나 희망(wishes)을 대변하려는 정치적 아이디어나 활동’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 뜻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또 원래부터 부정적으로 쓰였던 것도 아닙니다. 부정적 의미가 강해진 것은 훗날에 와서였습니다. 대중을 엘리트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이론적 뒷받침이나 이성적 판단이 부족한 정치 선동을 뜻하는 말로 변질된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포퓰리즘은 권위적 통치와 결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용어의 추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입니다. 그런데 페론 정권의 이념이나 통치 철학은 애매모호 하고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무척 힘이 듭니다. ‘정의주의’라는 말을 포함해 여러 구호를 내세웠지만, 정작 그 부부는 겉치레와 낭만을 좋아한 데다 자의적으로 행동하기 일쑤였던 권위주의적 선동가였을 따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페론 정권을 과잉 복지와 정부 확대가 국가를 망친 대표적인 예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페론 정권이 끼친 진짜 해악은 경제나 사회복지 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있었습니다. 페론 부부는 정당을 비롯한 정치 제도 자체를 불신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직접 대중에게 호소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이라는 빛바랜 용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본인이 누군지는 자명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오 시장은 자신의 정치적 승부를 위해 우리 사회의 극한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정책 선택을 강권했으며, 국민들에게는 이념 대결을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 국익과 무관한 일에 국가적 관심과 국민적 에너지를 헛되이 쓰게 만들었습니다. 여당이나 보수 진영 내에서도 내심 그에 대한 불만이 큰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이제 이 쇼를 멈춰야 합니다. 이번 도박이 통한다면, 향후 총선과 대선이라는 중대한 정치 일정에서 이보다 더한 자극적 승부수들이 난무할지 모릅니다. 그건 국익과 통합이란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먹고 살기 바쁜 국민 개개인들이 더 이상 불필요하게 당혹해 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만일 연출자와 주역이 쇼를 멈출 생각이 없다면 관객이 멈추게 해야 합니다. 보통 무대의 막을 내리게 하는 것처럼,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 정치인이 던진 회심의 승부수에 일체의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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