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검찰 총장이 ‘종북좌익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청와대가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병역 기피 등 갖가지 의혹을 무릅쓰고 임용을 강행한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들고 나온 것이 공안 통치에 올인 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대 국민 협박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의 이런 태도는 간첩 신고 포상금 인상, '왕재산 사건' 발표 등 이미 진행 중인 청와대 발 공안통치의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명박 정권이 공안 통치로, 누적된 실정을 호도하면서 차기 정권 창출을 노리고 있다는 정황이 이미 여러 가지로 확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검찰총장의 공안검찰 선포는 과거 정권의 간첩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생뚱맞다. 이른바 빨갱이 사냥으로 당사자는 물론 가족 등을 엄청난 고통과 불이익 속에 신음케 했던 과거 사법당국의 범죄사실이 줄지어 대법원 등에서 판결로 나오는데도 검찰 총장은 그것을 철저히 외면했다. 검찰의 존재 이유는 법치 확립을 위해 국민에게 법으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법으로 생사람을 때려잡으라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앞장서야 할 대 국민 법률 서비스는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가, 그리고 과거에 법과 관련해 잘못된 것이 있었다면 바로잡아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 총장은 거칠기 짝이 없는 어휘를 구사하면서 과거 독재정권이 써먹던 수법을 다시 들고 나왔다. 이런 자격 미달 검찰 총장의 등장은, 청와대의 민주의식 수준이 얼마나 후진적인 것인지를 드러낸 것이다.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
@CBS노컷뉴스
 
한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종북좌익세력의 척결'을 제시하면서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규정했다. 그가 ‘종북좌익’이라는 표현을 통해 거론한 색깔론, 이념문제는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래 지구촌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춘 구시대의 유물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힘겨루기와 갈등은 이제 역사 속에 묻힌 먼 이야기가 된 것이다. 검찰 총장이 이런 세계사적 흐름에 철저히 무지하다는 것은 경악스럽고 또한 참혹한 일이다.

검찰 총장이 종북좌익 타도의 구실로 삼을 국가보안법은 유엔 등 국제 사회가 오래전부터 그 야만성, 반인권성을 지적하면서 그 개폐를 권유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개인의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남북관계에 대한 언론의 취재, 보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치스런 악법이다. 이 법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상상력을 제약하는 치졸한 후진국의 구렁텅이를 헤맬 뿐 세계 속의 일등 국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검찰 총장은 최근 공안 사건에 대한 당국의 발표가 잦아지면서, ‘간첩 소탕’을 외치는 일부 수구 세력 주장의 허구성을 인식하기는커녕 되레 부화뇌동하려 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정보화 사회다. 모든 정보가 빛의 속도로 흐르는 시대라서 구시대적인 간첩의 개념이 통할 수 없다. 특히 남북한은 특수관계다. 적대적 대립 상황이면서 통일을 달성해야 할 상대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 사회의 간첩이란 과연 어떤 개념이 적용돼야 할지부터 검찰 총장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이 간첩으로 몰아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던 사건들이 줄줄이 무죄판결이 나는 것을 살필 때 더욱 그러하다.

올 초부터, 과거 60~80년대 정보당국으로부터 고문 수사를 받고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장기 복역한 사람들에게 잇따라 무죄가 확정되고 있는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대법원은 지난 1월 조봉암 사건의 재심 판결에서 과거 조봉암이 유죄판결을 받았던 ‘국가변란목적 단체결성과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5공화국 시절 조총련계 공작원에 포섭돼 간첩 행위를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처벌받은 구아무개(59)씨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달 유신 시절 작가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조작된 굴레를 씌운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밖에 박정희 군사정권 때인 1961년 ‘송씨 일가 간첩단’, 1975년 '형제 간첩 조작 사건', 1980년대 '진도간첩단' 사건 등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수십년간의 억울함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법무부는 간첩·간첩선 신고 포상금을 종전의 5배인 5억 원으로 늘린 '국가보안 유공자 상금지급'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령을 지난 5일 입법 예고했다. 신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그 강도에서 차이가 있었을 뿐 입을 모아 좌익 타도를 외쳤다. 실정법의 집행을 담당한 실무 고위직들이 한결같이 이념전쟁을 다짐하는 것은 아픈 과거의 치유는커녕 끔찍한 공안독재의 수렁으로 국민을 몰아넣는 일이다.

이들 공직자의 법률 서비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소한의 공권력으로 국민의 인권 등 기본권이 신장될 수 있는 상황 조성에 노력하는 것이다. 세계가 비웃고 있는 악법을 무기 삼아 국민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위장전임과 아들 병역문제 등 고위공직자의 기본적 도덕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국민의 냉소와 박탈감을 뒤로한 채 또다시 '박제화'된 국가보안법 칼끝으로 공안의 망령을 부린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