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은 그 횟수를 더해가면서 점차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핵심비껴가기식 발언으로 일관하던 후보들도 논쟁에 점차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방송사들도 후보자들이 피해갈 수 없게끔 화면이나 구체적 자료를 준비하는 등 노하우를 쌓아가는 모습이다.

이 결과 지난 16일과 17일 KBS, SBS가 주최한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는 그간 볼 수 없었던 후보자간의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착단계’로 보기는 어렵다. 부분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선거법을 들 수 있다. 현행 선거법상 후보자 상호간에 갑론을박을 벌이는 ‘진정한 의미’의 TV토론은 금지돼 있다. 후보 상호간의 질의 응답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후보자는 사회자의 질문이나 중계를 통해서만 발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외국의 경우처럼 후보자들이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고 맞받아치는 직접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조항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단편적인 통계 외우기나 감각적 표현을 잘 하는 후보가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말 솜씨나 외모 등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인물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쟁점을 회피하는 ‘선문답’식의 토론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1일 MBC가 주최한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는 사회자가 “30여분이 지나도록 논점이 형성되지 않았다”며 후보자들의 ‘핵심 비껴가기식’ 발언에 제동을 거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책의 차이보다 “김대중씨와의 관계는” “옛날에 유신헌법을 지지한 전력이 있는데” 등 가십성 질문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말을 혐오하는’ 독특한 한국적 정서도 TV토론의 활성화를 위해 넘어서야 할 벽이다. 남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을 소인배로 취급하는 풍토 때문인지 TV토론에 나온 후보자들은 지나치게 점잔을 빼고 있다.

후보자가 사실과 다른 말을 하거나 현실성이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데도 사실검증없이 그냥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충남지사에 출마한 민자당 박중배후보의 경우 92년 한준수 전연기군수의 관권부정선거 폭로 양심선언에 대해 “자기욕심 때문에 돌출행동을 했다는 것은 도민이 다 알고 있다”고 했다가 한전군수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방송사간의 과열 유치경쟁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후보자와 유권자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토론의 자리가 자주 마련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내용이 반복됨으로써 토론의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협의해 토론주제를 나누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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