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어안이 벙벙한 상태’라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지난 7월 29일 오전 11시 김재철 MBC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에 느닷없이 사표를 제출한 직후부터 1일 재선임되기까지 며칠 동안 상황은 쉽사리 해석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일각에선 사표 소동의 발단 자체가 김재철 사장 주연, 방문진 여당 이사들 조연의 합작품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김 사장의 ‘원맨쇼’였다는 분석이 더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무엇보다 방문진 이사들은 물론이고, 김 사장 측근과 MBC 경영진조차 당일에야 사의 표명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이진숙 MBC 홍보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재철 사장은 사의 표명 전에 임원들과 일체 상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 본인 역시 1일 방문진 이사회에 출석해 “사전에 찾아뵙고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힌 바 있다.

고향인 경남 사천 출마설이 끊이지 않던 김재철 사장이 내년 총선에 대비해 일찌감치 사표를 던졌다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돌출적 사의가 과연 그의 정치행보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방송통신위원회의 진주·창원 MBC 통폐합 승인 보류’가 과연 상식적으로 사표를 낼 만한 사안인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표 제출로 통폐합 등 뜻한 바를 이루거나, 최악의 경우 정치권에 진출하거나 ‘양수겸장’의 카드라는 주장도 나왔다.

   
2일 아침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관계자들이 김재철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본사 입구를 막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확인 결과, 안동MBC에 출장을 간 것으로 밝혀졌다.(사진 이치열 기자)
 
29일 휴대전화까지 해지한 채 연락을 끊은 김 사장의 부재 속에서, 가장 급박하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방문진 여당 쪽 이사들과 MBC 경영진이었다. 애초 방문진은 사표 문제 논의를 위한 이사회를 1일 오전 10시에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오후 3시경 이사회를 2시간 뒤(5시) 연다고 이사들에게 긴급 통보했다. 이에 대해선 “신속한 수습 없이 시간을 끌 경우 김 사장의 사표가 ‘기정사실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고진·정상모 등 야당 이사들도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연락되지 않는 이사(야당 쪽 한상혁)가 있어 절차상 문제가 있다", “김 사장의 복귀 명분을 주기 위해 서둘러 소집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며 회의 불참을 통보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이 순간 MBC 경영진 역시 매우 분주했다. “김재철 사장이 그만둘 경우 자신들의 자리보전도 어려울 것을 우려해, 사표를 무효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심지어 “일부 임원들은 방문진으로 달려가 김 사장의 사표 제출이 단순한 항의의 뜻이라며 본인의 진의가 아니라고 역설하고 다녔다”고 한다.

김 사장의 사표 제출 사유가 방통위의 지역 MBC 통폐합 승인 보류에 대한 ‘책임’에서 ‘항의의 표시’로 바뀐 것도 이 즈음이다. MBC 측은 3시 30분경 이 같은 내용의 수정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발송했다. ‘책임’과 ‘항의’의 의미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책임은 ‘자발적 사표’의 뜻이 강하지만 항의는 ‘강제적인, 어쩔 수 없는 사표’라는 점에서 구제 명분이 보다 선명해질 수 있다.

29일 오후 6시, 여당 쪽 이사들마저 지각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방문진 이사회가 열렸으나 야당 이사들의 불참 등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했다. 15분만에 회의 종료. 하지만 이어진 방문진 측의 브리핑 내용은 ‘예상대로’ 김 사장의 사표에 많은 ‘여지’를 주는 것이었다.

최창영 사무처장은 “오늘 저녁 이사 6명이 긴급 이사회를 열어 김재철 사장의 진의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주말 동안 김 사장의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파악한 후 월요일(1일) 이사 9명 전원이 모여 MBC 지역사의 광역화 문제가 사장이 도의적으로 책임을 질 문제인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락까지 끊으며 홀로 결연히 사표 제출을 감행한 듯 보였던 김재철 사장이 결국 1일 이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그 ‘주말 동안’에는 많은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이사회에서 “사표는 진의가 아니었고, 방통위가 통폐합 결정을 미룬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앞서 MBC 경영진·홍보국 측의 29일 사표 직후 ‘해명’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29일 방문진의 이사회 일정 조정과 경영진의 움직임 등을 보고 사표 반려 가능성을 직감한 MBC노조는 그야말로 ‘총력대응’에 나섰다. 사표 직후 “현재 MBC는 김재철 사장이 스스로 떠나지 않으면 온 구성원들이 궐기해 결국 쫓아낼 수밖에 없는 폭발 직전의 화산과 같다”며 사표의 즉각적 수리와 새 사장 공모를 촉구했던 노조는, 복귀할 경우 출근저지 투쟁과 총파업으로 맞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상법상 주식회사 문화방송의 사장은 사표를 제출한 즉시 그 효력이 발생한다”는 법적 근거도 제시하며 김 사장의 사직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1일 방문진 여당 이사들은, 노조의 반발과 야당 이사들의 표결 불참·집단 퇴장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김재철 사장의 ‘재신임’을 통과시켰다. 사표를 반려할 경우 노조측 주장대로 법적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주주총회를 통한 재선임이라는 ‘우회로’까지 마련했다.

오후 3시경 방문진 이사회 대변인인 차기환 이사는 “김재철 사장이 방통위의 지역 MBC 광역화 보류와 관련, 방문진에 재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제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재선임 이유를 밝히면서 “그러나 사임서의 효력에 관한 이견이 있어서 재신임하되,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주주총회에서 재선임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방문진과 정수장학회는 곧바로 주주총회를 열어 김 사장의 재선임을 최종 확정했다. 세상을, 아니 최소한 여의도는 뒤흔든 ‘김재철 MBC 사장 사표소동 4일’의 끝이었다. MBC 측은 주주총회 직후 “김재철 사장의 문화방송 제29대 사장으로서 지위를 재확인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MBC노조는 제30대 MBC 사장 ‘김재철 절대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출근저지투쟁은 물론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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