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미국식보다 장점이 많다며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주문하면서 중단됐던 영리병원 도입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정부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낸 지 불과 3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11~15일까지 5일에 걸쳐 1면과 4~5면에 정부의 영리병원 도입 중단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기획과 사설, 기자수첩까지 무려 16건이나 된다. 언론사의 얼굴이라는 1면을 포함한 지면 전체에 이만큼의 분량으로 영리병원 기사를 실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중앙일보가 이번 일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영리병원 도입에 유보적인 보건복지부 전·현직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중앙일보의 주요타깃이 됐다. 여야 구분도 없었다. 전국 6개 경제특구지역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는 병원이 들어서면 위헌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한 안홍준, 내국인 환자와 우수한 의사가 영리병원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의 국회 발언까지 문제 삼았다(13일자 4면 <외국환자 156만명 끌어들이는 태국 투자병원…한국선 장관·의원·시도지사 아무도 안 나선다>).

   
 
 
중앙일보는 급기야 영리병원 도입에 신중한 접근을 지시한 이명박 대통령까지 도마에 올렸다. 중앙일보는 11일자 5면 <“신중 접근” MB 한마디에 ‘병원 주식회사’ 올스톱> 기사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깃발을 올리고 이명박 정부가 가로막고 있는 셈”이라며 “이유는 2008년 광우병 촛불정국의 트라우마(외상)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촛불이 무서워 현 정부가 꼬리를 내렸다고 비난한 것이다.

중앙일보의 보도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 아니면 사전교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영리병원 재도입을 슬그머니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한지 불과 3일 만에 정부와 청와대, 한나라당이 제주와 인천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법률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입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제주와 송도의 투자병원 설립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13일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지식경제부·보건복지부·서울대병원·ISIH컨소시엄 등 관련기관과 기업들을 불러 영리병원 관련 1차 긴급대책회의까지 열었다. 중앙일보는 관련내용을 <“투자병원 법안 8월 국회처리”>라는 제목으로 14일 1면에 소개했다. 중앙일보의 압박이 정부를 움직인 것이다.

영리병원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중앙일보가 이처럼 전면에 나섰던 것일까. 현재 국내 대형병원들은 비영리기관이기 때문에 대형병원들이 벌어들인 돈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병원에 투자하도록 돼 있다. 개인병원과 의원은 영리기관이지만 이 역시 주식회사가 될 수 없어 영리병원이라고 할 수 없다.

반면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주식회사 병원이다. 외부 투자자로부터 돈을 끌어들여 병원을 운영하고 남긴 이윤을 주주들에게 배당한다. 중앙일보가 기사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주식시장에서 쉽게 자본을 조달하는 게 (영리병원) 성장의 핵심”인 셈이다. 중앙일보는 표면적으로는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의료관광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병원을 허용해 달라는 대기업 또는 금융자본의 요구가 숨어있는 것이다.

영리병원을 반대해 온 보건의료단체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그 중심에 삼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최근 송도에 삼성이 뜨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지난달 22일 송도 국제병원의 재무적 투자자로 삼성증권과 삼성물산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앞서 삼성은 송도에 바이오제약 산업과 연구개발 시설에 2조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또 아랍에미리트에서도 12억 달러 규모의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아부다비 분원’ 영리병원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삼성이 바이오제약과 국제병원 건립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차세대 바이오 기업’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2009년 11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보건복지부 의뢰를 통해 내놓은 HT(Health Technology·건강 기술) 산업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고령화로 인해 폭증한 의료서비스를 민간에 돌리고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원격진료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 12일자 4면 <블라디보스토크 환자도 볼 수 있는데…법에 가로막힌 원격진료>가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현재 국회에는 건강관리 HT법과 의료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이 모든 것이 현실화된다면 문어발식 계열사들을 거느린 대기업이 수혜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최대 수혜자는 삼성SDS(IT), 삼성생명(보험사), 삼성병원, 송도 영리병원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삼성증권과 삼성물산, 그리고 바이오신약개발 인프라까지 모두 소유하고 있는 삼성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번 중앙일보의 ‘영리병원 올인보도’ 행태가 삼성의 이해관계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면서 “중앙일보의 이번 보도에 청와대가 나서 적극 ‘화답’ 하면서 정부 여당이 다가오는 국회에서 영리병원 허용을 담은 법안들을 적극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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