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종편’은 생존할 수 있을까. 2012년을 준비하는 언론계에 던져진 중요한 물음이다. 한국 광고시장 현실을 고려하면 종합편성채널의 생존은 쉽지 않다. 그러나 ‘조중동 종편’이 쉽게 무너질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의 길을 찾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언론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잡식 본색’, 종편을 ‘황소개구리’에 비유하는 까닭이다. / 편집자주

“방통위는 새롭게 출범하는 종편 채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후속 조치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동아일보가 지난 1월 1일자 사설에 담은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남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동아일보 1월 1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동아미디어그룹, 방송사업 진출>이다. 신문의 얼굴 중 얼굴이라는 1월 1일자 지면은 이처럼 자사이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새해 첫날부터 지면을 통해 ‘특혜’를 요구한 언론은 동아일보만이 아니다. 조선은 1월 1일자 8면 <시장규모 비해 사업자 너무 많아…“종편 안착 위한 대책필요”>라는 기사에서 “종편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2~3년간 케이블 TV의 낮은 채널 번호를 확보해야 한다”는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의약·생수 광고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종편사업자에게만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중동방송퇴출무한행동’은 지난 22일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중동방송 퇴출을 결의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언론이 자사이익을 겨냥해 정부에게 특혜 제공을 대놓고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모습이다. 하지만 2011년 새해 첫날부터 한국 신문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보수신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종편 생존을 위해 언론사의 체면을 내던졌다. 종편 허가권을 따낸 신문사의 2011년 1월 1일자 지면은 언론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 종편의 ‘잡식본색’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특혜 구조가 이어져야 생존할 수 있는, 특혜 존속을 위해 끊임없이 정치권을 압박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종편의 미래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2009년 7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힘의 논리’가 지배한 그 공간에서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조중동 방송법’ 표결처리가 이뤄졌다. 한겨레는 다음날 사설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의회쿠데타’”라고 비판했고, 경향신문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유린한 미디어법 날치기”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까지 당시 투표는 ‘불법’이라고 결정했지만, ‘조중동 방송법’을 근거로 한 종편은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종편 개국은 오는 12월 또는 내년 1월 1일 정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주목할 대목은 한국 광고시장 현실을 고려할 때 종편사 모두의 생존은 어렵다는 점에서 사활을 건 광고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조중동 종편’ 출현은 종교방송, 지역방송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물론 중소규모의 전국단위 일간지와 다수의 지역일간지 등의 생존에도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조중동이 한정된 광고시장을 놓고 ‘약탈적 경쟁’을 벌이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언론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기업은 전체 마케팅 차원에서 광고예산을 정하기 때문에 광고시장 규모는 일정하고 국내 내수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획기적으로 커지기도 어렵다. 동일한 파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 ‘보도기능’ 등을 활용한 편법과 무리수가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현행 미디어렙(광고주의 각종 방송광고를 광고주를 대신해서 방송국에게 판매하는 회사) 제도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때문에 법안 개정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6월 임시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았고, 8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안 개정이 이뤄질 것인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는 사실상 무법상태이기 때문에 종편 입장에서는 미디어렙 체제를 벗어나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야당과 언론시민단체는 “조중동 종편의 광고 직거래를 금지하는 미디어렙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회의 안정적 과반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이 ‘조중동 종편’의 광고 직거래 금지에 미온적이어서 법안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26일 현재 한나라당 우호 의석은 전체 297석 중 183석(한나라당과 합당을 의결했던 미래희망연대 의원들과 한나라당에 가까운 무소속 의원 포함)으로 전체 61.6%에 이른다.

조중동 종편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한나라당이 국회를 장악한 지금이 각종 특혜제도를 얻어낼 호기라고 보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습이다.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연임은 ‘조중동 종편’의 연착륙이 목적이라는 분석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 6월 14일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종편이 속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광고영업은 자유롭게 하도록 돼 있다”면서 “이미 자유롭게 돼 있는 것을 새로운 규제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중동 종편’의 광고 직거래를 금지해야 광고시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언론·시민단체의 주장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최시중 위원장의 이런 발언이 나온 이후인 6월 20일 국민일보는 <미디어렙 법안 정비 안하면 재앙 온다>라는 사설에서 “이미 종편은 전국 단일 권역 방송, 의무전송, 외주 제작물 편성 비율, 중간광고 허용 등 상당한 특혜를 확보했다. 여기에 직접광고까지 허용한다면 뉴스 보도를 무기 삼아 광고시장을 교란시킬 위험성이 대단히 크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방송사와 비슷한 채널을 요구하는 ‘황금채널’ 문제도 종편 특혜 논란의 초점이다. 황금채널 배정은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정부의 힘을 이용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을 압박하면 황금채널 확보가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조중동 종편은 사실상 특혜구조를 기반으로 시장에 연착륙하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러한 특혜구조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천정배 이종걸 등 민주당 의원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함께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중동 종편 특혜 저지’를 담은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의 공공성을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지키기 위한 긴급한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법안에는 △의무편성 및 재송신 채널에 종편 채널 제외 △종편 사업자 사업구역을 지역방송사업자 방송구역에 준하도록 제한 △종편 프로그램 편성 및 광고는 지상파 방송사업자와 동일하게 규정 △종편 사업자와 보도채널 사업자의 방송광고판매대행사를 통한 판매 외 방송광고 판매 금지 등을 담고 있다.

내년 4월 19대 총선에서 야당이 원내 과반을 차지할 경우 조중동 종편 특혜 저지법 통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조중동이 생존에 사활을 걸고 매체영향력을 동원해 압박할 경우 국회 법안 통과가 호락호락 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한국의 광고시장을 고려할 때 종편 4곳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지만, 언론 DNA를 가진 회사는 적자가 나도 문을 안 닫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른 매체의 몫까지 무리하게 뺏어서 전체 미디어생태계가 피폐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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