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자체선거는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미디어정치의 본격적 등장을 알리는 계기였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과거 선거보도의 문제점이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22일 신문사 정치부 기자와 방송사 카메라기자의 취재현장을 쫓아 이같은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살펴봤다.



6월22일 인천 효성동 체육공원.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지원연설을 하는 날이다. 3천명 남짓한 유세인파속엔 10개 중앙일간지와 3개 방송사의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이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동아일보 정치부 윤영찬 기자도 유세인파 속에서 부지런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는 김이사장의 호남지역 유세를 취재하기 위해 며칠동안 강행군을 했던 터라 무척 피로해 보였다. 그의 일과는 대략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기자단과 함께 김이사장의 유세장소를 따라 많게는 11곳에서 적게는 4~5곳을 옮겨다닌다.

취재를 마치고 동료기자들과 소주라도 한잔 걸치면 귀가는 새벽 2~3시나 돼야 가능하다. 기사를 쓰고 보내는 것도 이 유세장에서 이뤄진다.하루에 평균 3꼭지정도 기사를 씁니다. 유세장 스케치, 주요발언, 그리고 흥미있는 대목을 따로 빼 어록으로 정리합니다. 중요한 쟁점에 대해선 상자기사로 처리합니다.

유세장에 컴퓨터로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전화로 기사를 부르기도 하죠 유세를 마친 김이사장은 연단을 내려와 승용차를 타고 다음 유세지인 학익동 신동아 쇼핑센터로 향했다.

그러나 기자단이 탄 전세버스가 현장에 도착했을땐 이미 김이사장의 유세는 끝나 있었다. 인파에 막혀 지체됐기 때문이었다. 기자단은 이런 속도로 뒤를 따르다간 뒷북만 치겠다는 판단이 들어 다음 유세장인 구월동은 빼고 아예 그 다음 유세장인 부천 원미국민학교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윤기자는 지자제 선거보도에 대해 말을 꺼냈다. 이번 선거보도를 보면 절반 가량이 김이사장 발언을 둘러싼 공방입니다.

데스크에서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을 요구하는데 그건 이번 선거가 김이사장 발언을 둘러싼 공방전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기자는 이런 식의 선거보도가 지자체 선거를 행정자치, 주민자치의 전단계로 생각했던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대체로 수긍했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 정치현실이 대통령을 포함, 일부지역에 기반을 둔 몇몇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러니까 선거판을 제대로 읽으려면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움직임과 그들간의 역학관계를 추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처럼 선거가 정책이나 제도에 의해 움직여진다면 모를까 지금의 정치현실로선 불가피합니다.

물론 정치현실만 탓할 수는 없겠지만 기사를 그렇게 쓰지않으면 언론은 마치현실의 흐름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게 됩니다그러면서 윤기자는 이런 말이 닭이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처럼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김이사장이 선거에 참여할 의사를 비췄을 때 언론은 정계복귀 아니냐며 강도높게 비판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계복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김이사장이 원하는 선거구도대로 언론이 따라가고 있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그게 바로 선거보도의 딜레마죠. 선거가 이런 흐름으로 가선 안된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선거가 이런 흐름으로 가고 있는데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흐름을 쫓지 않으면 정확한 선거정보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천 원미국민학교 유세를 취재한 후 마감시간에 맞춰 전화로 기사를 부른 윤기자는 또다시 흐름을 쫓아 다음 행선지를 향해 버스에 올랐다. 해저문 운동장에 먼지를 남겨둔 채 떠난 윤기자의 머리속엔 역사의 변화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치현실, 변하지 않는 선거보도가 맴돌고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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