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진짜문제는 그의 침묵도, 수첩공주와 100단어 공주와 같은 결함도 아니다. 용인술, 자기주변 사람을 쓰는 능력이 진짜 문제다.’
우리 사회 논쟁적 현안을 날카롭게 비평해온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주요 지도자 후보에 대한 논쟁적 소재를 들고 나왔다. 바로 ‘강남좌파’. 그는 22일 출간된 <강남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인물과 사상사)에서 최근 회자된 ‘강남좌파’의 기원과 의미, 유형을 분류하면서 그에 들어맞는 인물들을 집중 분석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의 386을 비롯, 2007년 대선 때 문국현을 거쳐 현 정부에서 강남좌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조국 서울대 교수와 함께 유시민, 손학규, 문재인 등 차기 야권 주자들을 강남좌파로 분류했다. 또한 강남좌파에 그치지 않고, 오세훈과 박근혜 등 여권 주자를 강남우파의 범주에 넣었다. 이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분석이었다.
강 교수는 박근혜 전 대표의 특징으로 ‘침묵의 정치’ ‘외모 자본’ 등을 들었다. 특히 그의 침묵을 두고 ‘말 좀 하라’는 전방위적인 언론계와 정치권의 요구와 권고가 쏟아지는데도 모른 척하고 또다시 침묵하고, 그럼에도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유에 대해 강 교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제시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CBS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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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수첩 공주’ ‘100단어 공주’라는 조롱섞인 별명을 불러대도 정치를 혐오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은 이념이니 정책이니 이슈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며 “그저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걸 밥 먹듯이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확실히 예외적인 존재였다는 것이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에 당원투표엔 앞섰으나 여론조사에 뒤져 경선에 졌지만 깨끗이 승복한 뒤 하루 대여섯 곳 이상 뛰면서 ‘이명박 후보에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것은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가 점잖게 몇마디하거나 곤란한 질문에 대해 똑같은 답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레 지지자들에겐 매력이 된다고 강 교수는 분석했다.
강 교수는 이 때문에 박근혜를 두고 “한국 정치를 반사하는 거울”이라고 평했다. 거울 속의 그림을 때릴 수 없기 때문에 거울 밖의 그림이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불신과 정치혐오가 만연한 상황에서 박근혜에게 그 정도 수준의 미시적 비판으로는 넘어설 수 없다는 것. 그런 점에서 강 교수는 박 전 대표의 여러 결함이 갖는 두려움을 말하기 전에 우리의 그런 고질적 문제에 대한 성찰을 주문한다.
하지만 강 교수는 박근혜에게 치명적 문제를 끄집어냈다. 박근혜를 둘러싼 인의 장막이다. 인의 장막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물리적 장막과 심리적 장막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박사모 집단의 경우에 대해 강 교수는 “심리적으로 둘러싸여 현실판단을 잘못하거나 자신의 아집을 정당화 또는 미화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그 누구보다 열정적 지지자를 많이 가진 박근혜에게 그 지지자들의 존재는 정치적 축복이자 저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22일 펴낸 <강남좌파> | ||
이는 평범한 여인이라면 아름다운 효심으로 끝나겠으나 유력 대통령 후보인 이상 결코 그렇게 볼 수 없다. 강 교수는 그의 인재풀을 들어 “박근혜가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를 인물 검증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며 “심지어 김영삼과 이회창도 그녀의 검증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게 아닌가 말이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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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아버지의 시대가 아니다”라며 “2인자를 허용하지 않고 절대적 충성만을 요구했던 박정희의 용인술로는 2010년 한국을 이끌 수 없다”며 “맹목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충성파들이 쳐둔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박근혜의 모습, 그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이 나라를 어떤 ‘용인술’로 이끌겠다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박근혜가 반드시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