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논쟁이 뜨겁습니다. 만약 '클릭'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으로 측정하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있다면 영리병원이 1위에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영리병원 논쟁에 불을 붙인 건 중앙일보입니다. 중앙일보가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1면과 4~5면에서 쏟아낸 영리병원 기사만 무려 16건에 달합니다. 이런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영리병원 허용에 중앙일보가 굉장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깁니다.

미리 약속한 것인지, 아니면 기사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앙일보 보도 이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영리병원 도입을 슬그머니 언급합니다. 그 뒤는 일사천리입니다. 며칠사이에 정부와 청와대가 영리병원 법안을 8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옵니다.

영리병원 도입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송도에 삼성이 뜨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인천시는 지난달 22일 송도 국제병원의 재무적 투자자로 삼성증권과 삼성물산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컨소시엄을 선정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바이오제약 산업과 연구개발 시설에 투자하는 돈만 2조1000억 원입니다. 삼성이 영리병원에 굉장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깁니다. 일각에서는 삼성과 중앙일보의 특수한 관계를 들어 짬짜미를 한 것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에이, 아무렴 기업과 언론의 유착이 심한 시대라고 해도 설마 그럴 리가요.

여튼, 영리병원 도입을 촉구하는 쪽에서는 의료선진화를 말합니다.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의료관광이 확대되고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일부 이를 밑받침하는 데이터도 나와 있습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의료 양극화를 걱정합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로 민간보험이 확대되고 결국 대기업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영리병원과 계약을 맺은 민간보험이 아니면 보험적용이 안 돼 환자가 고액의 치료비를 물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래서 반대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부자는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가난한 사람은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 이상호 MBC 기자의 트위터에는 영리병원 도입을 먼저 시행한 나라들의 피해사례 제보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솔직히 어떤 쪽의 주장이 옳은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보다 먼저 영리병원을 도입한 국가들을 통해 미래를 전망해볼 수는 있겠지요. 이런 사례는 조금만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특히 미국에 체류 중인 이상호 MBC기자의 트위터(@leesanghoC)는 꼭 한번 검색해 보기를 권합니다. 이 기자는 영리병원 도입 반대론자인데, 그의 개인 트위터에는 영리병원을 체험한 개인들의 제보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서 의사하고 있는 친구 지난달 건강검진(내시경)하러 한국에 왔다. 대학병원 의사수입으로도 보험료 내기 부담스러워 보험을 축소했더니 개인부담이 너무 커서…동료의사가 그냥 해줄 수도 없다더군요(@alx82300).

미국에서 공부할 때 캐나다인 친구가 있었는데, 실습하다 칼에 손을 베여서(좀 심하게 베였나 봄) 다치자 캐나다로 귀국해 버리더군요. 비행기 표와 각종 비용을 고려해도 그게 훨씬 싸다고(@geminiee).

울 남편 미국인인데 한국의료보험체계와 지하철은 세계에서 최고라 했었는데 미국인은 병원 감히 못 간다고…이제 울 나라도 바뀔지 몰라 그랬더니 흥분의 도가니탕이었음. 캐나다로 가야하나. 애들 아프면 응급실로 수시로 뛰어 갔는데(@khrealist).

저희 강원FC선수도 터키 전지훈련 중 맹장이 터져 수술을 했는데요. 당연히 보험이 안됐죠. 그랬더니 수술비만 천만 원…. 맹장수술 할 돈 없어 버티다 죽는 사람 생기는..그런 나라 돼선 안 됩니다(@myhelenadream).

CT 두 번 찍고, X-Ray도 두 번 찍고, 손목 뼈 금간 거 수술 살짝 해 주셨는데, 일단 수술비만 $20,000 나와 주셨음. 나머지는 얼마나 나올지…(@kinstory).

그렇슴다. 단지 보험만 문제됩니다. 병원가면 첫마디가 너 보험 있냐, 어디꺼냐 묻고 자기병원서 취급안하는 보험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살벌합니다ㅜㅜ(@jalnanLiz).

저희 어머니도 오진 상담 받고 응급실 하루계셨는데 만삼천불 나왔습니다(@underklim).

울 아들 초음파 하고 보험으로 90만원 가까이 냈구요. 보험없이 응급실 한번가면 기본이 3-4백만원, 그래서 응급실 웬만하면 안가려고 해요, 중환자실 입원하면 기본 병실료만 하루 300만원 가까이 되구요(@jinnytwins).

제 동생네가 4년전 안식년으로 미국가서 1년 살다왔는데 운동하다 2cm정도 찢어져서 꿰맸는데 치료비가 우리 돈 400만원 정도였답니다. 의료민영화? 돈 없음 죽으라는 거죠(@COOCOstyle).

체험사례는 아니지만 "아프면 병원 갈 수 있는 권리도 이제 권리가 아닌 세상이 오려나 봅니다.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조차도 전적으로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그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야만적입니다"라는 글도 보입니다. 또, 교통사고를 당한 모자가 병원에 실려왔지만 돈이 없어 응급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필리핀의 실제 사례를 다룬 카툰도 올라와 있는데, 아주 참혹합니다. 의료민영화의 실체를 더 알고 싶다면 현직의사가 만든 다큐멘터리 <하얀 얼굴>과 몇 해 전 한국에 소개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를 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 돈(민간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응급치료를 받지 못하는 필리핀의 현실을 고발한 양영순 작가의 카툰도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영리병원이 도입되고 의료민영화가 된다고 정말 이렇게까지 될까라는 의구심도 듭니다. 하지만 먼저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의 현실이 이렇다니 돈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21일 라디오에 나와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면 된다고 하면서도 의료양극화 우려가 일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찬반양론이 팽팽한 사안의 경우 물꼬를 바꿔놓는 것은 항상 여론입니다. 결국 국민적인 관심과 언론의 감시가 절대적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삼성의 투자참여, 중앙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지원사격, 정부의 8월 국회 통과설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시간이 얼마 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 사안도 단순명료합니다. 의료관광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경제성장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몸이 아플 때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는 보통의 권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