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대표실 도청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KBS 내부에서 KBS 구성원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설문조사에 들어가자 KBS 경영진이 ‘사규위반’ ‘해사행위’ 등을 들어 조사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구성원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도청의혹 사건과 관련한 경영진의 실책과 과오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KBS 새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 20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조합원 1100명을 대상으로 사내통신망(KOBIS) 내의 여론조사 시스템을 활용해 <긴급 설문조사, 도청의혹 그리고 KBS>라는 제목의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21일 오후 5시 현재까지 모두 400명 정도의 설문조사 참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당대표실을 수사하고 있는 영등포경찰서가 민주당사에 나가 방문조사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KBS 새노조가 실시에 들어간 설문에서 △이른바 ‘도청 사건’에 KBS가 연루됐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를 한 적은 없다’, ‘제 3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등의 KBS 입장을 신뢰하는지 △김인규 KBS 사장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또한 △‘언론자유 수호와 취재원 보호라는 언론의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 제 3자의 신원과 역할을 더 이상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KBS 입장에 대해 외부에서는 ‘언론자유나 취재원 보호와 무관하니 제 3자의 신원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어떤 의견인지 △경찰 수사가 도청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인지 △KBS 내부에 경영진과 이사회, 노조를 망라한 전사적인 ‘진상조사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문항에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이번 도청 의혹이 불거진 근본적인 원인을 물었다. 선택지에는 ‘KBS 경영진의 무리한 수신료 인상 추진’, ‘KBS 정치부의 잘못된 취재 관행’, ‘민주당의 수신료 합의 파기’, ‘KBS에 대한 정치적 음해’ 등이 주어졌다.

이 같은 설문조사 실시에 대해 KBS는 21일 회사 입장을 내어 즉각 중지하지 않으면 공사 명예훼손 등 해사행위로 보고 ‘취업규칙’에 따라 강력 조치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전경
 
KBS는 사내통신망에 띄운 글에서 “회사는 현재 진행중인 경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그 결과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설문조사 실시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설문조사가 경찰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자칫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KBS는 “KBS에 비판적인 외부세력에게 소재로써 활용될 여지가 매우 크다는 것이 회사의 판단”이라며 “설문조사를 향후 계속 진행하거나, 조사결과를 공표하는 행위를 해 공사의 명예와 이미지 훼손 등 해사행위를 할 경우 ‘취업규칙’ 등에 의거 강력히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두고 ‘사내 여론조사도 못하게 막으려느냐’, ‘언로조차 통제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S 새 노조는 KBS의 입장에 반박문을 다시 사내통신망에 띄워 “사규에 우선하는 단협의 ‘조합활동의 자주성·독립성 보장’ 의무를 무시한 채 사측이 ‘당장 중지하라, 취업규칙(사규)에 따라 조치한다’고 밝힌 것은 단협을 정면 부정하는 행위”라며 “나아가 관계 법령을 위반하는 불법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새 노조는 “또한 보도본부를 비롯한 사측의 일부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설문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KBS본부 조합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는 조합의 자주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므로, 즉각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 당사자와 경영 책임자인 김인규 사장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 노조는 이 같은 설문조사 실시에 대해 “‘도청 의혹’은 한 달이 지났는데도 파문이 점점 확산되는 양상을 띠고 있고, 외부에서는 KBS를 ‘사익을 위해 도청을 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사태에 이르렀다”며 “하지만 사측은 모호한 입장만 밝혔을 뿐 적극적인 해명과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사태를 키우는 등 오히려 사측히 ‘공사의 명예와 이미지 훼손 등 해사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새 노조는 경영진이 지금까지 진행했던 ‘도청 의혹 관련 대응’에 대한 평가와 언론사로서의 KBS의 명예와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KBS가 설문조사를 막으려는 행위에 대해 “‘공사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경영진의 실책과 과오’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설문조사를 막을 방법을 고민하지 말고 ‘전사적인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해 KBS의 조직과 명예를 지키는 길에 함께 하기를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21일 오후 “새노조의 반박문은 말이 안된다”며 “회사 공문이 노조활동을 방해한 것이 없지 않느냐. 다만, 설문조사 자체가 가져올 논란과 오해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 실장은 “무엇보다 설문조사의 목적과 의도가 순수하지 않고, 한쪽으로 경도된 설문조사이므로 정당성도 없다”며 “왜 이시기에 설문조사를 하려는지 그 저의가 이해가지 않는다. 수사결과를 기다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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