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병영통제적 노무관리와 문민정부의 원시적 노동정책에 맞서 노동자들의 분신 자살이 잇따르고 있으나 언론의 철저한 외면으로 열악한 노동조건들이 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일 낮 12시20분 대우조선 생산1부에 근무하는 노동자 박삼훈씨가 자신이 일하던 사업장 옥상에서 유서를 뿌리며 분신 투신하여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40여분만에 숨진 사태가 일어났다. 이는 현대그룹의 노동운동 탄압에 항의하여 분신한 노동자 양봉수씨가 숨진지 불과 일주일만에 재벌그룹의 노동자가 또 자신의 몸을 살랐다는 점에서 비극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의 무분별한 난입으로 노동계와 종교계가 그 어느 때보다 문민정부의 반노동자적 정책에 분노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삼훈씨의 분신자살은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킬 사안이다. 뿐만 아니라 분신한 박씨는 회사의 노동운동 탄압에 분명한 항의의 뜻을 밝히고 있지않은가.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22일자 신문보도를 보자.

대부분의 신문들이 1단기사로 눈에 띄지않게 보도하고 있다. 가령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제2사회면 구석 2단이나 제3사회면 막단에 1단으로 짤막하게 처리했다. 왜 그가 분신했는지 자세한 설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한겨레신문도 현지에 내려간 신문에는 1단으로 처리되었으며 그나마 기사 마지막 부분에는 박씨가 “평조합원일뿐 노조활동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신문은 경찰의 분석이라며 박씨의 사생활 문란 문제를 보도하는가 하면 ‘가정문제’로 자살했을 가능성을 기사화했다. 다음날 23일자 신문들에서 박씨의 분신 관련 후속기사를 그 어느 신문 지면에서도 발견할수 없었던 것은 논외로 치자. 다만 여기서 1남1녀의 가장이며 산재 다발지역인 조선소에서 15년동안 젊음을 바친 40대 노동자 박삼훈씨가 투신현장에서 뿌린 유서를 읽어보자.

“이 놈의 세상, 가진자만이 판치는 세상. 우리 근로자는 작은 월급으로 늘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노동자여!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툭하면 집회 참석도 못하게 하고 우리 권리를 우리가 찾아야지 그 누가 찾습니까. 노동자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사용자여 각성하라 .(중략)”

40대 노동자가 몸을 사르며 자살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는 ‘사생활 문제’가 전혀 없으며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만을 촉구하고 있다. 평소 조합활동에 관심이 없었다거나 가정문제가 복잡했다거나 따위의 문제를 보도하는 언론의 의도가 새삼 의문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현대중공업 노사쟁점의 타결을 마치 ‘강성노조’의 퇴조로만 해석하는 보도태도와도 맥을 같이한다. 사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유연한 정책으로 요구사항의 대부분을 얻어내 큰 실익을 거두었는데도 일부 언론은 마치 노조가 일방적으로 ‘굴복’한 듯 보도했다. 대우그룹이 직·반장등 관리라인을 총동원, 감시와 협박을 일삼으면서 노조가 주최하는 집회참가조차 가로막아 살인적 노조탄압 행태를 보였다는 노조 입장을 보도한 언론은 아무곳도 없었다.

얼마나 억압받고 자신의 심정이 답답했으면 자살이라는 극약처방을 했을까 돌이켜볼때 그럼에도 그의 처절한 외침마저 우리 언론이 철저히 묵살한 것은 누가 뭐래도 변명할 길이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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