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선거의 결과가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은 가히 혁명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파장은 기존 정치집단 내의 구태의연한 이합집산, 권력구조의 변화등 당장 예측가능한 정치현상의 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자제 선거 결과, 이제 한국의 정치지형은 지각변동이라 할 정도로 입체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직업정치인의 엄청난 증가에 따른 정치에너지의 획기적 증대,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권력관계와 정치적 종속관계 등 새로운 차원에서 정치를 접근해야 하는 토대가 광범위하게 마련됐다.

직선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의 수가 수천명에 달하게 됐고 이들은 재선을 위해서도 소속정당의 정치지도자뿐 아니라 국민들의 여과없는 목소리에도 직접 귀를 귀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지방 정치지도자들의 행보는 과거처럼 소수의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전적으로 정치생명이 좌우되지 않는 새로운 면모를 보일 것이다. 또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의 중앙집중성을 완화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6·27 선거 이후 예상되는 정치지형의 변화와 이에 따른 정계개편이 소수 정치지도자들의 정략적 의도에 좌우돼선 안되고 좌우될 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모처럼 국민들이 제공해준 정치발전의 귀중한 기회를 정치권 스스로 박차는,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6·27 선거는 외견상 민자당의 참담한 패배, 민주당·자민련의 승리로 끝났다. 본거지에서조차 힘겨운 싸움을 했고 경기·인천에서 야당의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로 겨우 당선된 민자당으로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이나 자민련 역시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정책, 인물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깨달아야 한다. 반민자, 반문민독재의 목소리가 워낙 컸고 그들 외에 따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국민은 68.3%라는 저조한 투표율이 말해주듯 아예 현 정치판에 대한 기대를 포기까지 했다.

한 여론조사는 지역감정이 투표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30%정도로 본다는 결과를 내고 있다. 부산에서 DJ역풍을 안고도 36%의 득표를 한 노무현 후보, 전북의 황색돌풍 속에서도 30% 이상을 득표한 강현욱 후보, 경북에서의 민주당 시장 탄생 등에서 우리 정치의 희망을 본다. 어느 때보다 지역감정을 강요한 정치지도자들의 요구에 대해 유권자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이런 정서는 우리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적 선택을 갈구하고 있다는 또하나의 반증이다. 71년 대선이후 4반세기에 걸친 정치의 지역구도가 이제는 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비평가의 구호로서가 아니라 국민대중의 밑으로부터 실제로 솟구쳐 올라오고 있는 조짐이 분명히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아니 수치스럽게도 작금의 신문·방송 등 언론은 6·27 선거 결과의 행간을 읽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 정권이 희망없는 정권임을 투표로 표현했음에도, 지역할거주의가 깨지는 소리가 분명히 들려오고 있는데도 언론은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3김을 중심으로 한 정치게임을 조장하며 즐기고, 스테레오 타입화한 구태의연한 상업적 정치기사를 양산해내는데 급급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언론은 한국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장애요소다. 그러나 혐오스런 언론과 정치세력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이제 저 밑바닥으로부터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이 에너지를 실체화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국민들은 목말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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