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만 하루 177mm의 비가 쏟아지던 지난달 29일, 이충재(51) 한국일보 편집국장은 어김없이 아침 6시40분에 회사에 도착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40분 동안 서울 돈암동 집 주변을 뛰고 주요 신문을 살펴본다. 아침은 과일로 간단히 해결하고 6시20분에 집을 나선다.

남대문로에 있는 회사까지는 20분이면 족하다. 한진빌딩 본관 16층에 있는 편집국장실에 아침신문이 도착하는 것은 오전 7시. 그때부터 그는 9시 국실장급 회의 전까지 본격적으로 아침신문을 정독한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나 KBS 도청 의혹 둘 중 하나는 더 키웠어야 했는데…. 우리는 한 면에 다 우겨넣어서 좀 그러네. 이따가 (기사를 키우자고 제안하지 않은) 정치부장 쪼아야겠네요(웃음)." 

7시30분이 되니 그의 스마트폰에 신문 강판 보고 문자메시지가 들어온다. 전날 저녁부터 그날 새벽까지 예정된 강판 시각에 얼마나 늦었는지 보고받는 것이다. 많이 늦을 경우 마감과 조판을 제시간에 맞추자고 재촉해야 한다. 아침신문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는 그에게 석간 포함 9개 신문의 평가를 부탁했다.

9개 신문 각각의 평 들어보니…

 

   
오전 7시쯤 편집국에 도착한 각 일간지 뭉치에서 손수 한 부씩을 골라 정독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A신문은 이념은 너무 편향돼있지만 콘텐츠와 기사 다루는 법, 지면 구성은 매우 탁월해요.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제일 낫죠. B신문은 A신문과 차별화하려고 연성으로 가는 게 너무 무리한 경향이 있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눈길을 잡아끄는 게 있긴 하지만, 과연 그 게 신문이 갈 길인가 하는 데 있어서는 회의적이죠. C신문은 엉성하고 우악스럽다는 느낌이에요. 세련되지 않았다고 할까, 과거 명성만 갖고 사는 것 같아요.

D신문은 비판성도 있고 콘텐츠도 다르고 나름대로 배울 게 있는 신문입니다. A신문과 D신문을 섞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신문은 2008년 촛불집회 때 지명도를 높였죠. 비판적, 그리고 이념적 지향도 D와는 좀 다르게 잡았고요. 그런데 일반 정서보다 너무 나가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F신문은 아무리 행정중심의 신문이라지만 관변일색의 인터뷰는 오히려 신문을 죽이는 길입니다. G신문과 H신문은 종교재단이라…. H신문은 과거 기획취재에서 배울 게 참 많다고 생각했는데 근래에는 그런 게 없네요. I신문은 보수색채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일보는 어떤 신문이고, 앞으로 어떻게 만들 생각일까. 마침 이날 한국일보 백면(back면·마지막 광고면)에는 김경문 전 두산베어스 감독을 지지하는 팬들의 의견광고가 실렸다.

"김 기자, 프로야구 좋아해요? 어디? 아, 그 팀도 좋지. 난 두산과 롯데를 좋아해요. 공격적인 야구, 선이 굵은 야구가 좋죠. 신문도 그래요. 난 (편집국장 임명동의) 청문회 때 '힘 있는 신문을 만들자'고 했어요. 단독기사를 많이 쓰자고요. 지금은 침체된 편집국 분위기를 바꿔놓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87년에 입사했는데, 당시 한국일보를 떨어지면 B신문을 갔어요. 그때 B신문 간 친구들이 저더러 '좋은 신문 다닌다'고 했는데, 아 이거 요즘에는 자존심이 상해서…(웃음).

지금 우리 신문 위상이 굉장히 쳐졌다는 평가입니다. 색깔이 없다고들 해요. 우리는 '적극적 중도'나 '개혁적 중도'라고 주장해왔지만, '기계적 중립'이나 '눈치 보는 중립'이 아니었는지 반성해봅니다. 힘 있는 신문, 비판적인 신문을 만들 겁니다. 난 1년 후에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했고, 1년 전이라도 신문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편집국장을 그만 둘 겁니다.

그러려면 혁명에 가까운 개혁이 필요해요. 피와 눈물과 땀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조금 더 일찍 출근하고 조금 더 늦게 퇴근하고 조금 더 취재하고 조금 더 고민해야 합니다."

"국제부, 미 의회 FTA는? 그리스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신문을 보며 기자와 대화를 나누기 두 시간여, 9시가 됐다. 그 사이 각부 부장들은 출근해 아침 회의를 준비한다. 전에는 보고식이었다면 지금은 토론식이어서 타 부서 발제까지 숙지하고 들어와야 한다는 게 이 국장의 설명이다.

 

   
이 국장의 하루는 9번에 걸친 회의의 연속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전 부장회의에서 각 부의 보고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이 국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10시30분, 국장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회의실에 국장과 부국장 2명,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산업 사진 스포츠 편집 여론독자 각부 부장까지 13명이 모였다. 이 국장 자리 건너편 스크린에는 집배신 시스템 화면이 크게 올라왔다.

"자, 마감시간 1시간 더 당겨보자. 견습기자 채용 사고는 (7월)4일자로 나갈 수 있나? 오늘 2시 반 지면 개편회의에는 하나씩 띄워놓고 빨리 진행하자. 오늘 지면을 보면 전대랑 도청을 소홀히 한 게 아닌가 싶다. (밤) 9시 반 회의 이유가 30판 보고 제목 좀 고치고 적당히 손질하자는 게 아니잖아. 기존에 들어있는 것도 차분히 보면서 키울 것은 키우자는 것인데….

41판도 적극적으로 바꾸도록 하자. A신문은 매판 적극적으로 바꾼다잖아. 그리고 최성국이는 왜 물먹었어?(이날 조선일보는 1면에서 프로축구 수원삼성 소속 최성국 선수가 지난해 상무 선수 시절 승부조작 사전모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며 28일 창원지검에 자진 출두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창원에 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김상철 사회부장)

"가계 부채 대책은 어때. 오늘 발표되나?"

"아직 모릅니다. 우리 지난번 1면 톱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고재학 경제부장)

"그렇게 크게 쓸 건 아니라는 거지?"

"네. 그리고 우리금융지주 매각 현 정부에서는 물 건너갔습니다. 사모펀드만 응찰했거든요. 이것도 하나 내지 둘은 쓸 수 있을 듯합니다."(고재학 부장)

"대형 유통업체 판매수수료 수준 공개는 대기업 횡포야?"

"백화점이 30% 가져간다는 건데, 그동안 공개하지 않아왔다가 공정위가 조사해서 처음 공개하는 겁니다."(고재학 부장)

"홍만표 대검 기조부장은 왜 그만둔대?"

"좀 더 알아봐야 하지만 수사권 조정에 대한 반발인 듯합니다. 하나 써줄만 합니다."(김상철 부장)

"전대, 도청, 문방위 어떤 게 좋나?"

"업계로 보면 미디어렙이 더 문젭니다. 종편이 하반기부터 영업을 뛸 건데 막을 방법이 없어요."(이희정 문화부장)

"시장에 엄청난 혼란이 올 텐데, 이게 더 문제네. 도청은?"

"수사가 지지부진한데요. 아무래도 인니 특사단 침입처럼 대충 뭉개고 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김상철 부장)

"국제부, 미 의회 FTA는? 그리스는?"

"그리스는 오늘 밤이나…."(박광희 국제부장)

"앞에 나와야지? 우리 6시면 유럽 9시잖아. 산업부는 뭐 없나?"

"삼성 내수 살리기, OOO그룹 고등훈련기 해외 이전사업 응찰 있습니다."(산업부 기자)

"엔진을 만든다는 거야, 기체를 만든다는 거야. 훈련장 만든다는 거야?"(황상진 부국장)

"얘기가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됩니다, 돼요. 이거 쓰면 OOO가 깜짝 놀란다니까요."(산업부 기자) 

"왜관철교 오늘 우리 사회면 단독(<'호국의 다리' 설계 고쳐 보강범위 축소했다>)인데, 후속기사 있습니다. 앞에 써도 됩니다."(김상철 부장)

"가계 부채는?"

"중요하니까 앞으로 나가야죠."(고재학 부장)

"설문은?"

"다른 거 1면 나가면 굳이 안 나가도 됩니다."(김광덕 정치부장)

"OOO는?"

"중요합니다. 중요해요."(산업부 기자)

"그러니까 약을 제대로 팔란 말이야(웃음). 일단 되면 2면 톱으로. 그럼 2면 OOO, 왜관철교. 3면은 뭐가 제일 핫(hot) 해? 그리스? 미디어렙이랑 도청 묶어서 갈까?"

"그거 괜찮은데요."(고재학 부장)

"동반성장은?"

"그거 전에 쓴 제목 이상 안 나와요."(고재학 부장)

"그럼 문방위+미디어렙+도청 이렇게 가자. 4면은? 가계 부채는 6면으로 가고. 전대는 5면? 6면? 그래 5면. 우리금융은 어디? 7면 종합으로 해서 가고. 뾰로로도 한 줄 써줘야지?"

"뾰로로가 아니라 뽀로론데요"라는 한 부장의 말을 끝으로 30분간의 회의가 끝났다. 아침 회의에는 다음날 지면의 50%만 정한다.

이 국장의 다음 일정은 임철순 주필과 박진열 사장을 만나는 것이다. 임 주필과 9층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박 사장이 외부 일정으로 사무실을 비웠다. 지면계획과 사설·칼럼 계획을 서로 나눈 뒤, 사장실에 메모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9층 박진열 사장실에서 3인 회의를 하기 위해 임철순 주필(왼쪽)과 함께 가는 이 국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기자들이 먼저 정신차리자"

미디어오늘 취재진과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회사 근처의 한 설렁탕집. 그는 밥 먹으러 와서도 회사 얘기다. 

"우리가 최고로 빚이 많았을 때 4500억 원까지 있어봤습니다. 내가 후배들한테 그랬어요. '언제까지 경영진 탓만 하며 기자들은 일을 않고 수수방관만 할 것이냐. 우리 스스로 신문을 낫게 만들면 경영진도 정신을 차리지 않겠냐. 기자도 경영진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지만 기자들이 먼저 정신을 차리자'고요."

이 국장이 청문회에 올랐을 때 기자들 사이에서는 '국장 때문에 월급 안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장대비를 뚫고 도착한 단골집에서 설렁탕을 먹으면서도 이 국장의 대화주제는 '더 나은 한국일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신문이 비즈니스에 매달리면서 무조건 저자세로 가는 것은 신문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기업과 언론이 서로의 선을 지키자는 것이죠. 사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입니다. 소비자를 생각하고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리고 난 노무현 정권 때 기자실 폐쇄 필요했다고 봅니다. 신문들이 전부 자사이기주의에 빠져서 문제였잖아요."

그는 식사 시작 시간이 늦어도 1시까지는 국장실로 되돌아와야 한다. 2시10분 회의 전까지 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2시10분이 되자 오전 10시30분처럼 편집국에 회의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린다. 오전 회의의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 부장이 외부에 나간 부서는 차장이 대신 자리했다.

"재벌들은 국회에 안 나와도 되느냐 그렇게 써도 됩니다."(김광덕 부장)

"그래. 국사교과서 개편 논란도 써야겠다. 2면 톱은 뭐 없나? 그건 재미없는데. 삼성 1000억 원 푼다?"

"해외 가지 마라 그게 '야마'('주제'를 뜻하는 일본식 은어) 아냐?"(황상진 부국장)

"아니요. 내수 진작인데…."(이성철 산업부장) 

"여론을 중시해. 그리고 3면 미디어렙이랑 6면 금감원 개혁이랑 바꿔."

"물난리로 사회면 톱을 가죠."(김상철 부장)

"그래. 사진만 1면에 가고. 은인표 로비 의혹 후속 가자. 자, 됐고. 지면개편 띄워봐. 30분 안에 마무리 짓자고. 대략 2∼3주 후에는 하는 걸로 하자." 

이 국장은 편집부장 포함 각 부서 부장들이 내놓은 지면개편안을 꼼꼼히 살폈다. 제호 스타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여러 시안을 손에 들고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3시10분. 장재구 회장과 단독 면담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회사 상황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부장단 회의를 마친 후 편집국 각 부서를 돌며 마감진행상황 살피는 이 국장이 고재학 경제부장의 자리를 찾아 의견을 나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3시40분 국장실에 복귀한 뒤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이상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4시. 편집국 한 가운데 테이블에 그날 치 사진을 100여장 펼쳐놓고 1면에 들어갈 사진 1장을 고른다. 사진부장과 편집부장, 편집기자들이 함께 한다. 1면 사진은 폭우로 인한 서울 월계동 산사태 사진이 낙점됐다.

다시 국장실로 돌아온 그는 한국일보가 준비한 시리즈 기획물을 미리 보여준다. '우리 시대 고졸'이란 기획을 경제부와 사회부에 주문해, 7월 4일부터 5회 분량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4시15분. 그제야 자리에 앉아 집배신 시스템에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기 시작한다. 부장들이 본 기사를 다시 보면서 부족한 점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5시30분. 국장실을 찾은 김상철 사회부장이 "여기 하루 종일 점거하는 건가"라며 취재진에 '농'을 건다. 김 부장은 "홍만표 이후에 2∼3명이 더 그만둬서 그걸 묶어서 써야되겠습니다"라고 이 국장에게 보고했다. 5시50분. 배계규 화백이 만평을 들고 국장실을 찾았다. 30초 만에 O.K 사인이 났다.

세 번째 편집회의…"1면 톱은?"

6시. 10시30분, 2시10분에 이어 세 번째 편집회의다. '10판 제작 현황'이라는 창이 회의실에 떴다.

"검찰 분위기는 어때?"

"시위하는 건데, 안에 조지는 박스 하나 써야 되지 않을까요."(김상철 부장)

"1면 톱은?"

"은인표가 임OO, 이OO 등 접촉 안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주로 불교 신자들인데."(김상철 부장)

"전방위 접촉?"

"네, 네."(김상철 부장)

"2면에 기사 4∼5매 비는데, 그리스 쓸까? 삼성은 왜 이렇게 짧아?"

15분 만에 회의는 끝나고, 부장들은 마감을 독려하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7시15분부터는 국민일보, 서울신문 등 타사 가판(초판)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이 국장은 저녁을 먹지 않고, 집에서 싸온 고구마로 때웠다.

8시30분. 네 번째 편집회의다. 이제는 스크린에 지면이 뜨면서 일찍 마감된 기사들은 다 제자리를 찾은 상태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기사 자리만 하얗게 비어있다. 그런데 판을 흔들어야 되는 상황이다.

"검사 4명이 더 구두로 사의 표명했습니다."(김상철 부장)

"합이 9야? 정말 큰일이다, 큰일. 그거 41판에 톱으로 가고. 3면도 바꿀 거야."

 

   
마감중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편집국원들과 개별적인 면담을 진행중이다. 문화부 박선영 기자와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는 이 국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7면 기사가 스크린에 뜨자 회의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자들이 회의실 문 바깥에 붙어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엿듣는 취재방법을 가리키는 '벽치기' 표현 때문이었다.

"벽치기가 뭐야, 벽치기가." "벽치기는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용언데…." "에이, 기자가 들어도 저속하게 들리는데 일반인이 들으면 뭐라 생각하겠어."

이윽고 저녁 9시.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를 번갈아가면서 체크한다. 그 사이에도 집배신 시스템은 계속 살피고 있다. 10시12분. 박광희 국제부장이 "그리스 긴축안이 통과됐다"고 보고한다. 밤 11시가 다가오는데 부장들은 하나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사이를 이 국장이 누빈다. 전에는 9시만 넘으면 슬며시 자리를 뜨는 부장들이 있었다고 한다.

"집에 가지 말라고 안했어요. 부장들이 뒷골이 당겨서 자리를 못 뜨는 거죠(웃음). 부장들과 첫 회의 때 '우린 프로다. 능력 대 능력으로 붙어보자'고 했을 뿐입니다. A신문은 12시까지 부장들 다 남아있다고 하잖아요.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기자는 "그 행군이 너무 깁니다"라고 답했다.

11시가 넘자 이 국장은 회사에서 내준 차량의 기사에게 "내려갑니다"라고 전화했다. 새벽 2시까지는 야간당직 국장이 책임진다. 11시10분 취재진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간 그는 내일 6시40분이면 회사에 나와 같은 하루를 반복할 것이다. 강한 한국일보로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충재 편집국장은…

 

   
한국일보 이충재 편집국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충재원년(서기 2002년 9월 15일). 사회국 좌장으로 명성을 떨치시던 충재폐하께서 이날 국경 왼쪽을 한눈에 갈음하시매 자리도 넓고 피씨도 많은지라. … 난신적자들을 깨부수고 나라를 여시니 사회2국이라 하였다.

… 폐하께서 친정을 하신 후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성대라. 폐하의 은덕을 기리지 않은 자가 없었다. 허나 백성을 사랑하는 폐하의 깊은 뜻이 용안을 상하게 했으니. 어느 날 진시(辰時·아침 7시)에 폐하께서 홀로 궁에 좌정하사 전화기를 들어 문무백관을 찾더라. 음주가무에 취한 조정의 백관들이 황망히 휴대폰에 예를 갖추더라.

'XXX아, 자냐! 짐은 기사가 없어서 잠을 못 이루오. XXX. 공은 몇 시간이나 자는고. 에이, XXX 짐은 4시간 자느니라. 기사 좀 찾아라. 공은 머리에 X만 찬 모양이구려.'(딸까닥) 모든 신하가 X개 꼬리 감추듯 '망극하여이다', '소인을 죽여주시오소서'만 읊조리더라." (고찬유 한국일보 기자 블로그 http://blog.hankooki.com/jutdae <사회2국 500일> 발췌) 

2002년 이충재 사회2부장 휘하에 있던 최모 기자는 지난달 29일 그에 대해 "잠도 안자고 로봇처럼 일만 하는 사이보그"라고 평했다. 최 기자는 "국장은 매주 토요일 아침 북한산 등산 때도 국제부장이랑 신문 얘기만 하고, 일요일 아침 교회 가서도 회사 잘 되라는 기도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위터 아이디 @h871682도 자신의 사번에서 따올 정도다. 

이런 그에게 2011년 6월 15일 편집국원들은 임명동의투표에서 95%가 넘는 지지를 보냈다. '창사 이래 가장 힘이 강한 편집국장'이라는 평가 속에 9년 만에 진정한 '충재원년'이 열린 것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그는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부국장 등을 지냈다.

사회부 베테랑으로 40여 차례 특종상을 탔고, 회사의 가장 큰 상인 백상대상도 수상했다.'힘 있는 신문'을 강조하는 그는 "후배들이 나의 힘이요 무기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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