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표실 도청 의혹이다. 사안의 휘발성이 간단치 않다. 경찰 수사 결과, ‘도청’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언유착’의 위험한 뒷거래가 폭로될 경우 파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번질 수 있다. 누군가는 떨고 있을지 모른다. 대충 덮어지기를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은 사건의 실체이다. / 편집자주

방송전문가인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왜 ‘녹취록 문건’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자리에서 공개했을까. 국회 본청의 손학규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을 둘러싼 ‘중요한 의문’의 시작이다.

▷문제의 그날 6월 24일 문방위 회의장=결과만 본다면 한선교 의원은 KBS 수신료 인상 저지의 ‘일등공신’이다. 아이러니한 결과이다. 한선교 의원 본인과 한나라당 문방위원, KBS 쪽에서 그토록 원했던 6월 국회 KBS 수신료 인상은 결국 무산됐다. 갈팡질팡했던 민주당이 완강한 반대 입장으로 정리했지만, 한선교 의원의 ‘녹취록 문건’ 폭로가 정치 흐름을 180도 뒤바꾼 결과이다. 다시 6월 24일 오전 10시 25분께로 돌아가 보자.

   
민주당 김진표 최고위원이 지난달 26일 오전 최근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의 민주당 최고위 도청논란과 관련해 박희태 국회의장을 방문해 불법설치물 확인 등을 요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방위 전체회의는 10시 20분 시작됐다. 전재희 국회 문방위원장의 회의 개의 발언과 김재윤 민주당 간사 발언 뒤를 이어 한선교 의원이 10시 25분께부터 발언했다. 한 의원은 발언 전부터 ‘의문의 문건’을 손에 쥐고 있었다. 녹취록 문건 폭로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선교 의원은 “이것은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이라며 “이것이(녹취록이) 거짓이라면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했다. 한 의원은 이 다짐이 엄청난 후폭풍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을 알았을까.

한선교 의원은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후 20년가량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방송전문가이다. 누군가 대화한 내용을 손으로 옮겨 적은 문건과 있는 그대로 녹음한 ‘녹음파일’  문건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은 한선교 의원이 6월 24일 10시 25분께 ‘의문의 문건(녹취록 문건)’을 손에 쥐고 흔들며 얘기를 꺼낸 순간 도청 파문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한선교 의원이 중대한 실수를 했거나 고도의 정치노림수를 통해 KBS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쪽에 타격을 줬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선교 의원의 행보를 종합해본다면 후자보다는 전자에 무게가 실린다.

▷동아일보, 도청 의혹 쟁점화=한선교 의원은 이번 사건을 풀어줄 핵심 인물이다. 누가 왜 어떤 이유로 녹취록 문건을 전달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집권 여당의 언론정책 주무 상임위원회 간사와 특정 언론의 ‘정언유착’, 그 위험한 뒷거래를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선교 의원은 여론전에서 처음부터 밀렸다. 한선교 의원은 민주당 쪽에 도청 증거를 대라면서 압박했지만, 주요 신문은 “한선교 의원이 어떻게 녹취록을 입수했는지 밝히는 게 순서”라고 반박했다. 동아일보는 6월 27일자 지면에 ‘한선교 문건’을 입수했다면서 “거의 녹음파일을 풀어놓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동아는 6월 29일자 1면에 <민주·여권관계자 “한선교 문건, KBS측이 작성”>이라는 기사를 통해 ‘KBS’를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KBS 수신료에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 중 하나인 KBS가 ‘도청 의혹’의 핵심 관계자로 공론화된 장면이었다. 동아는 물론 여러 언론들이 ‘KBS’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사건에 언론이 개입했다면 이는 엄청난 후폭풍을 예고하는 사건이다. KBS의 명쾌하고도 분명한 해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한선교 의원의 해명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한선교 의원은 녹취록이 민주당 쪽에서 나온 자료를 토대로 만든 자료라는 입장이지만, 경찰 수사 결과 민주당 쪽에서 나온 자료가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인규 KBS 사장이 언급했다는 ‘벽치기(귀대기)’, 즉 회의장 문에 귀를 대고 회의 내용을 엿듣는 방법 역시 경찰 수사 결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서울시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한 결과 귀대기 취재는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언론에 밝혔다. 경찰은 지난 3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을 방문해 ‘실황조사’를 벌였고 이러한 결론을 도출했다.

동아일보는 7월 5일자 10면에 <경찰 “외부인이 민주당 대표실 도청” 결론>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가 보도한 외부인은 누구일까.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외부인(민주당 쪽이 아닌 사람들)은 언론인 등 극히 일부이다.

▷정언유착 의혹 실체 밝혀야=한선교 의원의 야당 비공개 전략회의 내용 공개가 결국 언론 쪽에서 제공한 자료라면 ‘정언유착’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정언유착이 벌어졌다면 그 배경, 위험한 뒷거래 여부도 관심의 초점이다.

한나라당의 ‘KBS 수신료’ 논의와 관련해 야당 쪽에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지도부 기류와 문방위원들의 기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국회 처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신중론이라면 문방위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6월에 처리를 해야 한다면서 지도부를 압박했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방위원들이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주목할 대목은 19대 총선이 9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거대 언론사의 여론 영향력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거대 언론사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 나쁠 것이 없다. 반면, 척을 지면 선거 과정에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18대 총선의 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18대 국회 당시 ‘언론개혁’에 앞장섰던 정청래 전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조직도 탄탄했고, 지역구 관리도 괜찮았다는 평을 받았지만 분패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정청래 전 의원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 근거였던 도덕성 논란은 결국 근거 없는 주장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해당 언론사는 정청래 전 의원과의 법정 대결에서 패했고, 정 전 의원은 명예회복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선거당락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외국으로 떠난 한선교, ‘뭉개기’ 가능할까=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이 ‘정언유착’으로 번진다면 위험한 뒷거래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파악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당사자인 한선교 의원은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의 시선을 해소해야 할 입장이지만, ‘외국행’을 선택해 언론 비판을 받았다.

한선교 의원은 민주당 불법도청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해 경찰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지만, 지난 2일 박희태 국회의장과 함께 유럽 발트 3국과 덴마크를 공식 방문하는 일정으로 출국했다. 한 의원은 오는 13일에나 귀국할 예정이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야당 대표실을 도청한 문건을 공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벌여 국회를 발칵 뒤집어 놓고, 불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자 해외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도피성 출국”이라고 비판했다.

한선교 의원실은 “이번 7월 국회의장 해외순방 공식 수행일정은 약 한 달 전인 지난 6월 14일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면서 “출장을 취소했을 시 외교적 결례를 범할 수 있어 예정대로 출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선교 의원실은 “출석요구서는 한선교 의원이 출장을 떠난 후인 7월 4일(월) 오전 10시 30분경 영등포 경찰서 담당 수사관이 의원실에 찾아와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피성 출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선교 의원 주장의 진정성은 귀국일인 13일 이후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의원이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자세를 보이는지, 시간을 벌면서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때까지 버티기에 나설 것인지 살펴보면 될 일이다. 분명한 점은 상황이 한선교 의원에게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