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을 기억하는가. 20대 이하의 세대라면 아마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30대라도 조금은 낯설 수 있다. 간단한 안내를 드리자면,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미사리의 서태지’라 불렀다. 안방극장의 서태지가 춤과 스타일, 창작 능력으로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면 미사리의 서태지는 오로지 가창력 하나로 중년 언더그라운드 무대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특별한 히트곡이 없었지만 국내 유수의 대형 극장무대를 그보다 더 잘 채울 수 있는 사람은 한동안 없었다. 음반 판매량, 히트곡 등을 기준으로 따지면 그저 그런 가수였지만 무대에서 그는 언제나 최고의 가수였다. 박강성은 라이브 무대에서는 무엇보다도 노래 잘하는 게 최고라는 걸 제대로 깨우쳐 주었다.

‘미사리 서태지’, 박강성의 추억

2006년, 박강성의 전국 순회공연 개런티가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콘서트 무대의 개런티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규모의 돈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에는 <나가수> 출신 가수들의 콘서트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김연우, 이소라, 박정현, 김동욱의 콘서트가 연일 순풍 항해 소식을 알려오고 있다. 게다가 <나가수> 이후 대규모 전국순회공연에 나선 임재범의 무대는 아예 태풍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음악 산업의 역사에서 콘서트 무대가 이처럼 묵직한 관심사, 뉴스거리로 등장한 일은 아마 처음인 듯 하다.

그동안 콘서트 문화의 미성숙은 한국 음악문화 혹은 음악시장의 대표적 문제점으로 꼽혀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30~40대 남성들이 음악을 위해 시간을 내지 않고 지갑을 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사실 콘서트 티켓 값은 10~20대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높은 구매력을 지닌 30~40대 남성들의 시장 유입은 시장 활성화의 주요한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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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음악인들이 보기에는 과도한 노동과 잦은 음주로,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들을 만한 음악이 없는 까닭에 음악 시장에서 그동안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 특히 40대를 넘어서면 이들은 콘서트를 건너뛰고 값비싼 디너쇼로 점프하여 뒤늦은 음악의 소비에 나서게 되는데 이 공연 시장 또한 다소 편중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먹을 음식의 가짓수도 밥상도 모두 만족스럽지가 않다.

밥상 걷고 스탠딩, 40대 관객의 등장

이러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최근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가수>에 폭풍처럼 쏟아진 대중들의 열정 덕택인 것 같은데, 갑자기 콘서트 시장에서 40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대중음악의 발전을 바라던 많은 사람들의 바람, 즉 콘서트 시장의 활성화가 조금씩 이루어지려는 전조인 듯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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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박정현 콘서트의 관람객 가운데 40대의 비중은 언제나 한자리 수를 밑돌았다. 하지만 <나가수> 출연 이후로 40대의 비중이 두 배 이상 상승하며 두자리수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 한 번의 경연을 끝으로 <나가수>를 떠난 김연우 역시 <나가수> 출연 이후 30~40대 티켓 구매 비율이 대폭 상승하였으며 윤도현의 경우에도 40대 티켓 파워가 거의  3분의 1 비중에 육박한다.

역시나 정점은 임재범이다. 그의 공연은 세시봉과 같은 추억상품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음악 자체에 대한 몰입도와 기대치가 매우 큰 공연으로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시장의 사각지대라고 여겨왔던 40대의 티켓 구매 비중이 다른 모든 연령대를 제치고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나가수>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이처럼 한국 음악시장의 숙원이었던 콘서트 시장의 성장을 향해 한껏 출력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이러한 동력의 최고 엔진은 목소리 장인들의 ‘성대’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출력이다. 
 
라이브 시대를 일구는 ‘성대’의 달인들

사실 마이크가 등장한 이래 성대의 비중은 점점 축소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목소리가 그렇게 크고 시원하지 않아도 오히려 읊조리는 소리가 더욱 매력적인 경우도 많았다. 특히 사적 감상 매체인 레코드에서는 오히려 음유시인 같은 목소리가 더욱 선호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원한 소리의 매력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라이브라면 더욱 그렇다. 수많은 악기들의 두툼한 벽을 뚫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레코딩 스튜디오의 믹싱 작업과는 또 달라서 단순히 마이크의 볼륨을 키우고 이펙트를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라이브 문화의 활성화는 성대 달인(達人)들의 드라이브감 충만한 목소리, 풍부한 다이내믹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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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수들이 모처럼 혼신을 다해 열창하는 무대들이 등장하는 와중에 이러한 기획을 향해 "나는 성대다"라고 비유하며 비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바이벌에 대한 어떤 반감과 우려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아무데나 과녁을 그려놓고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것은 제아무리 비판과 비평이 본업이라 할지라도 그다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서바이벌이 문제이고 불만이라면 정확하게 그 지점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열창하는 무대의 장인들 혹은 그 기획자들을 향해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 과거, 콘서트 문화가 미숙한 것이 우리 음악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라며 큰 소리로 성토해 왔던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랜 꿈을 향해 새롭게 시작된 항해에 비록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힘껏 출력을 높인 엔진에 윤활유 대신 소금물을 뿌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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