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6일 자정. 한 신문사 야근 데스크에게 중요한 제보가 들어왔다. 성균관대 정현백교수 등이 안기부에 연행됐다는 내용이었다. 급히 담당 기자를 찾아 확인에 들어갔으나 이미 밤늦은 시간이고 안기부의 특성상 확인이 불가능해 결국 사실확인은 다음날로 미뤘다.

이튿날 검찰기자실. 교수연행 사실을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안검사는 구체적인 혐의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공사건으로 박홍총장 발언과 관계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날 석간신문부터 북한장학금교수 연행이라는 시커먼 제목과 함께 정교수 등이 독일유학시 북한장학금을 받은 혐의로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정교수 등은 혐의가 없어 풀려났고 바로 정정보도 요구를 받아야 했다.경향, 동아, 서울, 세계, 조선, 한국, KBS, MBC, SBS 등 9개 언론사는 미확인 일방보도로 인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중 KBS와 SBS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정보도를 거부하다 재판에서 패소, 결국 뉴스 첫머리에 정정보도문을 내야 했다.

이른바 북한장학금 보도의 진상이다. 이 보도는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발표와 언론의 안보상업주의가 몰고온 대표적 오보사례로 꼽을 수 있다.

안기부를 정점으로 하는 정보기관의 발표는 확인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 특히 공안사건의 경우 보도당사자가 수사중에 있거나 이미 수감돼 있는 경우가 많아 본인에게 확인취재를 하기가 곤란,자연 수사기관의 일방 발표만을 옮기다 흔히 오보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오보의 근저에는 우리 언론의 뿌리깊은 냉전시각과 선정주의,그리고 수사기관의 무책임한 언론플레이가 복합적으로 깔려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이 보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는 박홍총장의 주사파 발언에 이은 북한장학금을 받은 교수가 있다는 폭탄선언으로 뒤숭숭한 시기였다. 연일 박총장의 무책임한 발언을 확대재생산하는데 열을 올렸던 언론이 이 사건을 놓칠리 없었다.

안기부가 이례적으로 공식발표때까지 보도를 유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미 박홍상품에 맛을 들인 언론이 귀담아 들을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검찰의 모호한 발언과 이를 단초로 한 언론의 안보상업주의가 오보를 자초했다는 점은 자명하다. 일부 언론사는 단지 수사기관의 발표만을 옮겼을 따름이라고 변명했지만 무책임한 보도의 책임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점에서 한 신문사 기자가 부끄럽다. 박홍 이름만 들어가면 무조건 키우고 보자는
언론의 냉전사고와 선정성을 부추기는 데스크, 타사에 뒤져서는 안된다는 빗나간 경쟁심리
등이 이런 오보를 만들어 냈다고 자탄하고 있는 점은 깊이 새겨볼만하다.

그러나 최근 외국어대 박창희교수 노동당 가입 보도에서 보듯 일부 기자들의 자탄과는 달리 냉전보도는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언론이 스스로 고질병을 인식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한 이런 유형의 오보가 줄어들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