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백선엽씨를 6·25 전쟁영웅으로 둔갑시킨 다큐멘터리를 두차례에 걸쳐 방송한 KBS에 대해 사회원로와 언론계에서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KBS에는 1000 건이 넘은 시청자 게시판 항의글과 900 건의 항의 전화가 들어왔고, 내부 사전 심의에서도 이번 방송이 백선엽 영웅화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영건(72) 전 사월혁명연구소장(현 경남대 명예교수·경제학)은 27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KBS 입장에 선다고 하더라도, KBS는 백씨의 공과에 대해 내레이션을 나란히 했어야 했다”며 “글로벌을 지향하는 KBS의 이번 방송을 두고 일본은 웃을 것이요, 미국은 우리를 열등민족 취급할테고, 중국과 조선족동포들은 분노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망신당할 방송”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특히 일본의 경우 “한국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이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시각에서 입장에선 정보에 접할 기회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보면 얼마나 비웃고 경멸하겠는가”라며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일본 경영’이라는 숙원사업에 비춰볼 때 (친일인사를 영웅으로 만들었으니) 대동아공영권의 교두보 역할에 충실한 방송이라는 점에서 웃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또한 친일전력 뿐 아니라 6·25 당시의 전공에 대해서도 “그가 1948~49년 1사단장 시절에 옹진반도에서 치열한 교전을 전개했고, 이승만은 분단으로 이끌어갔다는 전쟁의 배경도 함께 소개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조영건 전 사월혁명연구소장(경남대 명예교수).
이치열 기자 truth710@
 
‘6·25 61주년을 맞아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백씨를 등장시킨 것’이라는 KBS 주장에 대해 조 전 소장은 “이런 식으로 전쟁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KBS는 영원히 3류 언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1980년대 중반 영국의 BBC와 ITN에서 방송한 코리안 워(Korea'n War)를 들어 “ITN의 경우 참전국 16개국을 전부 인터뷰했고, 남북한 군인과 민간인까지 모두 인터뷰해 가감없이 방송했다. 적어도 이런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전 소장은 “KBS가 스스로 국민의 언론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권력이 바뀌고 경영진만 물갈이 하는 수준이 아니라 KBS 자체를 청산하는 문제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라며 “KBS가 역사와 진실을 왜곡해 ‘언론일탈’의 ‘혹세무민’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기조라면, KBS의 시청료 거부운동이 올바르다. 단 일전도 안내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독재자 이승만·친일파 백선엽 찬양 방송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27일 3차 회의를 열어 소속 독립운동단체와 한국전쟁 피해자 유족단체를 중심으로 오는 29일 방송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같은날 KBS 앞에서 ‘친일파 백선엽 찬양 사죄와 이승만 미화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로 했다.

KBS 내부 심의과정에서도 백선엽씨에 대한 일방미화의 우려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KBS 새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자체심의에서도 ‘전쟁영웅 백선엽의 회고록인지 경계가 모호했음’, ‘백선엽 개인의 회고담에 기대고 있어 객관성 유지 장치가 없었던 점도 문제’, ‘백선엽 한 사람만을 영웅시하고 있다는 인상’, ‘백선엽 장군 특집 같은 느낌’이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KBS 새노조는 “지금까지 KBS의 양식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항일독립운동단체와 4.19단체, 6.25 희생자 단체들의 반발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이들 단체마저 적으로 돌리면서 어떻게 막중한 과제와 의무들을 KBS가 수행해나갈 수 있단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이들은 김인규 KBS 사장에게 △이들 단체와 시청자들에게 즉각 사과 △친일 미화 다큐에 이은 독재 찬양 다큐 ‘이승만 5부작’ 편성과 제작의 즉각 취소를 촉구했다.

   
백선엽씨. ⓒKBS 방송캡쳐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항일독립군을 토벌하는 일에 가담한 반민족행위자를 미화하는 순간, KBS는 ‘한국방송’도, ‘공영방송’도 아니었다”며 “지금 KBS는 수신료를 올려달라며 국민을 조르고 야당을 겁박하고 있으나 ‘친일파 미화’로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을 내팽개친 KBS는 수신료 인상은커녕 존재의 이유를 묻게 한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친일파 미화 방송으로 대한민국의 역사, 공영방송의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겼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공영방송 KBS를 국민의 품으로 되찾아 오는 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KBS는 "해당 프로그램은 6.25 전쟁을 조명하려는 의도로 KBS 춘천총국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특정인의 삶 전체를 다루는 인물 다큐멘터리가 아니였다"며 "제작진은 자료 조사과정에서 한림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에서 6.25전쟁 당시 미공개 영상자료 3000분 가량을 발견했고, 이 가운데 백선엽씨의 영상이 포함돼 있어 백씨가 프로그램의 주요 테마로 나오게 됐을 뿐 처음부터 백선엽 씨를 미화할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일부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KBS 제작진은 백선엽 씨에 대해 "실제 6.25전쟁의 주요 고비에 등장해 활약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한 군인이었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며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사실도 프로그램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조영건 전 사월혁명연구소장과 나눈 일문일답 요지이다.

-백선엽 다큐가 백씨의 친일전력은 사실상 외면한채 그의 6·25 전공을 강조하고 끝났는데.
“박정희기념관도 구미 생가에 만들어질 때 각종 비판이 제기되자 주최측은 그의 ‘과도 공도 모두 전시하겠다’고 했다. KBS 입장에 선다고 하더라도, KBS는 백씨의 공과에 대해 내레이션을 나란히 했어야 했다. 단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는 한 줄만으로는 안되는 것이었다. KBS는 공영방송이자 적어도 글로벌 방송을 지향한다고 한다면 방송이 단순히 국내 전파용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가 다본다. 이를 본 일본은 웃을 것이요, 미국은 우리를 열등민족 취급할테고, 중국과 조선족동포들은 분노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망신당할 방송이다.”

-일본이 왜 한국을 비웃을 것으로 보는가.
“일본은 한국 역사에 대한 연구자가 조선사연구회와 대학교수 등 3000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사료에 의해 정확하게 한다. 일본 국민은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입장에선 정보에 접할 기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얼마나 비웃고 경멸하겠는가.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바와 맞아떨어져서도 웃을 것이다. 한반도는 일본이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고정관념이자 숙원사업이다.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에 대한 시장지배력을 늘리고자 하는 의사를 포기하지 않은 일본이다. (친일인사를 이렇게 영웅으로 만들었으니) 대동아공영권의 교두보 역할에 충실한 방송이었다는 점에서 웃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왜 그런 평가를 할 것으로 보는가.
“미국의 경우 휴전협정을 이룬 클라크 대장이 쓴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라는 책에서 한국전쟁을 두고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대상을 상대로, 잘못된 결과를 낳은 유일한 전쟁’이라고 평했다. 미국은 백씨를 돌격대장으로 볼 것이다. 한국전쟁은 우리 스스로 주권과 자기방어를 위해 스스로 작전권과 지휘권을 토대로 수행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 참화의 중심에 서있다고 전쟁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군들 눈에 볼 때 백선엽은 한국보다 미국의 국익에 충실했다고 볼 것이다.”

-방송에서 그의 전공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이뤄졌다고 보는가.
“백씨 개인의 일생에서 만주군 출신으로서 주요 역할을 했는데, 단순히 6·25전쟁의 전과만 강조됐다. 6·25 전쟁을 놓고 보더라도 그가 1948~49년 1사단장 시절에 옹진반도에서 치열한 교전을 전개했고, 이승만은 분단으로 이끌어갔다는 전쟁의 배경도 함께 소개됐어야 했다.”

-친일전력을 배제하고 6·25 61주년이니 백씨 전력과 기억 만으로도 6·25특집을 만든 것이라는 게 KBS의 주장이다.
“KBS가 이런식으로 전쟁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KBS는 영원히 3류 언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영국의 BBC와 ITN이라는 방송에서 1980년대 중반에 코리안 워(Korea'n War)라는 방송을 한적이 있다. 후자의 경우 참전국 16개국을 전부 인터뷰했고, 남북한 군인과 민간인까지 모두 인터뷰했다. 이들의 주장을 가감없이 방송했다. 적어도 전쟁다큐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런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한다.”

-제대로 제작된 다큐라고 보기 힘든가.
“언론은 생명수와 같고 보약과 같아야 한다. 백씨를 단순히 비난하거나 매장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정말 제대로된 직업군인의 전범을 선택했어야 했다. 언론은 (이런 인물 선정에 있어서도) 교사가 돼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KBS가 이렇게 방송할 수 있는가. 언론으로서 독자성과 자부심, 소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제작진이 언론인으로 평생 살아가고자 한다면 두 번 다시 이런 경망스런 제작을 해서는 안된다.”

-공영방송으로서의 KBS가 한 제작이기에 더욱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그동안 KBS가 환골탈태와 독립성 등의 노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와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뒷북치기를 하느냐. 재정운용도 국민의 준조세로 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봉사와 헌신의 자세가 돼있어야 한다. KBS가 이미 지나간 독재정권, 전제정권, 파쇼정권 시절과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나치에 복무했던 언론인 단죄와 처형이 아니어도 앞으로 국민의 항의에 의해 KBS가 존립하지 못할 수 있다. KBS가 스스로 국민의 언론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권력이 바뀌고 경영진만 물갈이 하는 수준이 아니라 KBS 자체를 청산하는 문제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KBS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KBS가 역사와 진실보도를 왜곡해 ‘언론일탈’의 ‘혹세무민’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기조라면, KBS의 시청료 거부운동이 올바르다. 단 일전도 안내는 것이 옳다. 야당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국회 특위라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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