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블로그하는 사람이 있나.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과연 블로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인터넷 주인 찾기’ 컨퍼런스에서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 블로그의 달라진 위상을 조망하는 한편, 블로그의 다양한 활용 사례가 소개됐다. 발표자로 나선 12명의 블로거들은 블로그가 여전히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1인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와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았다.

블로거 '광파리'는 여전히 하루 20시간씩 블로깅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열혈 블로거다. 광파리는 “블로그를 하려고 좋아했던 바둑과 축구를 다 끊었다”면서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매달렸는데 미치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고 말했다. 광파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때문에 블로그에 소홀하게 됐다는 블로거들도 많지만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를 연계하는 콘텐츠 전략이 생각보다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신문 김광현 정보기술부 부장인 '광파리'는 “주류 언론이 외면 당하는 건 기자들이 독자를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출입처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그 논리에 매몰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한때 제품 리뷰를 올렸다가 “삼성전자 직원 아니냐”는 비난을 듣고 블로그를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다는 광파리는 “그런데 블로그를 하다 보니 독자들과 생각이 비슷해졌다”고 말했다.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니 악플도 줄어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블로거 써머즈는 “우리나라에서 블로그가 미디어로 발전하지 못했던 건 첫째, 당장 콘텐츠 수익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블로그가 저급한 기업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돼 왔기 때문이고, 둘째, 블로거들 역시 자체 검열을 하거나 스스로 콘텐츠 가치를 포기해 왔고, 셋째, 기획력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써머즈는 “그러나 여전히 블로그 이외에 주류 언론에 맞설 수 있는 대안 미디어는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여전히 블로그가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인터넷 주인 찾기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광현(광파리) 한국경제 기자.
 

블로거 펄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3초 안에 사라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면서 “특히 페이스북은 실명화를 강요하면서 개성 없는 평균인이 되기를 강요하는데 이 때문에 오프라인의 권력 관계가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펄은 “평균인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싶다면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블로거 제라드는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트위터 계정, ‘@2MB18nomA’ 등을 불법·유해정보라고 판단해 접속을 제한한 것과 관련, “무가치하거나 유해하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면서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경쟁 메커니즘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력이 임의로 표현의 자유 영역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제라드는 “커뮤니케이션의 진입 장벽이 높았던 과거에는 정보 통제가 용이했지만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통제 비용이 급증하면서 정부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자기 검열을 확산시키려는 것 같다”면서 ”이는 가장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 여론을 통제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제라드는 “명예훼손은 비범죄화돼야 하며 자기 검열을 뛰어넘어 공인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연계한 다양한 활용 사례가 소개됐다. 블로거 이고잉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프로그래밍 기법을 온라인으로 강의하는 생활 코딩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블로거 나솔은 페이스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소개했다.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의 ‘논설우원’ 파토는 “몰락한 딴지일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블로거 필진들 덕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1인 미디어 ‘더 나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 블로거 김나은은 “더 나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상지대와 두리반 등 소외된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사회적 약자와 인권, 사회, 그리고 우리라는 개념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나은은 “딱히 돈이 되지는 않지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면서 “주류 언론이 관심이 갖지 않은 사안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를 했다는 데 의의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블로거 신비는 “소셜 네트워크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변화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낡은 매뉴얼이 아닌 모험”이라고 지적했다. 신비는 “지금까지 시민운동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합법적이고 중립적인 운동에 집중하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다면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봤듯이 소셜 네트워크 운동은 감성적이고 즉각적이며 창조적 문제제기와 자발적 실천이 뒤따른다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비는 “김여진씨가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심을 갖게 됐던 건 거창한 이념이나 투쟁 구호가 아니라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모범생 같은 전통적인 시민운동의 진정성과 날라리 같은 소셜 네트워크 운동가 주는 감동과 재미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신비는 “블로그나 위키나 어떤 도구를 쓸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틀을 깨는 오픈 마인드와 창조적 발상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블로거 김우재는 “사회적인 이유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개인적인 이유로 트위터를 시작했지만 블로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트위터는 사회적인 이유로 그만뒀다”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김우재는 “트위터라는 게 현실에서 마주치는 불합리한 권력관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 지겨워졌다”면서 “진짜 중요한 것은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반면 블로거 캡콜드는 “관계에 집중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비교하면 콘텐츠 자체에 집중하는 블로그는 여전히 맥락을 전달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식”이라면서 블로그의 가치를 강조했다. 캡콜드는 “블로그는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연출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참조하고 맥락을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이라면서 “1인 미디어로서 블로그를 활용하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유통 기능을 연계하는 콘텐츠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캡콜드는 “언젠가 블로그보다 더 유용한 도구가 나올 때가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관계보다는 내용,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 때 같다”면서 “제도화된 언론에서는 하지 못하는 유연한 혼합, 전문 지면에 담아낼 수 없는 과감한 내지르기, 140자의 트위터에 담아낼 수 없는 아카이빙 기능 등 블로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1인 미디어 도구”라고 강조했다. “언젠가 블로그 보다 더 나은 도구가 나올 때까지는 블로그가 최선의 대안”이라는 이야기다.

이날 컨퍼런스는 인터넷 주인 찾기의 세 번째 프로젝트였다. 블로거들 모임인 인터넷 주인 찾기는 지난해 인터넷 실명제와 저작권법을 주제로 두 차례 컨퍼런스를 개최한 바 있다. 블로거들은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도 결국 핵심은 콘텐츠고 주류 언론의 사각지대를 비추고 아래로부터 대안을 끌어내는 1인 미디어로서 블로그의 가치가 오히려 더욱 중요하게 될 거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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