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뉴스, 신문에서 우리가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다 보고 있었죠. 스마트폰을 빼앗지 않는 한 이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배우 김여진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반값 등록금’ 이슈에 대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파급력을 이렇게 진단했다.

‘반값 등록금’ 문제는 한나라당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의 ‘재추진’ 발언으로 힘을 받으며 폭넓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경향과 한겨레를 제외한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황 원내대표의 발언을 일과성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 했다. 황 대표의 발언 이후 ‘반값등록금’ 문제가 주요 정치 사회현안으로 부각될 조짐을 보였지만, 이들 신문과 방송들은 이를 외면했다.

그러나 이들 신문과 방송의 외면과 침묵에도 이 문제는 뜨거운 정치 사회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사안 자체가 갖는 폭발성도 있었지만, 트위터 등 SNS가 기성 언론을 뛰어넘는 ‘여론의 공론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값 등록금’이 여론화 되는 과정을 역추적해 보면, 주류 언론의 ‘의제 설정’ 시스템이 더 이상 독점적일 수 없음을 새삼 재확인할 수 있다. 또 이들 새로운 미디어 이용 패턴이 사회적 쟁점 형성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도 엿볼 수 있다. 기존의 뉴스 취재 및 공급 시스템의 ‘빅뱅’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난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에 참가한 대학생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반값 등록금’ 폭풍 트윗 몰랐던 신문·방송=실제 통계를 분석해 보면, 이번 ‘반값 등록금’ 이슈는 사실상 SNS를 통해 여론이 모아진 사안이다. 

미디어오늘이 웹서비스 업체인 유저스토리랩에 의뢰해 5월 첫째 주부터 검색어 ‘등록금’과 기사 링크를 함께 포함한 리트윗(RT, 전달하기) 수를 분석한 결과, 1주차(437건)부터 2주차(294건)·3주차(513건)까지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리트윗 수는 4주차(1600건), 5주차(4144건)에 껑충 뛰었다. 4주차가 시작된 22일에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반값 등록금’ 추진을 밝혔고, 5주차가 시작된 29일에는 대학생 73명이 연행됐다. 
  
지난달 중순 이후부터 트위터에서 ‘반값 등록금’ 이슈가 이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는 관련 뉴스가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지상파 3사의 저녁 메인 뉴스를 분석한 결과, KBS는 3건, MBC는 4건, SBS는 3건 보도하는데 그쳤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분석한 전국단위 아침신문의 경우에도 경향(25건), 한겨레(21건)만이 처음부터 1면 보도 등으로 ‘반값 등록금’ 이슈를 주요하게 제기했다. 중앙은 지난 3일, 조선은 지난 6일에야 ‘반값 등록금’ 관련 주요 분석 기사를 1면에 싣기 시작했다.

▷SNS로 소통한 ‘날라리 선배들’= 주류 언론이 ‘반값 등록금’ 이슈를 제대로 견인하지 못할 때, 김제동·김여진·박혜경·권해효 등 이른바 ‘날라리 선배들’은 적극적인 ‘이슈 파이터’가 됐다. 이들이 시민들과 소통한 도구는 바로 SNS였다.

시사인 고재열 기자는 “29일에 대학생들이 연행되는 사진이 트위터 타임라인에 몰아치는 것을 보고, (경찰에)당하는 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트위터를 통해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홍대 총학생회가 홍대 노동자 문제를 외면한 것이 SNS에서 이슈가 된 사례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파워 트위터리안인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에게 연대 요청을 했고 이후 김여진, 박혜경도 합류했다.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치킨-피자 배달’, ‘책 읽는 시위’, ‘립덥’(립싱크+더빙) 등을 알렸고, “일부 운동권 시위가 아닌 재밌는 문화적 행사”로 만들었다. 탁현민 교수는 “SNS의 횡적 소통 구조가 정보 전달의 파급력이 크고, 정보에 대한 신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등록금 문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시의적인 이슈들이 SNS에서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류 언론보다 SNS 신뢰한 대학생들=‘날라리 선배들’이 새롭게 이슈를 제기하는 측면에서 주목됐다면, 대학생들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슈를 공유하고 전파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10일 ‘반값 등록금’ 집회 현장에서 무작위로 15명의 대학생들을 집중 인터뷰한 결과, 표집 집단·방법 등의 오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뉴스 이용 패턴이 발견됐다. 이들은 ‘반값 등록금’ 뉴스를 아침 신문 (3명), 저녁 방송 (3명), 인터넷 뉴스(11명), SNS (6명) 등으로 습득하고 있다고 응답(복수 응답 허용)했다. 네이버 등 인터넷 뉴스를 하루에 약 4~5시간 이용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이동 중에도 뉴스를 매일 이용하는 등 인터넷, SNS를 이용한 학생들은 많았지만, 신문을 유료 구독하는 학생은 1명에 그쳤고, 방송 뉴스를 매일 시청한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어 대조를 이뤘다. 

주목되는 점은 이들이 이른바 신문, 방송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로 공정성·신뢰성 결여를 꼽은 점이다. 특히 인터넷과 SNS 사용이 빈번한 학생일수록, 뉴스 소비가 능동적이고 선택적이며 다양화 되는 특성을 보였고, 기존 언론에 대한 불만과 비판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성공회대 김민(20)씨는 “주류 언론사와 SNS는 다르다”며 “주류 언론사는 큰 이슈라 해도 부각해서 방송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SNS는 믿을만한 사람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리교 신학대 나준철(29)씨는 “지상파는 등록금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고, 공정성 측면에서 왜곡보도를 하는 것도 불만”이라며 “트위터를 보고 난 뒤 네이트나 네이버에서 궁금한 뉴스를 찾아본다”고 말했다. 중앙대 장소현(21)씨는 “신문의 경우 제목만 봐도 무슨 기사일지 예상돼 지루하다”며 “인터넷 뉴스는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감성적인 목소리도 담겨 있어서 오히려 컴퓨터의 메인 페이지로 지정해 뒀다”고 말했다.

▷선택적 미디어 소비 시대, 파장은?=학계에선 이처럼 파워 트위터리안들을 통해 이슈가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SNS를 통한 뉴스 소비가 늘어날수록 언론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송경재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사람들은 그마나 신뢰할 곳이 SNS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이 상당히 바뀌어 가는 시기다. 변화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존 미디어로서는 상당히 위기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주류 언론의 영향력이 영원하지 않고 트위터의 팔로잉(친구 맺기)처럼 독자들의 선택적인 ‘관계 맺기’가 언론사 영향력의 ‘잣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독자들이 자신의 성향과 기호에 맞는 뉴스를 주로 선별해서 보는 흐름이 커질수록 뉴스 소비의 양극화가 벌어질지, 언론사 채용·취재·서비스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지 고민되는 대목이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주류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내가 팔로잉 하는 사람들, 매체에 대한 신뢰가 늘어나게 돼 미디어 소비의 양극화가 벌어질까 우려된다”며 “선택적 매체 소비 시대로 뉴스의 수집, 생산, 유통도 달라지는 미디어 빅뱅이 향후 최소 2~3년간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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