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요란하다. 1990년대 말 TV드라마를 통해 해외로 확산되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는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기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나날이 다양하게 발전하는 인터넷 매체를 기반으로 최근에는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이 서유럽 무대까지 그 활동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미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자세한 내용이 전달되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한국 아이돌 음악 비즈니스의 개척자이자 대중가요계 최대 주주라고 할 수 있는 이수만의 음악상품에 대해 유럽의 일부 소비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럽발 한류, 이것은 격세지감

유럽발 한류는 9시 뉴스에서 다뤄질 만큼 매우 특별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 정말 우리가 이렇게 멋있어졌구나, 뭐 이런 탄성이 에스엠타운뿐만 아니라 한국 전역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세계 곳곳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는 중이다. 이 상황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격세지감(隔世之感)’.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어떻게 보면 다소 늦은 감도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해 왔다. 김연아, 박태환은 물론 박지성, 박찬호, 남현희, 박세리 등 세계 무대를 빛낸 스타들이 적지 않게 배출되었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의 경우에도 박찬욱과 봉준호, 이창동과 김기덕 등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명성을 드높여준 덕택에 한국 영화의 위상은 변방에서 중심으로, 그리고 영화인들의 자부심도 함께 이동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심지어는 유엔 사무총장도 한국 사람이었고.

낙후된 대중가요, 따라쟁이의 낙인

이에 비하면 한류의 요란스러움, 적지 않은 경제적 성과에 비해 우리나라의 대중가요는 그동안 진정한 세계적 가치를 입증했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 영향력이 아시아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아시아는 여전히 변방이라는 느낌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지독한 돈 중심의 편견이겠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경제력이나 문화적 수준이 훨씬 못할 것 같은 나라들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향유되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음악이 다른 여러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한국의 대중가요에는 오래도록 ‘따라쟁이’라는 낙인 같은 것이 찍혀 있다. 이러한 불명예가 트로트로부터 록, 힙합까지 모두 해외 음악 스타일을 따라가기만 했던 역사가 가득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청바지, 양복(洋服)을 입는 시대 아닌가. 그보다는 우리 대중가요가 해외 음악을 우리 식으로 소화해 내는 대신 베끼기에 급급했고 설상가상으로 끊임없이 계속된 표절시비로 인해 부정적인 낙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짝퉁 같은 음악이 만연해 왔던 대표적인 원인 제공자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아이돌, 댄서, 립싱커들을 지목해왔다. 특히 MP3 다운로드 논쟁이 치열했던 시절, 많은 비판적인 네티즌들에게 아이돌 음악은 한마디로 ‘쓰레기’ 혹은 조금 양보하자면 ‘타이틀곡 빼고는 다 쓰레기’에 다름 아니었다.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본토의 열광, 너무도 낯선 스펙터클

이런 상황에서 표절의 타자로서 짝퉁의 진품으로서 우리를 주눅 들게 해왔던 서구 음악사회의 ‘색목인(色目人)’ 군중들이 한국 대중가요에 열광하는 장면이 전달하는 이미지 효과는 매우 강렬했다. 역경을 딛고 일류 음식점 사장님으로 등극한 어느 가난했던 배달 청소년의 휴먼다큐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스케일의 드라마였다. 게다가 이러한 사건을 이끌어 낸 주인공은 최고의 록커도 음악의 거장도 아닌 짝퉁의 본진으로 취급받던 아이돌, 댄서, 립싱커들이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9시 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유럽발 한류에 대해 상찬 일색이다. 일부 비판적인 국내외의 뉴스도 없진 않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여간해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 흐름에 발맞추어 사람들은 유럽발 한류 열풍의 주역이자 아이돌, 댄서, 립싱커 시스템의 완성자이기도 한 이수만에 대해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그를 혁신적인 기업가로 재평가하려는 진지한 사람들까지 생겨나는 것 같다.

각광받는 이수만, 허무의 시대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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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평가’는 아무에게나 행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악역을 담당하여 오명(汚名)을 뒤집어쓴 사람들, 하지만 오래 지나고 보니 그 덕분에 좋은 미래가 다가왔다, 뭐 이렇게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다. 이수만의 경우 한국의 음악 사회에서 오명을 뒤집어쓴 것은 분명한데 그게 무슨 어둠을 이겨내기 위한 시대의 악역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는 자신의 돈과 명예를 위해서만 악역을 담당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아이돌, 댄서, 립싱커가 예능과 TV를 통해 지배하는 21세기 한국의 가요계다.

이수만은 꿈을 좇는 청소년을 이용한 ‘노예계약’을 가요계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한 대표적 인물이다. 동방신기, H.O.T 등 동고동락했던 주요 스타급 그룹들과는 빠짐없이 법정 소송을 벌였고 지저분한 결별을 했다. 법적으로 결별이 정해지면 쿨하게 끝나는 법도 없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궤멸시키고자 수준 낮은 뒷골목 잡배들처럼 행동해 왔다.

세상 사람들도 그의 지난날을 대체로 잘 기억하고는 있을 것이다. 그런 일, 한두 번도 아니었고 소소한 사건도 아니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역군이 되니 갑자기 모든 것이 용서되는 듯한 이 분위기는 또 무언가. 이 또한 대단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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