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동교동 홍대입구역 4번 출구를 나서면 예전에 칼국수집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작은 용산’이라 불리며 인디 음악가들과 뜻있는 문화예술인, 자원활동가들이 힘을 보태 대책없이 자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철거와 개발논리에 맞서고 있는 공간이 된 '두리반'이 보인다. '마포 지구 단위 계획' 철거 지역 가운데 두리반을 제외한 다른 세입자는 800만~2100만 원의 이주 보상비만 받고 떠났다. 그러나 권리금 1억 원을 내면서 2002년 식당을 열었다가 겨우 이사비 300만 원만 받고 떠나라는 건설회사의 횡포에 맞서다 전기까지 끊긴 두리반에서 6월 3일 저녁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가 열린 홍대 두리반 전경. 이치열 기자 truth710@
 

G-20 홍보 포스터의 청사초롱 위에 쥐를 그려 넣었다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이른바 ‘쥐벽서 사건’에 대한 후원행사인 '파티하쥐'. 저녁 7시, 건물 3층에서 퍼포먼스 집단 '진동젤리'가 공연한 연극 <쥐와 벌>에는 쥐 그림 그래피티 작업을 했다가 재판에 회부된 당사자인 박정수씨가 직접 출연해 어처구니없는 재판 과정을 보여주었다.

후원행사를 주관한 수유+너머 소속 연구원이기도 한 박정수씨는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 '너희가 부자들 잔치에 개 풀어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면서 그렇다면 1년 넘게 부자들과 싸움을 하고 있는 두리반의 싸움에 단 하루라도 도움이 되고자 ‘개를 확 풀어놓는’ 마음에서 '파티장소'를 두리반으로 정했단다.

 

   
퍼포먼스 집단 '진동젤리'가 공연한 연극 <쥐와 벌> 이치열 기자 truth710@
 

 

박정수씨와 함께 <쥐와 벌> 연극을 공연하는 모임의 이름은 ‘진동젤리’. 신체와 사유와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함께 진동하면서 자신들의 삶 뿐 아니라 주변에도 진동을 전달하려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란다. ‘쥐벽서’ 그래피티도 그런 진동의 하나였고, 우리의 삶에 그 진동이 전달될까봐 포스터에 낙서 좀 했다고 ‘타인의 명예나 공중도덕을 침해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며 지레 화들짝 놀란 권력집단에 의해 그냥 피식 웃어넘길 일이 심각한 재판거리가 되어버렸다.

전문 그래피티 작가나 미술가가 아닌 박정수씨는 이번에 그린 쥐 그림 낙서 덕분에 단박에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어버렸다. 박정수씨는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굳이 공공자산을 훼손했다며 처벌 대상이 되어 버린 그래피티를 한 까닭은 ‘정부와 자본가에 의해 사유화된 공간들의 진정한 공공성을 회복하고 재전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또한 오늘날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창작 행위의 결과물이 예술 자산화되고 있는데, 그래피티는 결과가 아니라 창작 과정과 제작 방식의 수행적 가치를 되살려 오늘날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예술의 저항성과 창의성을 권위적인 전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낙서와 놀이를 통해 표현하는 그래피티의 풍자성은 이미 일상 공간의 의미를 비틀어보게 하는 전세계의 보편적 거리예술이다. 박정수씨가 쥐의 형상을 따온 영국 그래피티의 전설적 작가 뱅크시는 여왕이든 수상이든 거침없이 작품으로 만들어 아무도 모르게 시치미 뚝 떼고 대영박물관에 걸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뱅크시가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박물관 측이 거액을 들여 그 작품을 사서 영구 소장했다. 문화를 문화적으로 수용하는 것, 그것이 국격이다. 문화를 정치적으로 재단하고 규제하는 것은 참 못난 짓이다.

   
후원행사 참가자들이 직접 그라피티작업 체험을 통해 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넣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어쨌든 이 못나고 째째한 재판은 이미 박정수씨에게 200만원, 동료에게는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1심 선고가 내려졌으니 앞으로 항소심을 위한 비용도 마련할 겸 연극이 끝난 다음 두리반 뒷마당 공터에서는 ‘파티하쥐’라는 이름으로 일일주점과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뒷마당 공연 첫무대에 오른 것은 인디밴드 <비아 非我>. 보컬이 바로 회사에서 퇴근한 듯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무대에 오른 걸 보고 든 생각은 ‘7080 감성의 아저씨 밴드?’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베이스며 기타, 드럼 연주며 노래, 무대 매너까지 락스피릿 충만하고 실력 짱짱한 자작곡들과 걸그룹 후크송을 풍자적으로 편곡한 멋진 무대로 일일주점답게 어수선하던 뒷마당 분위기를 순식간에 흥으로 가득 채웠다.

   
인디밴드 비아. 이치열 기자 truth710@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푼돈들>은 ‘옛정서 발굴밴드’라는 컨셉의 밴드답게 동네 어귀에서 마주칠 듯 편안한 차림새로 영화 <스타워즈>의 우직한 외계생물체 조연 캐릭터에 대한 자작곡 ‘츄바카’와 ‘내가 말했잖아’,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등의 익숙한 대중가요 커버곡들로 여러 세대에 걸쳐있는 관객과 무대를 하나로 만들었다.

   
인디밴드 <푼돈들>. 데블스 허, 로맨스 조, 다크 박 (왼쪽부터) 이치열 기자 truth710@
 

   
밤이 깊어갈수록 두리반 공연의 열기는 더해간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어서 젊은 기가 팔팔한 <악어들>은 공연을 펼치러 무대에 오르자마자 뒷마당 공터를 클럽으로, 앉아서 어깨 들썩이던 관객들을 벌떡 일어서서 온몸을 음악에 맡기고 흔드는 클러버로 만들어냈다. 대충 짜맞춘 허술한 무대나 형광등에 셀로판 색지로 구색 맞춘 조악한 조명, 임시로 설치한 음향 설비는 시설 잘 갖춘 대신 입장료 비싼 클럽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블루스와 록이 어우러진 자작곡 레퍼토리 연주 실력과 그 음악에 환호하는 관객을 매혹시키는 무대 매너는 초여름 밤을 후끈 달구었다.

   
공연중에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과 섞여 노는 인디밴드 악어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공연 중반부를 넘어서며 흥에 겨운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춤을 추며 공연을 즐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마지막 무대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이치열 기자 truth710@

 

마지막 공연은 한쪽 옆으로 길게 자락 드리운 진분홍 털모자에 검은 인조털 재킷, 백바지 패션으로 남다르게 시선을 모은 <야마가타 트위스터>의 일렉트로닉. 앞선 공연자들처럼 여럿이 함께 하는 밴드가 아니라 혼자서 공연에 나선 <야마가타 트위스터>는 마치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관객을 쥐락펴락하더니 공터 안팍으로 이리저리 이끌고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짜파게티 요리사 어쩌구~' 하는 곡을 부르면서 진짜로 무대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나눠먹는 퍼포먼스까지 펼치며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참여도, 항의도, 후원도 참 재밌게 한다.

그리고 두리반의 투쟁이 시작된 지 531일째인 6월 8일 정오, 서울 마포구청에서 두리반 대책위원회와 시행사 남전DNC가 마침내 '두리반 철거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양측 대표와 마포구·마포경찰서 관계자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두리반이 기존 상권과 유사한 곳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두리반은 홍대 인근에서 다시 본래의 ‘칼국수집’으로 상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해를 넘겨 가며 두리반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으로 뜻을 같이하고 힘을 보탰던 인디 뮤지션들은 이제 공연장 하나를 잃게 되었다. 무대 하나가 소중한 인디 뮤지션들이지만 그것은 아쉬움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낸 성취고, 함께 축하할 일이다. 그래서 앞으로 한 달 동안 두리반에서는 그동안 긴긴 투쟁을 함께 해온 예술가, 작가, 뮤지션들이 기쁨의 무대를 꾸릴 예정이란다.

포스터에 덧그려진 낙서 하나로 발끈하는 정부는 쥐 그림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최고권력자가 서민 이미지 만들겠다고 함께 장사하는 시늉 내며 사진 찍어 홍보하던 인사동 풀빵 장사의 노점을 패대기치고 짓밟는 동안, 작은 칼국수집 하나가 생존권을 지켜낼 수 있도록 뜻과 재능을 모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는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그 결실이 제대로 지켜지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비추는 등대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남은 한 달 간의 무대가 신나고 즐겁게 펼쳐지기를.

 

   
지하철 홍대역 8번 출구에서 롯데시네마 방향으로 걷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두리반 간판.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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